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유머 그리고 (마19:24, 23:24,,)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3-05-04 (목) 07:54 127
1. 예수님과 유머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유머가 있으신 분이실까요.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이다. 가장 위한 내용을 가리치시는데 지루해 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다면 어떻하겠는가 , 예수님의 대표적인 유머 표현 중의 하나가 약대와 바늘 귀 , 낙타와 바늘 귀 비유일 것이다.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어떤 분들은 심지어 어떤 신학자들까지도 이 말씀 중 약대 즉 낙타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의 오타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설이다. 아니 경전을 그렇게 오타고 쓰고 검증도 안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반복한 내용이다. 어떻게 한 군데도 아니고 다 오타이겠는가, 그리고 경전의 필경을 졸다가 말다가 그렇게 기록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약대가 아니라 밧줄이 아닐까 하는 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설이라 할 것이다.
그것 뿐 아니라 이 말씀을 강조하는 유머적 표현이 아니라 밧줄이나 심지어 노끈이 바늘 귀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으로 하였다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되게 되어 성경전체와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아는 어렵다는 뜻과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 복음서에 이 구절이 반복이 되었는데 꼭 그 부분에서 졸다가 한 획을 더하거나 빼거나 잘못 기록하였다는 것인가, 약대 낙타가 필경사에게 수면제 역할이라도 하여 그 단어을 기록할 때만 잘못 기록하였다는 설을 말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오기는 말이 안되는 것이다. 심지어 외국에 가서 학위를 받아 온 분들 중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성경을 배우러 외국 유학이라는 것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 그들에게 무슨 학설을 배우는 것보다 토론 확증 증거 하라는 것이다. 행17:11, 17 examine, search, debate, discuss, reasone, prove , confirm, proclaim, )
마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비,막10:25, 눅18:25) 24 Again I tell you,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막10:25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눅18: 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 Indeed,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마23: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4 You blind guides! You strain out a gnat but swallow a camel.
막1: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6 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 예수님께서는 귀한 내용을 강조하기위해 유머적 표현을 하셨는데 어떤 학설을 너무 얼토당토 않는 설을 말하므로 웃게한다면 이것은 슬픈 유머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바람지기한 유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유머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부록 ( supplement) 하나님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유머 그리고 예수님의 유머라고 할 때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또한 예수님이라고 부를 때
그렇다면 하나님이 두 분이신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 이러한 칭호가 혼돈스러울 수 있다. 동일한 한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즉 한 분이라면 왜 세 다른 칭호로 부르기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혹 혼돈스러울 수 있다. 그것은 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예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요1:1, 14 , 7:29, 10:30, 14:9 16:27-30, 행16:6-10)
요한복음은 참으로 깊이 있는 책이다. 그것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듣고 보고 훈련받은 것은 물론이지만, 특별히 요한은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을 모시었고 밧모섬의 특별한 체험과 요한계시록을 받았고 현장 목회를 하였다는 것이다. 요한은 어떤 경우 즉 예수님의 변화산에서의 변형등 예수님께서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을 때 그 때로 포함되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하기 위해 준비시킨 듯 말이다. 요한신학에 대해서는 이미 시리이즈로 올려놓았다.
요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10:30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0 I and the Father are one."
요7:29 ( 하나님께로서 나오시고 보내신 예수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29 but I know him because I am from him and he sent me.
요16:27-28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7 No,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because you have loved me and have believed that I came from God. 28 I came from the Father and entered the world; now I am leaving the world and going back to the Father."
요17:8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8 For I gave them the words you gave me and they accepted them. They knew with certainty that I came from you, and they believed that you sent me.
요15:26 (하나님께로서 나오시고 보내신 성령)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6 "When the Counselo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out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bout me.
=. 하나님과 예수님 하나님과 유머 그리고 예수님과 유머 라고 할 때 1. 하나님과 예수님은 칭호가 다를 때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은 쉽기도 하지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두 분이신가 하기도 하며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회사 초기에도 하나님 예수님 성령의 관계를 선명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기 위해 니케아 종교회의를 하여 한문으로 번역한다면 삼위일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삼위일체란 용어는 성겅에도 없는 용어 그리고 한문으로 번역한 용어이기도 하여 실상은 그 용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고 설명하면 할 수록 더 어려울 수 있다.
하나님은 직임의 표현이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요17:1)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은 동일한 분의 칭호라고 하는 것이 삼위일체론의 서론 본론 결론이라고 이해 하면 될 것이다.(요10:30, 14:8-14)
1. 혹자는 하나님 예수님 또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중 한 칭호를 사용한다면 혹 다른 한 분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예수님 성령은 동일한 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염려와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직임의 칭호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시기에 역시 동일한 분이신 것이다. (행16:6-10)
이러한 좀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한 용어가 삼위일체라는 용어인데 이 용어가 실상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성경에 없는 이 신학적 용어의 내용도 한문으로 삼위일체라고 번역하여 더 어려울지 모른다.
( 교회의 신앙고백 또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고백은 예수님은 그리스도 ( 그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고 대속의 죽음심을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그리스도 ( 그 메시야) 이시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1. 삼위일체 (TRINITE )용어의 유래 최초로 니케아 회의에서 사용한 삼위일체 (TRINITE ) 는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가 공인된 이후 기독교의 통일된 이론을 모으기 위하여 니케아라는 도시에서 종교회의를 열었다. 많은 방청객이 모인 가운데 325년 니케아공개홀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모시고 열었다. 신실한 기독교인이 된 황제가 세계에 기독교를 전하려는데 여러 다양한 주장들이 있음을 알고 통일된 기독교 이론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기독교를 믿게 된 황제는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생각을 가졌으나 성경의 일치된 간략한 내용을 원하였다. 요약된 간단한 신조를 원했을 것이다. 그 결과 종교회의를 열게 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그 결론은, “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내려오신 하나님 아버지로서 바로 그 분이시며,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영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에서 합쳐지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트리니티(TRINITE, 삼위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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