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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 연인산(송악산,장수봉,연인산,우정봉)
1. 왼쪽 뒤는 화악산, 그 뒤 오른쪽은 응봉, 중간은 백둔봉 연릉
나는 겨울철에 산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데서 리처드 핼리버튼이 쓴 『세상의 경이들』이라는 책에서 흐릿한 에베
레스트 사진을 발견했다. 톱날 같은 봉우리들이 음산하다 할 만큼 어둡고 험상궂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하얗게
떠오른 조악한 사진. 전면의 봉우리들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앉은 에베레스트는 가장 높은 봉우리처럼 보이지 않았으
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산은 가장 높은 산이었으니까. 전설은 그렇게 말했다. 그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꿈이었다. 한 소년이 그 산으로 들어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능선에 올라 이제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은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는 꿈 …….
그것은 성장하면서 내 잠 속에서 수시로 출몰한 자유로운 비상(飛翔)의 꿈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에베레스트에
관한 꿈이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높고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처녀처
럼 순결한 그 봉우리는 그 곳에 오르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소년들과 어른들을 위해 거기 존재했다.
―― 토머스 F. 혼바인, 『에베레스트: 서쪽 능선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희박한 공기 속으로』
(황금가지, 1997))
▶ 산행일시 : 2025년 4월 12일(토), 오전에는 흐리고 오후에는 비
▶ 산행인원 : 4명
▶ 산행코스 : 백둔리 연인산 입구,깊은돌 마을,장수고개,송악산,장수봉,연인산,우정봉,우정고개,국수당
▶ 산행거리 : 도상 13.3km
▶ 산행시간 : 7시간 5분(09 : 10 ~ 16 : 15)
▶ 갈 때 : 가평역에서 15-1번 군내버스 타고, 백둔리 연인산 입구로 감
▶ 올 때 : 마일리 국수당에서 택시 불러 타고 현리로 가서, 저녁 먹고 버스로 대성리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08 : 35 – 가평역( ~ 08 : 45)
09 : 10 – 백둔리 연인산 입구, 산행시작
09 : 42 – 깊은돌 마을
10 : 28 – 장수고개, 왼쪽은 노적봉(옛 구나무산) 3.1km, 오른쪽은 연인산 4.2km
10 : 48 – 송악산(松岳山, △706.6m), 연인산 3.4km
11 : 17 – 청풍능선 갈림길, 819m봉
11 : 57 – 장수봉(874.4m), 점심( ~ 12 : 39)
13 : 11 – 장수샘 갈림길
13 : 25 – 연인산(戀人山, △1,068m), 휴식( ~ 13 : 33)
13 : 51 – 헬기장(1,055m)
14 : 33 – 우정봉(916.4m)
14 : 53 – 853.5m봉
15 : 05 – 830m봉, ┣자 능선 갈림길, 오른쪽은 모곡산(626m)으로 감
15 : 30 – 우정고개
16 : 15 – 마일리 국수당, 산행종료
16 : 37 – 현리, 저녁식사( ~ 18 : 45)
19 : 20 - 대성리역
2. 연인산 지도(1/50,000)
가평역에서 전철을 내리면 15-1번 군내버스로 백둔리를 가기에는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 화장실에 들르고 자판기
믹스커피를 뽑아 마시기 알맞다. 오늘 오후 2시경부터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둔리 가는 버스에는 등산
객이 우리 말고는 없다. 가평역에서 백둔리 연인산 입구까지 무려 40곳의 승강장을 거치지만, 타고 내리는 승객이
드물어 버스는 거의 직통으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 벚꽃을 바라보느라 고개가 뻐근하다.
겨울 눈꽃의
시새움인가
꽃의 눈보라
(雪花のへんばうなれや花 の雪)
이시다 미토쿠(石田未得, 1587~1669)의 하이쿠이다. 류시화는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연금술사, 2014)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지는 모습까지 사랑받는 거의 유일한 꽃이 벚꽃이다. 꽃눈 하나에 두세 송이 꽃이 피기 때문에 눈보라가 흩날리는
것 같다. 글자 수가 한정된 하이쿠에서 ‘꽃’은 주로 벚꽃을 의미한다. 이시다 미토쿠는 늦은 나이에 마쓰나가 데이토
쿠(松永貞德, 1571~1654)에게 시를 배워 에도 하이쿠 시단의 중심이 되었다.”
작년보다 백둔리를 열이틀 일찍 왔다. 아마 보름 정도 지나면 이곳의 배나무와 사과나무에도 꽃이 필 것이다. 백둔
리 연인산 입구에서 내려 연인교를 건너고 주차장을 지나 연인산을 향한다. 농로 따라 1km 정도 가면 깊은돌 마을
┫자 갈림길이다. 우리는 장수고개에서 장수능선을 오르려고 한다. 왼쪽 임도로 간다. 임도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오른다. 장수고개까지는 임도 2km를 올라야 한다. 임도 산자락이나 혹은 얕은 계곡의 풀숲 들여다보며 풀꽃
찾으려 하니 지루한지 모르고 오른다.
남산제비꽃, 천마괭이눈, 산괴불주머니, 현호색 등등. 작년에 보았던 알록제비꽃은 어디에도 없다. 허리 펴고 고개
들면 건너편 백둔봉 능선이 장릉이다. 이곳도 지난겨울 폭설로 쓰러진 잣나무를 잘라내어 반출하는 트럭이 지난다.
임도 오르막 끄트머리는 장수고개다. 임도는 장수고개 너머 산허리를 돌고 돌아 우정고개와 회목고개를 넘어간다.
우리는 장수고개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연인산 4.2km을 향한다. 낙엽 수북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이곳은 이른 봄이다. 생강나무와 진달래만 꽃을 피웠다. 풀꽃은 아예 싹도 보이지 않는다. 전후좌우 조망 가린 숲길
이기도 한다. 아무 볼 것이 없으니 잰걸음 한다. 송악산(松岳山, △706.6m)을 대깍 넘는다. 잠시 내렸다가 바윗길을
오르내린다. 그 가파른 북사면에서다. 생각지도 않은 처녀치마가 보인다. 비록 세 개체뿐이지만 무척 반갑다. 처녀
치마(Heloniopsis koreana Fuse, N.S.Lee & M.N.Tamura)라는 이름은 보랏빛 통꽃들이 줄기 끝에 모여 피는
모습이 마치 미니스커트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잎이 땅바닥에 사방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와 비슷하다 하
여 붙여진 이름이다. 처녀치마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산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처녀치마가 일본 꽃이름인 쇼죠하
카마(ショウジョウバカマ)를 번역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옛 문헌을 살펴보면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이명으로 ‘치마풀’, ‘치맛자락풀’이라 불린다. 학명의 명명자 중 ‘N.S.Lee’은 우리나라 식물학자인
이남숙 박사이다.
3. 깊은돌 계곡
4. 백둔봉
5. 남산제비꽃
6. 처녀치마
8. 얼레지
12. 맨 왼쪽은 칼봉산 오른쪽은 매봉, 맨 오른쪽 희미한 산은 축령산
13. 앞은 노적봉, 그 뒤는 삼악산, 맨 뒤 오른쪽 연엽산, 그 오른쪽은 구절산
14. 오른쪽은 칼봉산
오늘 조짐이 좋다. 내 장수능선을 오르려고 한 뜻은 순전히 지난날 이 능선에서 얼레지를 많이 보아서다. 그걸 엎드
려 사진 찍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내 먼저 서둘러 간다. 그런데 미리 말하자면 실망이 컸다. 기껏
5개체를 보았다. 819m봉 청풍능선 갈림길을 숨 가쁘게 오른다. 너른 쉼터다. 청풍능선은 여기서부터 6km를 남동
쪽으로 내려 칼봉이 용추버스종점으로 간다. 그쪽은 우리가 올라오는 장수능선보다 인적이 뜸하다. 능선에 서면 찬
바람이 세게 분다.
등로 옆 마른 풀숲에서 얼레지를 본다. 활짝 피었다. 이 너른 풀숲에 살피고 또 살펴도 여기서는 겨우 두 개체이다.
생각하니 이들이 척후병인 듯하다. 올해 치고 느닷없이 눈비가 내리는 등 시절이 수상하여 세상을 정찰하고 탐색하
러 먼저 나온 게 아닌가 한다. 홀로 등산객이 지나가다 내가 엎드려 얼레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대관절 무얼 하시느냐고 참견한다. 이게 얼레지라고 하자 신기하듯 바라본다. 연인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중에 얼레
지를 보았는지 물었다. 보지 못했다고 했다가 모르겠다고 고쳐 말한다.
혹시 다른 풀꽃이라도 보일까 청풍능선 쪽으로 가보고 그 양쪽 사면을 누비기도 한다. 빈 눈이다. 이제 일행들과
함께 간다. 한 차례 가파르게 오르면 장수봉이다. 너른 공터다. 바람이 지나지만 앉으면 건들지 않는다. 오늘 점심은
걸다. 나 혼자 산행할 때면 행동식인 빵이나 떡으로 때우기 일쑤인데 오늘은 도시락을 싸왔다. 탁주도 독작 아닌
대작하니 더욱 맛 난다.
장수봉을 넘으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왼쪽 얕은 골짜기에 장수샘이 있다. 작년에는 비가 와서 거기서 타프 치고
점심밥을 먹었다. 주변에는 피나물꽃, 얼레지 등이 피었었다. 그 정취가 벌써 그립다. 바윗길 오르내리고 울창한
잣나무 숲을 지난다. 드물게 등산객을 마주친다. 부부로 보이는 두 쌍이다. 소망능선 갈림길을 지나고 이어 연인능
선 갈림길을 지난다. 가파른 오르막은 수그러들었다. 야자매트길 잠깐 오르면 연인산 정상이다.
조망 좋다. 하늘은 곧 비를 뿌릴 듯 잔뜩 찌푸렸지만 시야는 훤히 트인다. 연인산에서 이런 조망을 보기란 매우 드문
일이다. 멀리 대룡산, 연엽산, 구절산, 그 앞으로 응봉, 화악산, 몽가북계, 삼악산, 수덕산, 노적봉, 고동산, 깃대봉,
칼봉산, 매봉, 축령산, 서리산 등등.
경기도는 연인산과 남한산성, 수리산 등 3개 산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남한산성은 그 역사적 배경이 지정
요인이었을 듯하지만, 연인산과 수리산은 내 나름으로는 변산바람꽃을 비롯한 야생화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간 山’(1999년 6월호)에 따르면, 연인산은 1970년대에는 ‘1,068m봉’이라 높이로만 불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고원산악회 등반대장 이무송 씨가 이 봉 아랫마을인 우목골 마을 주민들의 얘기를 근거로 ‘우목봉’이라 했다고 한
다. ‘월간 山’은 옛 문헌에서 ‘월출산(月出山)’으로 기록된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산을 우목봉 또는 월출산으로
불리어오던 중 1999년 3월 15일 가평군수 외 6인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연인산으로 이름을 확정지
었다. 그리고 연인산 남릉 상의 906m봉을 우정봉으로, 그 아래 전패고개를 우정고개로 고쳤다.
15. 앞 오른쪽은 청계산, 왼쪽은 길마고개와 길마봉, 그 뒤는 금주산
16. 중간은 수덕산, 그 뒤는 몽덕산, 가덕산
17. 귀목봉
18. 앞 왼쪽은 백둔봉 연릉, 오른쪽은 수덕산, 그 뒤는 몽덕산, 가덕산
19. 왼쪽은 명지산(3봉과 2봉), 그 뒤 오른쪽은 화악산, 그 뒤 오른쪽은 응봉
20. 왼쪽은 칼봉산, 오른쪽은 매봉
22. 연인산이 자랑하는 노랑제비꽃
23. 멀리 오른쪽은 국망봉, 그 앞 왼쪽은 강씨봉, 앞 왼쪽은 귀목봉
24. 왼쪽은 대금산, 그 뒤 오른쪽은 청우산, 그 뒤 오른쪽은 깃대봉
우정봉, 우정고개를 향한다. 데크계단 한 피치 내렸다가 잠시 완만하게 오르면 1,055m봉 헬기장이다. 지난겨울 폭
설로 부러지고 쓰러져서 지나가기 사납던 등로를 말끔하게 정비하였다. 연인산 정상에서 우정고개 가는 길 3.7km
가 아주 부드럽다. 바윗길이랬자 우정봉 내릴 때 몇 미터뿐이다. 방화선 주변은 키 큰 나무숲이고, 그 숲속은 봄날이
면 홀아비바람꽃, 얼레지, 각시붓꽃 등의 경염장이 된다. 오늘은 그들에게는 아직 겨울이다.
우정봉을 넘자 기어코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장 갖춘다. 우정봉 바윗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살금살금
내리고 잘 난 방화선 길을 간다. 830m봉. ┣자 능선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모곡산(626m)으로 간다. 작년 봄에 그리
로 갔다가 지도에 없는 골프장을 만나는 바람에 된통 고역을 겪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건조한 능선이었다. 그리
로는 두 번 다시 안 간다. 쭉쭉 내린다. 이곳 등로도 봄날이면 꽃길인데 오늘은 우리가 너무 성급했다.
우정고개. 비가 제법 줄기차게 내린다. 국수당 가는 길 1.7km도 임도인 듯한데 여러 해 돌보지 않아 숫제 너덜 길로
변했다. 내려가기 한 발 한 발이 퍽 조심스럽다. 돌 틈 또는 길섶에 남산제비꽃과 흰제비꽃이 번갈라 눈길 발길 붙든
다. 이 빗속에서다. 차마 뿌리치기 어려워 그때마다 우산 받치고 납작 엎드려 눈 맞춤한다. 신기용 시인이 ‘활짝’에
서 전한 꽃의 얘기가 생각난다.
꽃이 나에게 말했지
너도 나처럼 꽃이 되고 싶거든
크게 웃어봐 활짝
이윽고 국수당 마을이다. 국수당 마을에 지금은 당(堂)이 없다. 가평문화원에 따르면, 후고구려 궁예의 오해로 전패
에 유폐된 왕비가 치성을 올린 집이 있어서 국수당이라고 한다. 국수당 마을이란 산마루에 국수당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한다.
현리 택시 부른다. 금방 현리다. 현리(縣里)가 대처다. 우리가 가는 음식점은 항상 맛집이다. 청평 가는 버스시간을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들어간다. 그 시간을 알았다가는 그에 쫓겨 하산주가 별맛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순주
높이 들어 오늘의 무사 산행을 자축한다.
25. 축령산과 서리산(오른쪽)
26. 우정고개 가는 길
28. 남산제비꽃
31. 흰제비꽃
32. 남산제비꽃
33. 선괭이눈
35. 두릅나무와 산괴불주머니
첫댓글 처녀치마꽃이 욕심이 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