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칼럼/성균 아고라] 교시 '인의예지’와 고려사람의 이름
지금까지 발굴된 고려시대 묘지명이 220여개라 한다. 묘지명은 망자亡者의 이름이나 가계, 행적 등을 글로 써 망자의 묘에 넣은 돌판을 이른다. 그중에 하나, 어느 여성의 묘지명에 대해 최근 알게 됐는데, 여러 가지로 너무 인상적이었다. 46세에 병으로 숨진 아내에 대해 남편(최루백)이 아내의 이름(염경애)을 밝히며 직접 쓴 것도 이색적이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을 마지막 구절에서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 감정이입될 정도로 울림이 컸다.
“병이 들어 그대가 세상을 떠나니 나의 한이 어떠하겠는가? 믿음으로써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겠노라. 아직 그대와 함께 하지 못하는 일이 애석하다. 아들 딸이 있어 나는 기러기떼와 같으니 훗날 창성하리라” 아내와 같이 죽지 못함을 '오호 통재'라 애석해하는 남편은 아이들이 창성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묘지명으로나마 그 여성의 이름이 밝혀져 다행한 일이다(묘지명으로 확인된 여성이름은 고려를 통틀어 모두 다섯 명이라고 한다). 더구나 ‘경애瓊愛’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이름이지 않은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4남 2녀 자녀들의 이름이었다. 최단인崔端仁, 단의端義, 단례端禮, 단지端智, 귀강貴姜(여), 순강順姜(여). 아니, 그 당시에도 ‘인의예지’가 사람이 갖춰져야 할 네 가지 덕목임을 깨닫고, 네 아들 이름에 한 자씩 붙였다는 게 자못 신기했다. 더구나 항열行列의 가운데 이름도 맹자의 ‘사단지심四端之心(측은지심 인지단, 수오지심 의지단, 사양지심 예지단, 시비지심 지지단)’에서 따온 게 분명한 ‘실마리 단端’자이지 않은가. 고려 인종과 의종 연간인 1130-1140년대인데, 그때에도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우리의 유학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이었을까?
문득, 70년대 후반 모교 영어영문학과(76학번)에 우리보다 서너 살 많은 화교 출신 형의 이름이 생각났다. 언배의焉培義. 언씨는 중국에서도 희성이라 했다. 부모님이 수원에서 중국집을 크게 경영했는데, 자기는 차남이라며 5형제 이름이 가운데 이름 배培자에 끝이름을 인,의,예,지,신이라고 차례로 지었다고 했다. 배인, 배의, 배례, 배지, 배신. 어쩌면 그렇게 아들만 다섯을 낳으리라고 생각하고 지은 것일까, 딸이었어도 그렇게 지었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또한 모교의 건학이념과 교시校是가 동시에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400여개의 대학이 있다지만, 건학이념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인 대학이 어디 있던가? 교시 ‘인의예지’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기본 덕목. 어질고(仁), 의롭고(義), 예의바르고(禮), 지혜로워야(智) 하거늘, 그러지 못한 인간말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믿을 신’을 더한 인의예지신을 일컬어, 다섯 가지 떳떳한 도리인 ‘오상五常’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기치인만 해도 그렇다. 자기를 끊임없는 수양으로 닦아,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과 같은 뜻이 아닌가. 나는 모교를 다니면서 늘 건학이념과 교시가 자랑스러웠다. 더구나 개교開校가 아닌 건학建學이라니? 올해로 건학 625년, 우리 입학한 해(76학번)가 건학 578년이었으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겠는가. 600년이 넘은 대학이 전세계에 과연 몇 개나 될까? 우리 대학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십수 년 전 성균관 명륜당 마당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교수 7명에게 '조선 성균관과 대한민국 성균관대'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나의 해설을 듣고는 '처음 듣는다. 놀랍다. 자랑스럽다. 해외에 널리 알리겠다'고 하며 흐뭇하고 보람이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또한 인의예지하면 떠오르는 게 한양도성의 '사대문四大門' 이름이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대문 이름을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소지문(북대문, 현재의 숙정문)의 ‘인의예지’에 보신각(조선 후기 작명)의 ‘신’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朝鮮 500년의 로열 아카데미, 왕립대학교, 성균관成均館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은 모교 성균관대학교. 우리나라 지폐의 주인공들을 보자.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모교의 영원한 이사장이며, 5천원권의 이퇴계 선생은 총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1천원권의 이율곡 선생은 학생이었으며, 5만원권의 신사임당은 당연히 학부모이지 않은가. 주권을 가진 한 나라의 지폐 4종의 주인공들이 모두 특정 대학의 인물들과 관계가 깊은 것만 보아도 모교가 얼마나 ‘오래된 미래의 대학’인지가 분명하지 않은가.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최영록<영문 76. 생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