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제갈씨(南陽諸葛氏)
시조 : 제갈규(諸葛珪)
관향의 연혁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水原)과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때의 당성군(唐城郡)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당은군(唐恩)으로 개칭하였다가 고려(高麗) 초에 다시 당성군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수주(水州 :수원)와 인주(仁州 : 인천)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1310년 (충선왕2)에 남양부(南陽府)가 되었다. 조선조(朝鮮朝) 말기에 남양군이 되어 인천부(仁川府) 관할이 되었다가 1913년 군을 폐하고 그 땅을 나누어 영흥면․대부면은 부평균(富平郡)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水原郡)에 합하였다. 그후 수원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으며, 후에 수원읍 이외의 땅은 화성군(華城郡)으로 수원읍은 수원시(水原市)로 승격되었다.
가문의 유래
제갈씨(諸葛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남양제갈씨세보(南陽諸葛氏世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제갈 규(諸葛珪)는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유명한 제갈 량(諸葛亮 : 제갈공명)의 아버지라 한다. 우리 나라 제갈씨는 신라(新羅) 흥덕왕(興德王) 때 제갈 규(諸葛珪)의 20대 손으로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이 시초가 된다. 고려(高麗) 고종대(高宗代)에 와서 후손(後孫) 제갈 홍(諸葛泓)․ 제갈 형(諸葛瀅) 두 형제가 복성(復姓)을 서로 한 자씩 나누어 쓰기로 하여 형 홍(泓)은 제씨(諸氏)로, 아우 형(瀅)은 갈씨(葛氏)로 분종(分宗)하였다.
그 후 구한말(舊韓末)에 이르러 성씨환원운동(姓氏還元運動)이 일어나자 일부가 제갈씨(諸葛氏)로 복성(復姓)했다고 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은(殷)이 고려에서 시랑(侍郞)을 지냈고, 훤(萱)이 상장군(上場軍)을 역임했으며, 의병장(義兵將) 제갈 윤신(諸葛允信)은 한말(韓末)에 연기우(延基羽)의 부장(副將)이 되어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철원(鐵原)․평강(平康) 등지에서 일본군(日本軍)과 접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戰死)하여 가문을 빛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