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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비화] 국보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3. 3. 17.
1.천 마리의 학이 날아가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풍만한 선과 푸른 때깔이 호사스럽다. 전면에 46개의 원형을 배치하고, 그 안에 46마리, 바깥에 23마리의 학을 흑백으로 상감 처리하였다. 1935년 마에다가 기와집 10채 값인 2만원에 전형필에게 팔았다. 일본인 골동상 무라카미가 그 배를 준다며 팔라 했을 때 전형필은 ‘이 보다 더 좋은 명품을 가져오시고, 이것은 본전에 가져가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국보 제68호), 아름다운 선과 맑고 푸른 때깔이 빼어난 청자매병에는 전면에 마흔여섯 개의 동심원을 배치한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또 원형을 흑백으로 이중 상감 처리한 우수한 문양, 병 전체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미인의 어깨가 연상되는 유려한 견부(肩部)가 화려하다. 원형 가운데서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마흔여섯 마리의 학과 그 원형 사이에 무수히 흐르는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스물세 마리의 백토로 상감한 학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2.천 마리의 학이 날고 있오
1935년경이다. 서울 대화정(지금의 필동)에 살던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前田才一郞)는 비취색이 바다와 같은 청자매병을 두 손으로 돌려보고 있었다. 두 눈은 아름다움에 홀려 가지런히 떨렸다. 마치 아름다운 여자의 어깨에서 허리까지를 본 딴 듯한 곡선, 가슴은 풍만하되, 허리는 벌의 허리처럼 가늘고, 그 아래는 바람 난 여자의 엉덩이 선을 그리다가 만 매병이다. 그는 연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감상하던 중이었다.
그 곁에는 박재표(朴在杓)가 초조한 빛을 거둔 채 안도의 한 숨을 내셨고, 매병의 주인인 신창재(愼昌宰)만은 말을 거둔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정말 훌륭한 청자매병이오. 조선의 도자기를 많이 보았으나 이처럼 훌륭한 것은 처음이요.”
매병을 빙빙 돌리자, 마치 수천 마리의 학이 구름을 뚫고 창공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창재, 그는 대구에서 치과병원을 경영하던 의사로서 자기의 모든 소장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해방 후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인물이다. 또 박재표는 고서화의 대수장가로 그의 소장품 일부가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렸을 정도이다.
“그런데 몸체에 철장(鐵杖) 자국이 있군요.”
마에다는 다잡은 물건이라 생각하고 약점을 지적했다. 매병 중앙에 사선으로 난 가는 흠집을 보고 그가 혀를 찼다. 가격을 깎기 위한 고도의 수작임은 물론이다.
이 청자매병은 개성 근처에서 어느 도굴꾼이 파내어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 후 몇 사람의 거간꾼을 거친 후 한 거간꾼은 자기의 고객이며 대수장가인 대구에 사는 일본인 수집가에게 이 청자를 팔기 위해 내려갔다. 실로 다시는 이 나라에서 구경할 수 없을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던지, 그가 대구에 내려갔을 때는 그 수장가는 일본으로 떠난 뒤였다. 그는 할 수 없이 신창재를 찾아와 4천원을 받아 가지고 갔다. 일본인들이 이 땅의 고미술품으로 모조리 도륙하는 것을 본 신창재는 우리의 고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훗날 자료로 남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 점의 명품을 팔아 다양한 소장품을 갖추고 싶어 지금 마에다에게 팔려던 중이었다.
“아직 이 천하의 명품에 이름이 없습니다. 분위기도 바꿀 겸 먼저 이름이나 정합시다.”
세 사람은 그 말에 동의했다. 사람이 훌륭하면 이름은 이름이고 자(字)를 포함하여 호(號)가 서너 개는 된다. 천하의 명품에 아직 이름을 없는 것이 무언가 잘못되어 보였다.
“정례대로 붙이자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지요.”
모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오랜 침묵이 흘렀을 때다. 갑자기 마에다가 소리를 질렀다.
“천학! 천학매병(千鶴梅甁)이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천 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병을 돌려 가며 보면 천 마리가 아니라 수천 마리 학 떼가 하늘로 날아가니 과연 적절한 이름이었다. 이름이 정해지자, 이 매병은 어렵지 않게 마에다의 손으로 넘어갔다. 마에다가 천학매병을 입수했다는 소문은 금방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그러자 심보가 전형필을 부추겼다.
“전 선생님, 이 물건은 꼭 잡아야 합니다. 총독부 박물관에서 일만 원까지 보며 사람을 보냈으나, 마에다 상은 팔지 않았습니다.”
“…”
“마에다 상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에다 상이 이 물건을 신창재라는 사람에게 살 때 자금 압박을 상당히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요지부동입니다. 마에다는 이 물건에 자신을 가지고 있기에 일약 도박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품 중에도 명품이라 반드시 임자가 있지요.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일 것입니다.”
일본인이라는 말에 전형필은 눈초리를 위로 치켜 올리며 잠시 눈을 끔벅거렸다.
“그는 이 물건이 고려청자로서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희대의 거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물건에 자신이 있고, 크게 출세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파는 데도 서둘지 않습니다. 가격도 일품인 청자모란국화문매병보다 열 배는 호가하고 있습니다.”
“…”
“저희 일본인 중에서도 그 물건에 대하여 군침을 삼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호가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요.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보는 충심 어린 목소리로 전형필을 설득했다.
“한번 봅시다.”
무거운 입이 열렸다. 전형필은 자기 말로 두 번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결정이며 확신이었다. 심보는 즉시 마에다의 집으로 달려갔다. 마에다는 같은 일본인으로 심보를 깔보고 있었다. 나이든 사람으로 식민지 백성의 하수인을 자처한 그가 고와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혹시 내 장인이 살려고 하면 어쩌지요?”
마에다는 가격을 치켜 올리기 위해 장인인 아마이케(天池) 노인을 지목했다. 아마이케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함께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울에 정착한 거물급 골동상으로 시청 옆 명동에 커다란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교토에 사는 거상과도 손잡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반출한 악질이다.
“그런데, 그 분이 산다고 했습니까?”
심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닙니다. 아직 연락은 없어요. 또 조선총독부도 마음에 걸려요.”
심보는 마에다의 장삿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전형필 선생은 마에다 상이 달라는 대로 줄 것이요. 한번 만나 봅시다.”
심보와 마에다가 전형필의 사랑채를 찾아갔다. 전형필은 얼굴이 부처님처럼 복스럽게 생겼고, 머리는 신식으로 깎아 기름을 발랐다. 이제 갓 삽십에 든 젊은이였으나 어느 모로 보나 어른스러워 마에다는 속으로 찔끔했다.
“자, 그럼 물건을 보시지요.”
양쪽의 눈치를 살핀 심보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자 방안에는 순식간에 냉기가 흐르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돌았다. 마에다가 옆에 놓아 둔 보자기를 앞으로 당겨 끄르더니, 이윽고 오동 상자의 끈을 풀었다. 전형필은 천 근 같은 무거운 표정으로 지그시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뚜껑을 열고 도자기를 꺼내자, 푸른빛이 방안에 가득했다. 세 사람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도자기를 잡은 마에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음.”
전형필이 가는 신음을 토했다. 고미술품이라면 숱한 것을 보아 왔으나 이 매병처럼 때깔이 곱고, 형태도 온전하고, 또 문양까지 우수한 것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어디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마에다가 도자기를 얼른 전형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전형필은 매우 조심스럽게 매병을 잡더니 한참을 빙글빙글 돌리며 감상했다.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어떤 환희에 찬 모습이 역력히 나타났다.
“음.”
마에다와 심보의 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참으로 훌륭한 청자입니다. 전 선생님. 이 청자매병을 마에다 상이 이름지었습니다.”
“…?”
전형필이 궁금한지 눈을 끔벅거리다 도자기에서 눈을 떼어 심보를 바라보았다.
“예. 이름이 기가 막힙니다. 천학매병.”
전형필의 입에서 엷은 미소가 번졌다. 동감의 표시다. 전형필이 심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정을 하라는 표시였다.
“마에다 상, 그래 어느 정도 쳐주면 되겠어요?”
속으로 열심히 셈을 하던 마에다가 흠칫 놀랐다.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방안에는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마에다의 목구멍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만 원.”
“뭐요! 이만 원.”
마에다의 말에 심보가 놀라 자빠졌다. 1935년 당시 고려청자 값으로는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당시 서울 장안에서 쓸 만만 기와집이 2천 원 정도였으니, 기와집 열 채 값이요, 시골에선 수백 석지기 땅값이었다. 방안은 적막감이 돌며 전형필의 판단만을 기다렸다. 비록 말은 없었지만 전형필의 심중에도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을 것이다.
“심보 상, 매병을 거두시지요.”
일순간 좌중은 안도의 분위기가 돌며 심보는 두려운 마음으로 전형필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심보 상, 고생하셨습니다. 아직 현금이 덜 준비되었으니, 필요하시다면 어음을 써 드리지요.”
전형필은 충청도에 있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잔금을 치렀다. 심보는 그 많은 돈을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전형필의 배짱이 일말 부럽기도 하였다.
3.나도 대가를 남만큼 치룰 용의가 있어요
다음 날, 마에다의 집에 전화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아마이케의 전화였다.
”자네, 지금도 그 천학매병이라 하는 도자기 가지고 있지?”
“그건 벌써 판 걸요.”
“무슨 소리야.”
“언제 장인께서 사시겠다고 했던가요?”
“참말이야. 큰일났는데. 오사카에 있는 무라카미(村上)가 산다고 했어.”
“그 동안 한마디 얘기라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장인 어른께서 잠자코 계셨으니…. 제가 어찌 살지 안 살지 알겠습니까?”
“누가 샀지. 큰 물건을?”
“전형필이란 청년이요. 심보가 중간에 섰어요.”
“뭐야, 전형필!”
아마이케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도 소문을 들어서 전형필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터이다. 마에다가 가깝게는 사위지만 장사는 장사이다. 장사 길에서 사적(私的)인 인정이란 불필요한 법이다. 마에다의 성질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고 아마이케가 뜸을 드린 것이 공교롭게도 물건을 놓친 셈이 되었다.
“다소 돈을 남겨 주면 되팔지 않을까?”
“그건 모르겠어요. 심보 상에게 물어 보시죠? 그런데 어떻게 무리카미가 알았어요?”
“아무리 자네가 내 사위지만 싼 값으로야 살수는 없는 일이지. 내가 사진을 찍어 일본에 있는 단골에게 몇 장 보냈지. 그랬더니 내 단골처 중 가장 큰 무라카미가 편지를 보내 왔어. 먼저 물건을 확보하고 전보를 치면 오겠대.”
“제 손에는 없습니다. 장인께서 직접 심보 상을 설득해 보세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아마이케는 심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가 다시 그 천학매병을 팔도록 중간에 서 보게.”
심보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거래가 이루어지고 심보는 사실 불안했다. 전형필이 통이 커서 거금을 들여 선뜻 샀지만 혹시 자기가 중간을 잘못 놓지 않았나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라카미를 이용하여 그 물건의 진가를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전형필의 신임을 더욱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팔지 않을 겁니다. 산 물건을 다시 파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말을 건네 볼 터이니 무라카미 상에게 연락이나 취하세요.”
“알겠네. 자네만 믿네.”
전화를 끊자 심보는 마음이 몹시 흥분되었다. 만약 전형필이 천학매병을 팔면 구전이 두둑이 생길 것이고, 팔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무라카미가 서울로 왔다. 아마이케로부터 자세한 연락을 받았지만 일본에 눌러 있기에는 다리가 저려 있을 수 없던 모양이다.
당시 동경과 오사카에서 서울로 진출한 일본인 골동상은 여럿이 있었다. 워낙 한국과 일본에서 골동품 가격 차이가 극심해 좋은 물건만 잡으면 금방 돈벼락을 맞을 수 있었기에 무라카미는 한 걸음에 달려 온 것이다. 그는 도자기 위주로 수집했는데, 서울에서 큰 경매가 있으면 부리나케 배를 타고 와 진품만을 골라서 구입했다. 심보의 주선으로 무라카미와 전형필이 만났다. 무라카미는 오십이 넘는 나이에 수도승 마냥 머리를 짧게 깎았고, 전형필도 짧은 검은머리에 기름을 발라 뒤로 넘겼다. 무라카미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전형필을 대하면서 오랫동안 천학 매병을 감상했다.
“정말 보기 어려운 명품입니다. 마치 푸른 하늘로 학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듯 합니다.”
“…”
무라카미의 찬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전형필은 아무런 표정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술잔이 몇 잔 돌아 분위기가 좋아지자, 애간장이 탄 무라카미가 심보를 제쳐놓고 먼저 말을 꺼냈다. 관례로는 당사자는 뒤로 빠지고 중간책이 서로 말을 전해 흥정을 붙이는 법이다.
“모처럼 수장하기 위하여 구하신 것을 노나 달라고 하는 것이 초면에 실례가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노나 줄 수는 없는지요?”
“허, 글쎄요. 저는 처음 듣는 말씀이라 어찌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보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무라카미는 몸이 달아서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고 정신까지 아뜩했다.
“예, 가격이라면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얼마를 부르던 간에 돈을 내겠으니, 물건만 넘겨 달라는 애원이었다.
“허, 허.”
전형필은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어떻게 거절을 해야 좋을지 몰라 웃음만 지었다.
“무라카미 상은 이 물건 산 값의 배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심보는 전형필의 눈치를 살피면서 무라카미에게서 들은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전형필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노나 올려도 좋습니다만?”
순간 무라카미의 숨이 멎었다. 심보도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의 절정이다.
“무라카미 상이 이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저한테 가져다 주시고 이 매병은 원금에 가져가시지요. 저도 대가를 남만치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앗!”
무라카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벌어진 입을 도저히 닫을 수가 없었다.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더 비싼 값을 주고 사겠다는 전형필의 제안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대문을 나온 무라카미는 눈이 깜깜해지고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그 순간 그토록 전형필의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말이 또 있었을까? 천 마디의 재치 있는 말보다 한마디의 진실한 말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움직이는 법이다. 총독부박물관도 엄청난 값 때문에 군침만 흘렸고, 내노라 하는 거물급도 눈치만 살피던 매병이다. 그러나 이 매병은 그들이 가장 깔보는 조선인이 그것도 나이 삼십의 청년이 냉큼 사 버린 것이다. 또한 대수장가로 자타가 공인하던 무라카미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골동계에서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일순간 달라졌다. 전형필은 해방 후 보성학원의 어려운 재정 문제로 몸과 마음까지 상하면서도 끝끝내 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팔지 않았다. 이 매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8호로 지정되고, 지금까지 성북동에 있는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청자운학문매병을 현재 시중 값으로 평가하면 얼마나 갈까? 물론 문화재를 돈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에서나 또 역사성에서 오류를 범할 위험이 많다. 그렇다고 경제성을 빼버린다면 매력 없는 역사 유물로 전락하여 볼 폼 또한 없어진다. 역사성과 경제성, 그리고 문화재가 가진 희귀성 때문에 어떤 사람은 전 재산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1935년 당시 2만원이라면 명품 청화백자필통 40배 값에 해당된다. 90년대에 들어 필통명품이 약 5억원에서 10억원까지 매매됨 점을 감안하면 약 250억원에 해당된다. 이 같은 금액은 세계적 미술품과 강남 영동의 중요지 땅값 상승률과 거의 일치한다.
(참고:①이영섭이 「월간 문화재」에 기고한 글 ’문화재계 비화‘.②「간송문화」간송미술관 발행, ③「한국 고미술」미술저널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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