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검양(靜修儉養)고요하게 닦고 야무지게 길러라 靜 : 고요할 정修 : 닦을 수 儉 : 야무질 검養 : 기를 양흔히 노자(老子)는 무욕(無欲)을 내세우고
무위(無爲)를 주장한다고 여겨서
어떠한 욕망도 부정하고 아무런 의지도
가지지 않아야 함을 중시했다고 여기는데,
이는 오해다.노자는 무욕을 내세웠으나
유욕(有欲) 또한 중요하게 다루었다.
아니, 유욕 위에서 그의 철학을 펼쳤다.
유욕 없는 무욕이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마찬가지로 유위(有爲) 없는
무위(無爲)가 성립되리라 생각하는가?무엇보다도 유욕과 무욕,
유위와 무위는 반대도 아니고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그 둘은 한 '짝'이다. 음양과 같이...만약 노자가 유욕은 부정하고 무욕만 내세웠거나
유위를 간과하고 무위만을 강조했다면,
그의 철학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었을 것이다.인간의 모든 행위와 문명은 이 유욕과 유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버리고 살겠다는 무욕도 유욕이고,
억지로 함이 없이 하려는 무위도 유위 아닌가.인간과 그 세계에 대해 깊이 통찰했던 노자였기에
유위는 버릴 수 없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유위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깊이 깨달았다.그러했으므로 '중적덕(重積德)'
곧 '거듭 덕을 쌓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거듭 덕을 쌓음이란 무엇인가?
'색(嗇)'에서 찾을 수 있다.색(嗇)은 '아낌'이고, 그리하여 애(愛)와 통하며
절(節; 알맞음)과 검(儉; 야무짐)과
약(約; 잡아맴)을 함의 한다고도 했다.당연히 '거듭 덕을 쌓는 이'는 군자다.
덕을 쌓기보다 이익과 권세를
좇는 데 급급한 자는 소인이다.
따라서 군자의 길을 가는 것이
곧 '거듭 덕을 쌓는 길'이다.문자(文子) 상인(上仁)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군자의 도는 고요하게 자신을 닦고
야무지게 삶을 기르는 것이다
(君子之道, 靜以修身, 儉以養生).”고요함은 들뜨지 않아서
내면에 틈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일이요,
야무짐은 서둘러 내닫지 않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깥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욕망이 들썩거리고 날뛰게 된다.
-옮긴 글-
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