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태산목이네 / 이향아
아파트가 낡았다 허물고 다시 짓자, 높이 짓자, 신바람이 났는데 왕자 같은 숲들은 어찌할거나, 난 몰라, 우린 몰라, 염치 좋게 고개만 흔들 것인가, 재건축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는 은행나무 가지마다 펄럭이는데 ‘아, 태산목이네’ 친구마다 나를 우러렀었지, 이제 무슨 낯바닥을 쳐들어야 하나, 팽나무 열두 폭 초록 그늘에 애벌레처럼 숨어야 하나, 너그러운 아저씨 느티를 쳐다보면 육십 년 만에 흔들리는 아버지의 그넷줄. 은하수 큰 별 같은 나무들의 명예, 계절의 귀빈들께 면류관을 씌워야 해, 오래 참고 기다리던 배롱나무도 때를 알고 한바탕 소나기처럼, 막판의 진분홍을 불쏘시개처럼 아우성치며 타오르고 있는데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4년 10월호 ----------------------------------
* 이향아 시인 1938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6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모감주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등, 수필집 『오늘이 꿈꾸던 그 날인가』 등, 문학이론서 『창작의 아름다움』 등 2003년 한국문학상, 2010년 미당시맥상, 2018년 신석정문학상, 2020년 문덕수문학상, 2024년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호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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