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9일 대회 지정시
눈꽃 세상 / 권현수
눈 오는 날에는
장우성의 동경산수화 속으로 들어가자
담묵으로 가늘게 뻗은 필선을 따라
고만고만한 나무들 이웃하고 서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젖은 화선지 품으로 번지는 먹물과 같이
生의 줄기를 타고 얼룩진 고통의 흔적들은
겹겹이 모란 송이를 한 눈이불로 덮어주고
점점이 날려 달빛조각처럼 어지러워진 마음은
무심필 결 따라 흐르는 붓끝에 모아
푸근한 설경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
천지가 드디어 제 스스로 빛나는
눈꽃세상이 되었을 때
나는 굵은 갈필로 깊은 뿌리 하나 내려
너의 곁에 자리 하리라
화폭 아래쪽으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멧비둘기 한 마리 날아 지나간다.
그대에게 띄우는 눈꽃편지 / 이채
창 밖에 내리는 눈꽃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도 한 떨기 피어나는 사랑꽃
산에도 들에도 미소로 화답하는 기쁨이여!
뿌리 깊은 믿음 안에서
행복의 꽃잎으로 나의 뜰을 수놓는 그대
스스로 넓고 깊지 못하여 후회할 때
나의 허물을 눈처럼 덮어주고
스스로 비우지 못하여 무거울 때
위로의 눈빛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그대
끝없이 높아만 지려는
욕심의 포로, 욕망의 날갯짓이 부끄러워요
소리없이 내려도
가만가만 속삭이는 눈꽃이 전하는 말
마음을 비웠기에 가벼울 수 있다고
미움을 버렸기에 맑을 수 있다고
이렇듯 고와야 깊이깊이 스며들 수 있는가
얼면서 피어도 따뜻한 느낌의 하얀 빛이여!
내 마음 가장 하얀 날
문득 착해지고 싶은 날
꽃잎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오늘은 하늘 천사가 되어
하얀 연필, 하얀 종이
하얀 마음 그대에게 눈꽃 편지를 쓰려네
눈꽃 / 명위식
애타게 기다려도 오시지 않더니
밤새 도둑처럼 오시었구려
내친 걸음 쉬이 오시는 길
사흘이 멀다않고 오시는 임
나무가지 시린 눈꽃 피고
회오리바람에 눈보라 날리며
자신의 존재 엄히 꾸짖으시더니
쾌청한 햇살 변덕에 돌아누우며
눈물 짓는 당신이 애처롭구려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워해도
만날 수 없더니
마음 열고 당신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떠나 버린 후
아픈 마음으로 돌아서야 하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작은 지붕 위에 /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 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