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연합, 연합
(열왕기하 18:3-8)
히스기야는 아하스 왕의 아들로, 부친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던 왕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른 지 25세, 젊고 경험이 없는 그에게
**정치적 위협(앗수르)**과 **영적 침체(우상 숭배)**는 너무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이전 세대의 잘못이나 환경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히스기야는 국가적 위기, 혼란한 정치, 영적 타락이라는 삼중고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의 유일한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에 이 말씀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히스기야의 선택은 무엇이고 오늘 우리의 선택인가요?
1. “산당을 제거하다(4절)– 나만의 우상은 무엇인가?”
히스기야는 가장 먼저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산당을 제거하고, 아세라 목상과 놋뱀까지 깨뜨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 개혁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신앙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산당은 겉보기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 같았지만, 실상은 타협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산당’은 무엇입니까?
예배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먼저인 습관이 있습니다.
문제 생기면 먼저 검색부터 하고 기도는 나중에 하는 반사적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팔로워 수, 조회수, 이미지 관리에 더 민감한 삶입니다.
히스기야는 과감히 끊어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동시에 ‘디지털 소비자’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내 삶에 있는 ‘산당’을 제거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먼저 제거해야 할까요?
혹시 의지하고 싶은 돈, 성공,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청년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좋아요 수를 확인하고, 타인의 삶을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결국 그는 SNS 앱을 삭제하고, 아침에 핸드폰 대신 성경을 10분 읽는 습관으로 바꿨습니다.
몇 주 후, 그는 고백합니다.
“산당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던 ‘작은 습관’이었어요.”
‘산당’은 시대에 따라 모양만 바뀔 뿐,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체면 경제 안정 관계 중독 자기중심 신앙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아 우상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모든 걸 끊어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선, 다른 걸 먼저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5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사사기 2장 11–13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수아 24장 14–15절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여호와께 연합하다(6절) – 하나님과 연결된 삶”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연합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דָּבַק)**인데,
이는 접착제처럼 단단히 붙는다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만을 붙잡기로 결심했습니다.
‘연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다바크(דָּבַק)”,
즉 들러붙다, 떼어낼 수 없을 만큼 밀착하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절반만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전체를 드렸습니다. 전부를 맡겼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조금씩, 조금씩만 하나님을 원합니다.
주일만 하나님
힘들 때만 하나님
기도할 시간 없어서 대신 ‘좋아요’ 누르는 신앙
그건 연합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하나님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연합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일,
즉 내 뜻을 꺾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난과 시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붙어있는 사람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습니다.
질병 가운데 있는 분, 외로움 속에 있는 분, 실패 앞에 서 있는 분...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붙으십시오. 그분은 절대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 시대는 연결을 말하지만, 진짜 연결은 드뭅니다.
와이파이와는 연결되었지만, 하나님과는 단절된 삶,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매일 스마트폰으로는 수십 번 접속하지만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는 며칠째 로그인하지 않는 삶입니다.
한 청년이 고백합니다.
“불안해서 매일 경제 뉴스를 3시간씩 봤는데, 불안은 줄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 10분, 말씀 앞에 앉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달라졌어요.”
하나님과의 연결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오늘도 말씀 한 구절, 기도 한 마디로 하나님께 붙들리겠다.”
이게 히스기야의 방식이었고,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어느 아버지가 어린 딸과 함께 폭우 속 도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렸고,
갑자기 진흙 웅덩이에 발이 빠져 넘어질 뻔했을 때도
아버지의 손은 단단히 그녀의 손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말했습니다.
“아빠 손을 내가 놓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빠가 절대 놓지 않으셨어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내가 하나님께 붙드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분이 나를 놓지 않는 은혜입니다.
시편 63편 8절 “내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요한복음 15장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시편 91편 14절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3. “형통하였더라(7절) – 형통의 현대적 의미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올해의 형통은 무엇입니까?
모두가 말합니다.
“연봉이 오르면 형통이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으면 형통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면 형통이다.”
그러나 히스기야에게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결과였습니다.
이 형통은 눈에 보이는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내면의 담대함과 평안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고
고난 중에도 감사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 신뢰는 백성 전체를 살리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 형통은 현대적 성공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전쟁도 겪고, 병도 걸립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형통은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입니다.
그건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형통이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태 자체가 복입니다.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형통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문제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삶입니다.
한 직장인이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해고당했습니다.
한 직장인이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해고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날도 변함없이 새벽기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직장은 잃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한 오래된 교회에서, 수백 년간 중앙 제단에는 유명 조각가의 작품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지진으로 그것이 산산이 깨졌고, 교인들은 고민했습니다.
그 조각상을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놓을 것인가.
결국 그 교회는 조각상을 복원하지 않고, 십자가 하나만 단순히 세웠습니다.
교회 벽에 적힌 문구는 이랬습니다.
“사람의 예술은 부서지지만,
십자가의 능력은 영원하다.”
창세기 39장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
신명기 28장 1–2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불리한 가정환경, 위기의 시대 속에서
결단으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을 붙드는 삶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우상은 지워야 하고, 하나님과는 연결되어야 하며,
그때 우리는 진짜 형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처럼 사람의 전통, 형식, 종교적 관습을 깨뜨릴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약함이 강함되는 비결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우상이 제거되고 주안에서 형통한 삶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