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만나 / 민소연
해가 진 후에도 매미가 운다 여름 막바지의 마음으로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붉어진 뺨을 쓸어내린다 누구라도 괜찮다는 간절함은 좀 무섭기도 한데 그래도 너희가 왔으니까 너희의 근황이 궁금해…… 나도 종종 이런 걸 들려줄 자리가 오리라는 걸 알아서 얼굴이 달아오를 경험들을 했다 할 얘기를 많이 쌓아두었다 너희를 만나기 위해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다가도 손을 다치던 날이 있었지 오는 길엔 매미 허물이 잔뜩 쌓인 걸 보았는데 그게 참 부끄러웠다, 그런 게 한데 모여 있다는 게 아이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고 여자는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던지듯 놓았다 날개까지 탈피하는 곤충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투명한 껍질이 추락하는 나무를 바닥에서 조각나는 소리 너는 민망한 얼굴로 잔을 떨어뜨린 손을 매만진다 빗자루를 손에 쥔 사장님은 다치지 않았으면 되었다 말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는 잔 대신 사케를 한 병 더 주문한다 그래 우리는 아직도 하지 않은 얘기들이 있지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지냈니…… 그렇구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마지막으로 한 잔씩은 더 마셔야겠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나는 너희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여기 온 걸 안다 그래서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경험들을 …… 이것도 비밀이었는데 마지막이니까 생각하면 이마가 더 뜨거워진다 나만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렇다 그런데 여기…… 아까부터 이런 얘기를 하기엔 너무 조용한 것 같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4년 10월호 ----------------------------------
* 민소연 시인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재학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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