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휴가
이 철현
일시 : 2009. 9. 2
매년 맞이하는 하계휴가지만 올해는 마지막 일정에 잡혀 어디로 갈까 궁리 끝에 마침내 왜관 역에서 00:45 출발하는 서울 행 무궁화에 몸을 실었다. 처음엔 동남아로 갈까 하였으나 최근 신종 바이러스 플루 확산으로 해외여행을 접고 평소 동경한 한반도 서해 최북단 백령도 섬나라를 택했다. 기다림의 미학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아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고 즐기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다는 교훈처럼 낯선 바다 풍경을 체험하기로 했다. 청운의 꿈이 영글던 학창시절부터 다닌 섬을 헤아려 보니 제주도, 마라도, 울릉도, 홍도, 사량도, 저도, 제부도, 백령도, 기타 순이니 앞으로 남은 내 인생 몇 개소 더 다닐 수 있을까. 새벽차로 올라온 나는 서울역에 내려 인천 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 어느 할머니가 운영하는 설렁탕 집에 들러 식사 후, 06:00 연안 부두 행 버스를 타니 손님이라고는 맨 뒷좌석에 앉은 어느 여학생이랑 단 둘뿐이네. 버스는 말로만 듣던 신촌, 넓은 한강을 바라보는 국회의사당, 양평 동, 인천 만수 동, 석 바위, 제물포역, 인천 항, 종합어시장을 지나 국제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부두 간판에는 “세계를 여는 인천항, 미래를 여는 인천항” 글귀가 어울린다. 인천에서 백령도 까지는 210km 로서 출구에서는 간단한 신분증을 확인하고 08:50 마린브릿지호는 시속 60km로 순항한다. 배는 잠시 후,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국내 최대 사장교인 인천 대교 Y자형 주 탑 아래를 통과하니 그 높이가 서울 타워와 맞먹으니 감개무량하다. 뱃머리는 하얀 물거품을 물고 달린다. 어떤 이들은 갑판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람에 시름을 날리며 술잔을 기울인다. 나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싱그러움을 주는 바다가 베풀어주는 선물을 맘껏 받아 드린다. 철석 처얼석- 가이드는 북방한계선과 가장 근접한 백령도 면적은 46.28 제곱 키로미터의 섬으로 국내에서는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약 100만평이 증가하여 현재는 8번째 큰 섬에 닿을 것이라 한다.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나는 문득 고인이 된 죽마고우 H가 그리워진다. 소탈한 그는 이곳 백령도에서 하사관 생활을 5년간 하다 휴가 받아 오는 날은 친구들이 동네가게로 몰려와 저녁술잔을 들며 백령도의 고생담을 들려주곤 했다. 지금 그는 내 곁을 떠났으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가 그리운 것은 용감무쌍한 군인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손님들은 피로해 빈 좌석마다 덜렁 누웠다. 이들도 휴가를 받았을까 연로한 분이 많다. 방금 스피커에서는 소 청도는 12:45, 대청도는 13:05, 백령도는 13:30, 도착예정이니 가슴이 설레네. 배는 잠시 아담한 어구 소청도, 대청도에서 손님을 태우고 출항하니 13:40 학수고대하던 백령도가 내 품에 안기네. 지금 이 순간 감회는 결코 뇌리에서 지울 수 없으리라. 분단의 아픔도 잊은 채 총부리를 겨누며 살아온 용사들이여! 오늘도 한반도 심장부를 네가 수호하니 우린 여기에 두발을 딛고 내린다. 어차피 당신과 나는 1박 2일에 걸쳐 정을 나눌 터이니 속마음을 열어주게나. 배에서 내린 일행은 버스를 타고 철쭉꽃이 흐드러진 숙소 아일랜드케슬로 향했다. 기사는 안내를 겸한 중년 분으로 “백령도는 관광이 아닌 여행목적”이라 말하며 여기서 황해도 옹진까지 27km라 한다. 나는 302호실에 여장을 풀고 버스를 타니 2차선 도로변에 코스모스가 반긴다. 그리고 백령도는 1년 농사지어 3-5년 간 식량이 가능하며, 어느 구릉지를 지나니 창가로 보이는 군인 아파트 4층이 최고층 건물이라니 다들 웃는다. 또한 80만평의 간척지에는 매밀 단지를 조성 하였으나 지금은 우루과이라운드를 맞아 휴경중이라네. 대형 담소 부근에는 해바라기, 코스모스 단지가 보이고 백령도에서 가장 긴 30m 콘크리트교량을 지나니 해변 길에 특이하게 생긴 삼형제 바위를 보며 사진을 찍는다.
삼형제 지간이여!/너는 왜 이곳 해변에서 정을 나누며/오늘도 귓전의 파도소리 엿 듣고 있나/라고 묻자/그는, 우린 어릴 적부터 이 곳 바닷가에 놀러와 /그만 집을 잃고 주저앉은 삼형제 바위라네./ 라고 말했다.
이어서 천연기념물 392호 콩 돌 해안에 도착, 하얀 파도에 발을 담아 거닌 자갈밭길은 동심으로 돌아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윽고 해병 유격장을 지날 무렵 기사는 말했다. 백령도는 현재 군인을 포함한 인구 약 9,000여명에 18개 자연부락과 종교는 기독교 9개소, 천주교 2개소, 불교 등이 분포하며, 지금부터 약 150여 년 전, 언덕위에 건립되어 최근 개축한 중화 동 교회를 관람하는 사이 만약 이 건물을 재축하지 않았더라면 문화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2차선 도로를 따라 백령도의 하이라이트 두무진에 도착, 유람선에 몸을 실어 한 시간쯤 규암, 이질암 등에 깎아지른 바위를 보고, 일행은 다시 저녁노을이 불타는 해당화 횟집에서 놀래미 회로 석식을 즐긴다.
해거름, 백령도 최북단 두무진항에 오니/물새 떼 저공 하는 자태는/ 나그네를 향해 선보일 자태라/삐걱삐걱 뱃머리를 돌리니/선대암 등 수많은 형상 암은/붉은 해병대모습에 위풍당당 도열하네/선상의 손님들은 손뼉을 치며 웃고/검푸른 물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절벽아래는/기암 동굴 사이로 천 년 사연 피어나네/어둠을 마신 통통배가 사열을 마치니/ 아까 놀던 저녁 새는/ 붉은 노을 너머로 쌍쌍 날개 짓으로 웃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기사는 말했다. 백령도에는 산골마다 독사가 많아 밤 숲에 가지 말고, 여기는 병원이 없어 몸이 아파도 육지 가서 아파야지. 119 부르면 군 헬기 출동하는데 3시간 이상 소요된다네. 또한 노래방은 숙소에서 폰을 누르면 콜택시가 달려와 안내하니 그나마 다행이더라.
다음날 아침, 일행은 조식 후, 가방을 챙겨 버스에 오르니 어제 못 간 코스로 향한다. 첫 번째 길은 푸른 물살 너머 북한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 사자바위를 보며 사진을 찍고, 다시 옛 목장용지 몽운 사 건립 부지를 참배하니 건물 안 유리 상자에 전시된 발우 중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티벳 고승들이 이용한 해골발우(鉢盂)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놀라게 했다. 이어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정한 농촌체험 백령 연꽃 마을에 도착하니 천하대장군상에 ‘얼뜻 오시구리’(어서오세요)라고 쓰인 방언이 눈에 띈다. 또한 여기는 화장터가 없어 전부 매장하며 특히 산속에는 뱀, 꿩이 많다네. 이어 북측 장산곶 임당수와는 17km 거리인 심청 각에 들러 은빛 물살 손짓하는 곳을 향해 쌍안경으로 보니 붉으스럼 한 물체는 바위 인 듯 하다. 이어서 명품 마을 백령 물산을 방문하니 해풍과 해무를 머금은 백령 약쑥 효능은 건강에 좋다하니 관심을 보인다. 다시 해안 길을 따라 절묘한 바위군상 등대를 바라보며 오늘의 마지막 코스 천연기념물 391호 사골천연비행장에 도착하니 해변 천연활주로는 세계에서 두 곳 뿐이며, 6,25때 미군 폭격기가 실전에 사용한 곳이니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버스를 타고 백사장을 질주해도 거뜬하니 다들 경탄한다. 기사는 이탈리아 나폴리에도 이런 곳은 있으나 전쟁 때, 북측에 안 넘어가 천만다행이네. 12:10 오늘의 점심은 특산식품 사곶 냉면집에 들러 메밀국수에 소주잔을 나누며 여정의 마무리를 한다. 여행은 여전히 미완성 작품,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던가. 이제 기사랑 안녕할 시간.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13:50, 인천항을 향하니 영종도여 안녕! 인천대교여 안녕! 아쉬운 18:20 인천연안부두에 도착하니 “세상은 내가 보려는 만큼 보인다.” 라는 어느 건물 간판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끝)
첫댓글 운치와 정이 담긴 산행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