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의 속성
임덕기
공룡시대 화석이 살아있다
살아서 천년의 삶을 이어간다
더 이상 진화가 필요치 않다고 거부하며
홀로 기품있게 살아간다
홀로 서서 고독을 즐기는 명상가이다
친척도 없이 처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사는 것은
철저한 계획과 준비성으로 태어난
완벽을 추구한 부모 덕분이다
급변하는 계절변화에도 휘둘리지 않는
끈질긴 고집 덕분이다
갈바람이 불어 은행 알이 땅에 떨어지면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악취를 풍겨
처음부터 접근을 막아버린다
이중 잠금장치 안에 열매를 숨겨두고
비로소 안심하는 완벽주의자다
바람에 샛노란 은행잎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길게 살려면 철저한 준비성이 필요하다고
바닥에 떨어진 잎들이 넌지시 제 속내를 드러낸다
---애지, 2024년 겨울호에서
지구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나무는 은행나무이고,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나무’라고 불리운다. 은행나무는 페름기(2억 3천~2억 7천만 년 전),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 3천 5백~1억 8천만 년 전), 백악기(6천 5백만~1억 3천 5백만 년 전)에도 존재했으며,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멸종되었지만, 은행나무는 아직도 여전히 살아 있는 나무라고 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의 은행나무의 보호수는 800여 그루이며, 이들 중 천연기념물은 22그루,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 나무도 28그루나 된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 충북 영동의 영국사 은행나무, 충남 금산의 보석사 은행나무, 강원도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목이며, 그 장중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은 전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은행나무는 극단적으로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가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고 하더라도 그 줄기 밑에 새로운 새싹이 돋아날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백 년에서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의 상당수는 원래의 줄기가 없어지고, 새싹이 자라 둘러싼 새 줄기라고 한다.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터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 등의 항균성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어 병충해가 거의 없고, 열매는 육질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그 외에 긴코릭산Ginkgolic acid 등이 들어 있어서 피부염을 일으키 때문에 사람 이외에는 다른 새나 동물들이 아예 씨를 발라먹을 엄두도 못 낸다.
은행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이며,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종의 건강함은 어느 나무와 동식물들도 따라올 수가 없다. 공룡시대의 화석과도 같은 은행나무, 천년을 살고, 또, 천년을 살며, 더 이상의 진화를 거부하며 더없이 아름답고 장중하게 그 기품을 유지하고 있는 은행나무----. 은행나무의 목표와 은행나무의 의지와 그 어떤 사나운 비바람과 외적의 침입도 다 막아낼 수 있는 천하무적의 용기와 성실함은 모든 영웅호걸과 제국의 본보기라고 할 수가 있다. 은행나무는 임덕기 시인처럼 사색을 좋아하고 명상을 즐기며, 은행나무의 샛노란 단풍길은 이 지구상의 천국의 입구라고 할 수가 있다.
친척도 없이 처음 태어난 그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철저한 계획과 준비성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은행나무, 급변하는 시대와 그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중 잠금장치 안에 열매를 숨겨두고/ 비로소 안심하는 완벽주의자”인 은행나무----.
이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오래사는 은행나무, 이 세상에서 가장 목재가 좋고 그 어떤 병충해에도 끄떡없는 은행나무,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황홀한 언어로 이 지구촌을 은행나무의 천국으로 만드는 은행나무들----.
바람에 샛노란 은행잎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길게 살려면 철저한 준비성이 필요하다고
영원한 제국의 상징도 은행나무이고, 영원한 군주의 상징도 은행나무이다.
임덕기 시인의 [은행나무의 속성]은 은행나무의 찬가이며, ‘인간 중의 인간’인 영원한 시인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