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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dition 강원대학교 안나푸르나 팡 원정대
10월 29일 박수석 대원 등정…세계 2등·동벽~남릉 신루트 초등반
‘달과 여훈’ 찾아 안나의 송곳니 올랐다
글 김용길 원정대원·사진 원정대
강원대학교 원정대(대장 홍성욱)가 네팔 안나푸르나 산군의 험봉 팡(7647m) 신루트 등정에 성공했다. ‘송곳니’라는 뜻의 팡 봉은 1975년 첫 시도 이래 1980년 오스트리아대에 의해 초등됐지만 지금까지 재등이 없던 산으로, 강원대 원정대는 지난 91년과 97년에 이어 세 번째 시도에서 동벽과 남릉을 잇는 신루트를 통한 등정에 성공했다. 원정대는 97년 등반시 추락사한 김여훈 대원의 넋을 기려 신루트를 ‘달과 여훈’이라 명명했다. <편집자 주>

3캠프에서 4캠프 구간의 등반루트. 사면의 눈이 완전히 크러스트 되어 빙벽과 같았다.
약 3개월의 합숙훈련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는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합숙훈련 때처럼 빨리 가고 싶은 마음들은 조금씩 없어지고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처음 가는 원정길에 두려움이 앞선다. 9월 1일, 비가 내렸고 남들은 날씨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시원한 게 마음에 든다. 공항까지 마중 나오신 선배님, 동기, 형들에게 너무 고맙고 그 보답을 하기 위해 이번 원정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곧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네팔행 비행기의 고장으로 우리 팀은 홍콩에서 3일을 체류하였고, 9월 4일 드디어 카트만두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먼저 고소적응을 위해 랑탕 트레킹에 나섰다. 대상지는 나야캉가(5860m)를 선택하였고, 9월 6일 사브루벤시라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라마~랑탕~나야캉가 하이캠프(강진곰파 취침)~나야캉가 하이캠프~정상~강진곰파~사브루벤시 이런 일정으로 우리들은 7일 동안 고소적응 등반을 하였고, 이 등반에서 셰르파 1명과 내 동기인 수석이랑 같이 정상에 가게 되었다. 고소에서 큰 증상이 없었으며,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본 등반인 안나푸르나 팡에서도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9월 15일. 우리들은 타멜 거리로 나가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뜻밖에 내 생일파티를 그곳에서 맞았다.
등반 앞서 랑탕 나야캉가에서 고소적응 다음날 포카라로 이동을 하여, 17일 이른 아침에 헬기를 타기 위해 분주하게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모든 짐들을 헬기로 이동시키고, 대기하고 있으니 허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혼자서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등반시작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더구나 기상악화로 인해 헬기가 오늘 못 뜬다고 하니 더욱 짜증이 난다. 다음날 우리들은 오전 7시 헬기에 탑승을 하였고, 약 20분정도 후에 드디어 안나푸르나 팡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하였다. 날씨가 좋아서 안나푸르나 주봉, 4봉, 남봉, 팡, 히운출리 등이 너무나 잘 보인다. 특히 팡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워 보였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곧이어 다음 팀의 헬기가 도착을 하였고, 모든 짐을 내리고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전쟁이 시작된다고 석만형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9월 19일, 등반 첫날이다. 석근형, 홍기형, 셰르파 2명이 고정로프 4동 설치 후 오후 1시가 넘어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21일은 내가 처음등반을 시작한 날이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한다. 더구나 크레바스가 너무 커서 전날보다 약 100m정도 밖에 더 진출을 못하고, 그만 베이스캠프로 철수를 해야만 했다. 원래는 1캠프까지는 4~5일 정도를 계획하였지만, 크레바스가 너무 컸고 가스도 심한 관계로 진출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임시 1캠프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24일 종헌형, 봉하형, 찬규, 그리고 나는 임시 1캠프까지 진출 후에 다음날 1캠프까지 진출을 목표로 삼고 출발하였다. 눈이 엄청 쏟아지기 시작한다. 임시 1캠프 도착 후에는 30분마다 텐트에 쌓인 눈을 털고 치워야만 했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텐트 천창이 내 바로 코앞까지 주저앉았다. 깜짝 놀라 발로 텐트천장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가 다시 눈을 치웠다. 텐트 폴도 많이 휘어있었다. 그새 50~60cm가 쌓인 듯하다. 이제부터는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잠을 교대로 잤다. 이렇게 또 3일 동안 고립되었고 눈은 이미 1m 이상을 넘긴듯했다. 다행히 임시 1캠프자리가 안전하였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는 눈이 일주일이상 더 올 거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들은 베이스캠프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길을 러셀을 하며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베이스캠프에서도 올라와준다고 한다. 허리까지 빠지고, 목까지 빠지고, 10분이면 내려올 거리를 1~2시간씩 걸리면서 내려와야만 했다. 또한, 모든 고정로프가 묻혀있어서 찾고 빼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아직 1캠프를 구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팀은 오르면서 많은 데포를 하였었고, 그 짐들도 전부 묻혀있었다. 찾는다고 해서 찾았지만 아마도 이때 일부 카라비너와 스노바를 못 찾았던 것 같다. 9월 30일 눈이 그쳤다. 꼬박 10일만에. 그리고는 등반 12일 만에 드디어 1캠프 진출에 성공을 하였다. 우리들은 이날 마치 정상에 간 듯한 분위기였다.
폭설 속 등반 12일 만에 1캠프 구축해 이제는 벽등반이다. 그리고는 3일 만에 2캠프에 진출하였고, 다시 4일 뒤인 10월 6일 3캠프까지 진출을 하게 되었다. 11일에 4캠프, 16일에는 5캠프까지 진출하였고 우리 팀원들은 등반이 곧 끝날 것만 같았다. 이제 정상 공격을 위해 현종형과 셰르파 3명이 5캠프에 있었고, 나와 수석, 홍기형이 4캠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홍기형과 나는 몸이 좋지 않아 4캠프에서 계속 대기하기로 결정하였고, 수석이는 정상 공격을 위해 5캠프로 다음날 이동하였다. 모두들 정상을 갈 줄 알았지만 정상에서 약 200m정도를 앞두고 고정로프와 스노바가 없어서 더 이상 진출이 어렵다고 한다. 베이스캠프에서는 대장님께서 밑에서 줄을 가져와서 그 줄을 가지고 올라갈 수 있는지 물으셨지만 약 80도의 경사도로 인해 고정로프가 없으면 안된다고 한다. 아쉽지만 여기에서 철수를 결정하였고, 이날 장시간 추위에 노출이 되었던 현종형이 동상에 걸렸다. 동상이 너무 심한 듯 보였다. 특히나 손가락은 검게 변하여 더 이상의 등반은 못 할 것 같다고들 하신다. 아쉽지만 손가락에 큰 이상만 없었으면 좋겠다.

능선에 올라 3캠프로 접근하는 대원들.
우리 팀은 전 대원이 베이스캠프에 모여 3~4일 가량의 휴식을 취하고 10월 22일 등반을 다시 시작하였다. 이제 마지막 공격이라는 생각을 가졌고, 전 대원이 열심히 움직였다. 하지만 24일 오후 7시30분경 3캠프를 50여m정도 앞으도 봉하형이 추락했다는 소식이 무전으로 들려왔다. 너무 놀랐고, 다행히 무전연락이 가능하여, 석근형과 학영형이 3캠프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나는 다음날 베이스캠프로 내려가 촘롱에 가서 헬기를 부르라는 대장님의 명령을 받고는 바로 출발하였다. 하필이면 이때 위성전화까지 먹통이어서…. 나는 길을 잘 몰랐다. 헬기를 타고 왔었고,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날따라 가스도 많이 낀 상태. 군데군데 케른이 길을 표시해 주었지만 그것도 끊겨버렸다. 큰일이다. 가스로 인해 방향 감각이 전혀 없다. 어디로 가야될지 도저히 모르겠고, 막막하다. 배낭의 간식을 보니 초콜릿 3개정도, 물은 한번 마실 양이다. 날이 어두워졌고, 나는 오늘은 비박을 하기로 결정하고, 내일 일찍 베이스캠프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방향은 알았으니 무조건 움직였다. 이쪽저쪽 꼭대기를 올랐지만 베이스캠프 자리는 안보였다. 올라갈까? 내려갈까? 이제는 올라갈 힘도 없었다. 더군다나 봉하형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빨리 내려가야 되겠다. 그 후로는 계속 내려갔다. 내려가다 계곡이 나와서 일단 계곡 반대편을 한번 확인을 하고 싶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서 건너갔지만 다리까지 빠진다. 바지가 다 젖고 이쪽은 길이 없는 듯하다. 오늘 먹은 거라고는 초콜릿 하나와 눈뿐이다. 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계곡물을 실컷 마셨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또 비박을 하였다. 다행히 탈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일어나 내려가기 시작 했다. 한 5시간 쯤 걸었을 때 오른쪽 사면 위로 지나가는 외국인이 보였고, 나는 길을 물었다. 다행히 길은 찾았고, 데우랄리 로지를 발견하였다. 빨리 촘롱까지 내려가서 헬기를 불러야 한다.

5캠프에서 정상 구간의 리지, 뒤로 보이는 플라토 위에 5캠프가 점으로 보이고, 그 아래 좁고 날카로운 능선을 따라 가면 정상에 이른다.
박봉하·최찬규 대원 추락 부상 딛고 박수석 대원 등정 다음날 촘롱까지 내려가서 수현형에게 사고 소식과 헬기를 불러달라고 말을 했고, 수현형께서는 헬기 고장으로 인해 당장은 부를 수가 없다고 하신다. 또한, 헬기가 6000m이상은 뜰 수가 없다면서 일단 봉하형을 1캠프까지만이라도 내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베이스캠프로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 일단 방을 잡고는 저녁을 먹으려던 찰나 밖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신발도 안 신고는 뛰어나갔다. 현종형이다. 너무 반가웠다. 현종형은 동상이 더욱 심해져서 귀국을 하기위해 혼자서 내려가는 것이라고 한다. 베이스캠프 소식을 물으니 찬규도 4차 정상공격일인 27일에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고 혼자서도 잘 걷는다고 한다. 다행이다. 또한 무전기가 있다. 들리기만 할뿐, 연락은 되지 않지만. 현종형과 아침을 먹던 도중 갑자기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되었다. 현종형과 나는 대장님의 지시사항들을 듣고는 너무나 신기했다. 촘롱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교신이 될 줄이야! 아침을 다 먹은 후에 현종형은 하산을 하였고, 나는 수현형과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대장님의 지시사항들을 말씀드린 후 수현형께서는 무조건 봉하형과 찬규를 1캠프까지 내려야만 한다고 하신다. 또 오늘 카트만두에서 새로운 위성전화가 출발할 거라며 오늘 늦게나 내일 아침 일찍 도착할 거라고 하신다. 29일 오늘 수석이와 셰르파2명이 정상공격을 하고 있으며, 찬규는 1캠프까지 내려올 예정이고, 봉하형은 내일 내려올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수현형이 알았다고 하시며,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통화하자고 하시고, 일단은 전화를 끊었다. 나와 수현형의 통화내용들을 베이스캠프에 알려주려고 무전을 해보았지만 또다시 들리기만 할뿐 송신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지만 지금 정상공격의 상황들만이라도 들을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위쪽 상황들을 듣고 있었다. 몇 번인가 정상공격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후로는 대장님께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정상까지 100m도 안 남았다고 했는데…. 이렇게 1~2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상공격조와는 무전이 되질 않는다. 걱정이 되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는지. 계속앉아 정상공격의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오후 7시경에 수석이의 무전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등정에 성공하였고, 아까는 배터리가 없어서 연락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 산악회가 91년부터 이번 등반까지 3차에 걸쳐 그토록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인 안나푸르나 팡 동벽 남릉 리지를 드디어 개척했다. 많은 희생과 슬픔이 따랐지만 ‘달과 여훈길’을 완성시킨 이 순간 난 너무 너무 기뻤다. 새로운 위성전화는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것 같고, 내일 일찍 우리 팀 키친보이가 가지고 올라갈 예정이었다. 모든 게 잘 풀렸고, 사고자들도 이틀 후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 병원까지 무사히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전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수석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무척이나 반가웠고, 담배부터 피우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첫 원정이라서 부족함도 많았고, 아쉬움 또한 많다. 형님들!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 친구 수석아! 너에게도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 하-잇! 강대.
강원대학교 안나푸르나 팡 원정대 대상지 네팔 안나푸르나 팡(7647m) 일 정 2007년 9월 1일~11월 10일(71일간) 결 과 세계 2등, 동벽~남릉 신루트 초등반 대 원 유재형(단장) 홍성욱(대장) 이종헌(의료) 이학영(식량) 서석근(촬영) 박봉하(장비) 송일호(수송) 유현종(장비) 박홍기(식량) 박수석(식량) 김용길(기록·행정) 최찬규(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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