세상을 어지럽게 하면 난(亂)
고려 인종 4년(1126년)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자겸을 인종이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왕궁을 침범하여 국왕파 신료를 제거한 다음 정치를 독단하였지만, 인종이 척준경을 이자겸과 갈라서게 해야 된다는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한 결과,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자겸의 난'이다.
인종 13년(1135년)에는 신채호가 조선 역사 천 년의 대사건이라고 한 '묘청의 난'이 일어났다. 묘청은 고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경의 지덕이 쇠한 때문이라며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가 김부식을 비롯한 반대 세력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자,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진압 책임자가 되었고, 반란군의 실권자인 조광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묘청의 목을 베어 개경으로 보냈다.
무신 정권기에는 무신들이 번갈아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문존무비의 풍조 속에서 문신의 횡포에 시달리며 온갖 수모를 감수하던 무신들의 분노가 1170년 의종의 보현원 나들이에서 폭발했고,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은 지위 고하를 떠나 수백의 문신을 살육했다. 이로써 무신들의 천하가 되었다.
명종 3년(1173년)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의종을 다시 세우려고 난을 일으켰다. 정중부는 이의민과 이의방으로 하여금 김보당 이경직 등을 참살하였고, 이의민이 의종마저 살해함으로써 난은 실패했다. '김보당의 난'이라 부르며, 명종 4년(1174년)에는 문신 조위총이 정중부 이의방 등 무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정부군을 상대로 2년 가까이 싸우다 패했으니, '조위총의 난'이라 한다.
조선 시대의 난은 왕위를 놓고 형제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벌였던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시작되었고, 1453년 발생한 계유정란(癸酉靖難)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 황보인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한 다음, 어린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자신이 왕좌에 오른 사건이었다.
그런데 다른 난들이 어지럽다는 의미의 '난(亂)'을 쓰는 것과는 달리 어려움이나 재앙을 의미하는 '난(難)'을 쓰고 '정란(靖難)'이라 한 것이 이채롭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계유정난'은 어려움이나 재앙을 바로 잡았다는 뜻으로서 승자 세조 즉위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고려 시대 대표적인 천민의 난으로 '망이-망소이의 난'이나 '만적의 난' 그리고 1592년의 '임진왜란', 1636년의 '병자호란' 등이 모두 어지러울 '난(亂)을 써서 망이-망소이, 만적, 왜와 호(오랑캐) 등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음을 의미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과거 동학도들이 봉기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는 의미로 동학란(東學亂)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이 말은 더 이상은 쓰지 않고 '동학농민항쟁' 또는 '동학혁명'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