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계명의 정신, 사회적 약자 보호
이사 38,1-6.21-22.7-8; 마태 12,1-8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2024.7.19.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히즈키야는 남 유다 왕국의 제13대 임금으로 즉위해서 30년 가까이 다스리며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당시 얼마 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 왕국이 우상을 숭배하던 죄의 벌로 멸망당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남 유다 왕국도 앗시리아의 침입을 받았지만 이집트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주었기 때문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치세에 예언자 이사야가 활약했는데, 오늘 들으신 독서 내용은 히즈키야 임금의 말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선대 임금 어느 누구보다도 더 하느님께 충실하느라고 철저하게 앗시리아의 우상들과 우상숭배 예식을 척결했던 히즈키야 임금이었기에 말년에 병이 들자 이사야가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니 집안일을 정리하라고 하니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이사 38,3)
이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이사야에게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이제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이사 38,5-6) 이 말씀을 들은 히즈키야 임금이 표징을 요구하자 이사야는 선왕 아하즈가 세운 해시계의 그림자를 열 칸 뒤로 돌리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이사 38,8ㄴ) 바빌론에서 들여온 당시 해시계의 눈금으로 열 눈금이면 40분이지만 그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낫고 나서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시간을 멈춘 기적 사건에 대한 기록은 아모리 부족과 전투를 벌리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주신 기록이 나옵니다.(여호 10,12-13)
해의 운행을 멈추고 수명을 열다섯 해 늘리는 기적을 일으킬 정도로 기도의 힘을 보여준 히즈키야는 다윗 왕 이후 솔로몬에 이어 이스라엘 역사상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쓰여진 후대의 평가가 이렇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 …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유다의 임금 가운데 그만 한 임금이 없었고, 그보다 앞서 있던 임금들 가운데에서도 그만 한 임금이 없었다.(2열왕 18,3.5)
이보다 훨씬 후대에 역대 임금을 평가해 놓은 역대기에서도 히즈키야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성전을 수리하고 청결케 하는 등 일종의 성전 정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는 산당들을 없애고 기념 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들을 잘라 버리는 한편, 모세가 제정한 축제일들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는 등 절기 전례를 다시 부활시켰는데, 특히 파스카 축제를 성대하게 치루었습니다.(2역대 29-30장 참조)
히즈키아 임금 이후 남 유다 왕국은 일곱 명의 임금이 더 다스리다가 앗시리아에 의해 기원 전 586년에 멸망당합니다. 지도자들은 살해당하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으며, 아시리아의 눈에 이용가치가 없다고 본 가난한 이들은 그대로 유다 땅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70년이 흐른 후 바빌로니아의 키레스 임금의 해방령에 의해 유다인들은 유다 지방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교를 재건하게 되지요. 이때 개혁을 주도했던 요시야에 의해서 율법이 강화되었고,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바리사이들도 결집운동을 이 즈음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이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지 못해서 또 다시 유배를 당한 것이라고 여기고는 율법 준수를 강화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안식일 준수를 명하는 십계명의 제3계명이었습니다. 모든 생업을 쉬고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는 예식에만 참여해야 한다는 엄격한 해석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복음에 나오는 상황처럼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다른 이 소유의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 이삭 몇 알을 뜯어 먹은 것도 계명 위반이고, 태생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뜬 다음 자기가 깔고 앉아 있던 담요를 들고 걸어가도 그 날이 안식일이면 계명 위반이고, 안식일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어도 계명 위반으로 고발하는 일이 바리사이들의 행태였습니다. 히즈키야가 단행했던 파스카 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했던 전례 개혁 정신은 파스카 과업의 정신, 즉 억압받던 사회적 약자들을 해방시키라는 것이었는데 바리사이들은 입법 취지를 반대로 거슬렀던 셈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십계명의 제3계명을 글자 그대로 엄수하느라고 인간의 현실과 진실에 눈이 멀었던 것이 문제라면, 오늘날에는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이 주일미사에 빠지지 마라는 식으로 축소된 데다가 영세한 신자들 중 주일미사를 빠지는 비율이 절반을 넘어 열에 아홉이 된 지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래저래 십계명의 제3계명의 취지와 이유가 무시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가르침에 이어,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으로 제3계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겸손되이 일컫는 이름이었고 보면,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예수님이시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개혁하신 종교의 질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 즉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이 첫째가는 계명이라는 데서 비롯됩니다. 인간 사랑, 그 중에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나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곧 하느님 사랑의 척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노동을 쉬어야 한다는 기본 취지말고도 제3계명은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되새기게 하는 촉구이며 아직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다짐하는 기회여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그 초점은 인간 사랑,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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