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49일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미처 태우지 못한 할머니의 옷가지를 정리하시며
눈가가 붉어지셨지요.
나 또한 눈물이 납니다. 노환으로 3년 동안 누워 계시며 그렇게도 좋아하던 아들 얼굴은 못 알아보셔도
내 목소리만큼은 기억하셨거든요. 태어나서 시집갈 때까지 할머니랑 같은 방을 쓴 덕분이지요.
“할매” 하고 부르면 “응.
항아 왔노?” 하고 한숨을 고르시면서 언제나 유언처럼 하시던 말씀은 “어른들께 잘해라”였습니다. 할머니는 따뜻한 늦가을, 눈물 한 줄기와 함께
숨을 거두셨고 나는 퍽 많이도 울었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여전히 할머니의 옷장을 정리합니다.
할머니가 즐겨 입던 고동색 바지, 연분홍 카디건, 내복들을 켜켜이 정리하고 있는데 “어? 이건…”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줌치였습니다.
어릴 적 손자손녀들이 착하고 예쁜 짓을 할 때마다 장롱 속의 빨간 줌치를 꺼내, 그 속에 있던 사탕과
캐러멜, 10원짜리 동전을 주시곤 했지요. 오직 할머니만의 영역이었던 줌치, 그 줌치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 사랑의 창고였습니다.
얼마 전에 나는 식구 앞에서 철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누구 집에 칠순 잔치가 있었는데 몇 백이 들었대. 아이고,
자식들이 그거 준비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꼬.”
그때 아버지께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그걸로도 모자라.”
아… 늙으신 아버지는 얼마나 당신의 어머니가 보고 싶으셨을까요. 나는 할머니의 유언을 기억합니다. 평생을 아들, 며느리로
할머니 봉양 잘하신 우리 아버지어머니께 잘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할매… 잘 가. 훨훨 날아서 할머니 보고
싶은 사람 만나러 가. 아버지어머니한테 잘할게. 다음에 만나면 꼭 빨간 줌치에서 사탕이랑 캐러멜 줘야 된데이. 어릴 적 내가 착한 일 했을 때
할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강아지 예쁜 내 강아지 하며 꼭 그래야 된데이….’
김수향 /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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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살롬!!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기쁨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글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시길..
좋은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소중한 할머니의 빨간 줌치에서 사랑을 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