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사람이 타고난 천성은 원래 정직한 것인데, (거짓 수단으로써 처세하는 등) 진실하지 못하고 허위적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결과가 있을 리 없다. 비록 좋은 기회를 만날 때도 있겠지만, 이는 요행일 뿐이며, 의외로 불행을 면했더라도 그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결국에는 좋지 않다. 그렇게)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은,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子曰: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
‘질’質과 ‘문’文을 말한 후, 공자는 사람의 천성은 원래 곧은길로 가고, 정직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묘한 얘기가 되겠는데, 사람은 정직한 것을 좋아하며, 심리학적으로 보더라도, 설령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친구는 정직한 것을 좋아합니다. 정직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좋아할 뿐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옳은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남이 정직한 것을 좋아해서, 스스로 정직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정직한 사람에 대해서는 기꺼이 속임을 당하려고 하면서도 좋아합니다. 교육적으로 보면, 어떠한 교육도 다 어린이로 하여금 정직하고 거짓말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할까요? 불가능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십 몇 년 전에 내게 어린애가 하나 있을 때였는데, 저녁때만 되면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쉴 수가 없고 어떤 때는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나는 정말 피로해서, 손님이 한 분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도 아이에게, “내가 이층에 올라가 잠을 좀 잘 테니 사람이 오거든 내가 없다고 그래라.” 하고 일러두었습니다. 이윽고 손님이 찾아오자, 우리 아이는 이렇게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빠가 잠 좀 잘 테니 손님이 오시면 안 계신다고 말씀드리라고 했어요.” 어린애를 나무라야 했을까요?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 아이한테 정직하라고 가르쳤고 그 아이는 정직하게 말했으니, 그 아이는 옳고 내가 옳지 않았습니다. 그럼 사람은 도대체 솔직해야 할까요, 그러지 말아야 할까요? 융통성 없이 한결같이 솔직한 것은 좋은 것일까요, 아닐까요? 이게 모두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처세는 확실히 어려워, 일평생 살아갈수록 알 수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공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 정직하고 솔직합니다. 우리가 보면 어린애마다 정직합니다. 유치원 아이들 중에 잔머리를 쓰는 아이가 하나 있다면, 그 아이는 큰 문제입니다. 그 당시에 몸과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커서 문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잔머리를 쓸 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점점 자라고 경험이 많아지면 ‘망’罔해집니다.
이 ‘罔’(망)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보통 사용하는 미망(迷惘: 흐리멍텅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역주)의 ‘惘’(망)자는 ‘罔’ 옆에 ‘마음 심’(心)을 더했습니다. ‘罔’(망)자의 뜻은 허위ㆍ내용 없음을 나타냅니다. “망지생야”罔之生也는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고 허위적으로 일생을 지낸다는 것입니다. 허위적인 사람은 좋은 결과가 있을 리 없습니다. 좋은 기회를 만날 때도 있겠지만 이는 요행일 뿐이며, 의외로 불행을 면했더라도 그것은 결코 필연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결국에는 좋지 않습니다. 공자의 이 두 마디는 사람이란 타고날 때는 정직한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罔’(망)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 수단으로 처세하고도 매우 좋다고 느끼겠지만, 결과는 반드시 나쁘며, 비록 좋더라도 요행히 화나 면하고 있는 것(幸而免)입니다. 그런데 요행히 화나 면하고 있는 것은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로서, 이런 도박성 행위는 위험이 너무 크고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논어별재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