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감시견으로 표현했던 조응전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한때는 청와대의 실세로 불렸던 조 전 비서관이 친정인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검찰의 수사 방향이 문건 유출과 명예훼손인 만큼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에 관여했는지, 그리고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와 십상시’ 보고서 작성에 어떻게 관여했는지가 핵심입니다.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올린 보고서의 신빙성이 60% 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남 중식당에서 열린 십상시 모임에 참석한 사람에게 직접 듣지 않고서는 올릴 수 없는 보고서라는 게 조 전 비서관의 판단입니다. 조 전 비서관의 인터뷰를 보면 박 경정에 대한 신임이 두터움을 알 수 있습니다. 박 경정은 감시견이었던 조 전 비서관의 눈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 경정, 윗선이 원하는 보고서 작성 경향”
하지만 박 경정에 대한 경찰 내부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우호적인 쪽은 적극적이고 발로 뛰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자기 과시욕이 지나치고, 윗선이 원하는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향이 짙다고 평가합니다. 과거에도 인사 검증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려 물을 먹인 경우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위험 인물’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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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에 출석하는 박관천 경정.
박 경정이 청와대를 나온 결정적인 이유도 보고서의 신빙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올해 초 박 경정의 인사 검증 보고서가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청와대 일부(?)에서 경질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박 경정이 ‘정윤회와 십상시’ 모임에 대한 문제의 문건을 작성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저런 문제가 맞물려 박 경정은 도봉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당시 인사이동도 요동을 쳤습니다. 청와대와 경찰 안팎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경정은 원래 국무총리실 공직기강팀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이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도봉경찰서였습니다. 여기서도 박 경정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정보과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청와대 파견 경찰은 관례적으로 승진과 함께 청와대를 나옵니다. 박 경정은 총경을 달고 나왔어야 했지만 좌천을 당했다는 게 청와대와 경찰 안팎의 전언입니다. 이 인사에는 누구의 입김이 작용했을까요?
십상시 모임 과장됐나?법조계에서는 박 경정의 ‘정윤회와 십상시’ 보고서가 과장됐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을 믿었기에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박 경정이 과장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조 전 비서관의 신념(정윤회와 3인방에 대한 감시견)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검찰 수사 방향은 명확합니다. 우선 문건 유출의 경우,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생산한 문건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거의 확실시됩니다. 다만 박 경정이 청와대에 있을 당시 다른 직원이 몰래 복사해 외부에 따로 돌린 적이 있는지, 아니면 박 경정이 청와대를 나왔을 때 서울청 정보분실 직원들이 몰래 복사했는지는 더 수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첫 보도를 한 언론사가 어떻게 문건을 입수했는지도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어찌됐건 박 경정은 대통령 기록물(청와대는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고 했지만 법적으로는 대통령 기록물)을 외부에 들고 나왔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박 경정이 직접 언론사에 문건을 전달했거나 외부에 돌렸다면 더 중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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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두 번째 명예훼손 부분은 검찰이 중식당의 CCTV나 예약기록, 신용카드 결제 기록, 식당 주인과 종업원 조사 등을 통해 ‘정윤회와 십상시’ 모임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구체적으로 모임의 정황이 드러나지 않으면 이 또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여전히 남는 인사 개입 논란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래도 여전히 정윤회씨 측과 청와대 3인방의 인사 개입 논란은 남는다고 말합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선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 경정과 언론만 처벌하고 유야무야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조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검증도 끝나지 않았는데 인사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통탄입니다. 검찰 수사가 끝나도 여전히 청와대의 불투명한 인사 검증 시스템은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