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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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추수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그리스도교 축제일.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관습이 행하여졌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 후 40일 되는 목요일 승천일 전
3일 동안, 스위스 개혁파교회에서는 9월, 영국은 8월 1일, 독일 복음주의교회는
9월 29일 후 일요일을 감사절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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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수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그리스도교 축제일.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관습이 행하여졌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 후 40일 되는 목요일 승천일 전 3일 동안,
스위스 개혁파교회에서는 9월, 영국은 8월 1일, 독일 복음주의교회는 9월 29일 후
일요일을 감사절로 지켰다.
미국에서는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온 뒤 첫 수확기인 1621년 플리머스에서
시작되어 1863년 A. 링컨 대통령에 의해 국경일로 제정되었고,
1941년부터 11월 네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해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먹으며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으로 1908년 예수교장로회에서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였으나 그 뒤 몇 차례 변경되어 현재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짜는 없고, 최근에는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자는 주장과 이를 도입한 교회가 생겨나고 있다.
성경의 추수감사절(초막절)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것. 게셀의 달력은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기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감람열매는 연초(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에
수확되었는데, 사람들은 긴 나무막대로 감람나무 가지를 쳐서 그 열매를 거두어
들였다(신 24:20, 사 17:6).
또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3, 4월에 아마를 베어 말림으로써 아마를 거두어
들였다(수 2:6).
한편 보리는 4월이나 5월 초에 수확하였던 반면에 밀은 5-6월에 수확하였다.
그리고 8-9월에는 여름 과일들(무화과, 포도, 석류)을 수확하였다.
이스라엘이 큰 기쁨을 갖고 지키던 세 절기 가운데 하나로,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지켰으며, 40년간의 광야에서의 유랑을 상기하면서 계약을 갱신하는 절기는 초막절이다.
보통 장막절로 알려져 있다(참조 대하 8:13).
초막절의 다른 이름으로 성서에서 나오는 것들로는 「수장절」(출 23:16),
「여호와의 절기」(레 23:39, 삿 21:19), 「절기」
(왕상 8:2, 65, 대하 7:8, 느 8:14, 사 30:29, 겔 45:23,25) 등이 있다.
비록 신 16:16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번 스스로를 「여호와께 보여야 」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초막절이 본래의 순례절기였던 것 같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매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실로로 여행을 하였다
(삼상 1:3, 21). 그가 순례를 한 때는 아마도 「매년」실로에서 벌어졌다.
「여호와의 절기」때였을 것이다
(삿 21:19) 이 여호와의 절기는 포도원 무도회가 특색이었는데(삿 21:16 이하)
이러한 사실은 본 절기가 가나안 인들의 농경의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기는, 초막절의 초기 형태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이스라엘의 절기였다.
초막은 후에 이스라엘이 그 유랑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였으나,
본래는 농경생활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올리브 과수원 주인들은 수확의 달(9월)이 되면, 밤마다 가지와 덩굴로 만든
오두막에 서서 올리브 밭을 감시했다.
초막절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유대교에서 지극히 인기 있는 절기가 되었다.
본 절기는 특히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기회로 이용되었다.
순례자들은 바빌로니아나 그 밖의 먼 지역에서,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위해 모은
봉헌물들을 가지고 왔다. 한편 노상강도들이 순례자들을 약탈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는 문제가 때때로 언급되기도 한다.
초막절은 일곱 번째 달(티쉬리)의 열 다섯 번째 날에 시작되었다.
이달의 첫 번째 날은 특별히 거룩한 날(레 23:23-25)이었으며 열번째 날은 속죄 일
이었다. 이 세 가지 행사들은 본래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 세분화된 듯하다.
일곱 번째 달의 첫째 날이 거룩한 날이었다는 점은 아마도 예전에 이스라엘의 1년이
가을에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 것이다.
그러나 본래 초막절은 1년의 마지막에 지켜졌다(출 23:16, 34:22).
초막절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몇 가지 의무가 주어졌다.
즉 그들은 7일 동안 먹고 자고 해야할 초막을 스스로 준비해야만 하였다.
더욱이 모든 순례자는 예루살렘의 주위에서 도금양, 버드나무, 종려나무 등의
잔가지들을 모아야만 하였다. 본래 가지들은 천막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였다
(느 8:13-18). 후에 그 가지들 중의 일부는 함께 묶어, 룰라브(lulab)라고
불리는 일종의 축제 장식물로도 사용하였다.
헌수 의식은 절기 동안에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드리는 공통의식이었다.
초막절의 첫날 아침, 제사장의 행렬은 실로암 못에 가서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할 물을 그릇에 채웠다. 두번째로 중요한 공통의식은 밤에 거행되었다.
이 의식은 축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의 낡은 의복으로 만든 심지가 끼워진 4개의 커다란 「일곱 가지의 촛대」
가 성전의 전지역을 밝게 비추었다.
그 촛불 밑에서, 의식에 참석한 자들은 피리에 맞추어서 횃불 춤을 추었고,
레위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을 불렀는데
「이스라엘의 뜰」 에서 「여인의 뜰」로 걸어 내려가면서 열 다섯 계단의
한 계단에서 마다 노래 하나씩을 불렀다. 사 30:29에서 언급된 밤의
「거룩한 절기」는 바로 이 의식일 것이다. 이 의식은 7일 동안 매일 밤마다
거의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매일 새벽에는 제사장들이 장엄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닭이 울 때 그들은 성전의 동쪽 문으로 가서, 해가 뜨는 순간 서쪽을 향해 서서
성전을 마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암송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곳에 있을 때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동쪽 태양에 경배하였으나 우리의 눈은 주께로 향했다."
(겔 8:16)
이러한 세 가지 공통 의식을 7일간의 축제기간 동안에 매일 행했다.
할렐 시편은 여덟째 날에 개최되었던 장엄한 의식에서도 불려졌다.
아홉째 날은 심하트 토라라고 불리는데 절기의 초첨이 자연에서 율법으로 옮겨짐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율법 낭독기간이 이때 시작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며,
아마도 초막절과 신년축제와의 관계와도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초막절은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밭에서부터 거두어 드릴 때",
즉 추수기와 연관지어 있다. 출애굽기에는 초막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으며,
초막의 기념적 역할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초막절의 기간이나 규례도 밝혀져 있지 않다.
순례시의 요건을 언급한 구절로 간주되는 출 23:17은 14-16절에
나중에 첨가된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이다.
삼상 1:21을 고려해 볼 때 계약법전에서 수장절은 초기 이스라엘의 유일한
순례절기이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렸던 실로에서의 의식은 삿 21:19 이하에
언급되어 있는 실로에서의 「여호와의 절기」와 동일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수장절은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환회의 의식
이었던 것 같다. 수장절은 제사를 드리기에 가장 알맞은 시였고
(민 29장에서 초막절에 드린 제물의 양은 어떤 다른 절기보다도 많다),
이러한 사실은 이 절기에는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조. 삼상 1:3-9).
또한 한나가 술에 취했을 것이라고 엘리가 짐작을 하는 것(삼상 1:14)은
이 축제의 성격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으며, 명백히 유혹을 목적으로
한 포도원에서의 처녀들의 춤은 포도수확기에
먹고 마시고 놀던 가나안 사람들의 전통적 경향을 강하게 암시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는 「여호와의 절기」였으며 출 23:16에서의 규정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가던 과정의 초기단계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 16:13-15에서 수장절은(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거행되어야 함)
초막절로 되어 있다.
하지만 초막의 의미나 기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은 7일 동안 계속되었고,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이 신명기에서는 「너의 절기」를 즐기는 데 있어서의 특별한 훈계(14절)가
"하나님이 농사를 축복하사 온전히 즐거워하게 되리라 "는 말과 함께 나온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사는 지혜
우리가 아껴야 할 마음은 초심입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셋째는 뒷심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 이유는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이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입니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동심입니다.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초심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점검해야 할 마음이 초심입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옵니다.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히 배우려는 마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초심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은 전등이 아니라 촛불과 같습니다.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맙니다
우리들은 영적 청개구리가 아닌가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 않다가
고난을 겪은 후에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청개구리는 평상시에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꼭 반대로 하였다.
살아생전에 한번도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청개구리는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자신의 불효를 후회하였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영적 청개구리들이 많이 있다.
영적 청개구리는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단 0.001% 도 반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행하심을 관찰해 보면
말씀 - 순종 - 기적 이라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말씀 - 순종 - 기적'의 원리에 순응하고 있는가?
나는 아직 영적 청개구리인가?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마디의 불평과 변명과 불순종 때문은 아닌가?
해도 해도 안될 땐 5분만 더 해봅시다.
그래도 안될 땐 그 때는 딱 5분만 더 해봅시다.
그래도 정말 안될 땐
그 때는 정말로 딱 5분만 더 해봅시다.
그래도 정말 정말 안될 땐
그 때는 정말 정말로 딱 5분만 더 해봅시다.
세상엔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이루지 못하는 건 이룰 때까지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건 성공할 때까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사랑도
성공도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 뒤에 숨어 있습니다.
모든 건 원하는 대로 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절실히 원하지 않고
절실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매주 15,770 여명의 회원님들에게 한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