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합니다 / 박춘석
상황은 사소합니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잠시 내려놓고 땀을 식히는 중입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행복은 날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개별적인 시지프스, 삶의 의미를 음미하느라 행복합니다 지금 돌에서 잠시 벗어난 시간입니다 떨어진 돌을 잡으러 가는 시간이 아니라 산에 올려놓은 돌이 잠시 산에 머무는 시간입니다
시지프스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무의미하다기보다 과일이 익어가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가 크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을 내려놓고 저쪽에서 오는 중이고 더 먼 저쪽으로 가는 사이 비어 있는 곳에서 행복합니다 돌을 초과하여 돌보다 커져서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 시집 『분자적 새』 (한국문연, 2024.09) ----------------------------------
* 박춘석 시인 경북 안동 출생. 2002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나는 누구십니까』 『나는 광장으로 모였다』 『장미의 은하』. 『분자적 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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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딜레마’를 프랑스 철학자 카뮈는 ‘부조리’라고 얘기합니다. 부조리란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인 의미만을 지니었으나,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모순되는 두 대립항의 공존상태, 즉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부조리라고 말합니다. 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해야 하는 것’인데요, 시시포스 딜레마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조리는 끊임없이 굴러떨어지는 돌을 언덕까지 올리는 행위입니다. 누가 봐도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시시포스에게 이 행위가 강요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앞의 반복되는 노동·삶의 불편도 시시포스의 딜레마와 같을 수 있습니다.
의미상으로 우리는 시시포스의 후예입니다. 우리 또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이 딜레마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화지는 말합니다. ‘나는 개별적인 시지프스, 삶의 의미를 음미하느라 행복합니다’ 어쩌면 여기에 해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현재를 위해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미래를 위해 살고 계신가요? 저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살고 있다는 증거는 제가 하는 말속에서도 자주 발견되기도 합니다. 제가 여행이나 중요한 계획을 세울 때, ‘지금’보다는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퇴직하고 크루즈 여행을 떠나자, 상황이 나아지면, ~하자”라는 등의. 이러한 저의 ‘나중’이라는 기대는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만약 제가 기대하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나는 얼마나 그 일들을 행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가정도 해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보장되겠느냐는. 건강도 지금만큼이나 유지되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결혼해 손자들을 키워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을까요?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조리’도 한몫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불투명성’이 더 큰 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조리는 대비할 수 있지만, 불투명성은 대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밀고 올라가는 돌이 언덕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나는 그 돌이 얼마만큼, 어디쯤 굴러떨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조리에 불투명성이 발휘되면, 저 돌이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언덕 아래가 아닌 골짜기에 떨어질 수도 있고, 강바닥에 빠져 발만 동동 구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그 돌을 밀고 언덕 위로 올라가야만 하니까요.
가장 완전한 선택은 돌 굴리기를 포기하는 것이겠으나, 삶속에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어 움켜쥐고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의 부조리와 과로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긴 왜 죽어. 직장 때려치우면 되잖아!”라고. 맞습니다. 누구든 자신보다 직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돌을 내려놓고 저쪽에서 오는 중이고 더 먼 저쪽으로 가는 사이 비어 있는 곳에서 행복합니다’라고요. 이 문장은 꼴치를 다투는 한화 팬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유년시절을 대전에서 보낸 저도 한화팬입니다) 스스로를 위안하는 문장처럼 들릴 수 있을것이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 될 것입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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