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People-참 부끄럽게 받은 선물
엊그제인 2015년 4월 4일 토요일 밤의 일이었다.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010-4151-5635’
낯선 전화번호였다.
자칫 잘못 받았다가 바가지요금을 덮어쓰는 경우가 흔해서, 받을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전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덥석 받고 말았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지요. 낯선 전화번호가 떴을 테니까요.”
대뜸 하는 소리가 그랬다.
누군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지난주에 한 밤중에 인천 가셨잖아요. 그때 서울에서 인천까지 택시를 몰아 간 운전사입니다.”
그 답을 듣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다.
그 밤의 일이었다.
“나 명래야.”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이대목동병원 치과를 맡고 있는 김명래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건 그 연유를 물어봤다.
“순열이하고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자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전화를 해본 거야. 어때?”
내게 전화를 건 이유가 그랬다.
이미 서울 역삼동 어느 음식점에서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의 거래처 비즈니스와 관련된 첫 만남의 인연을 엮는 술판이 벌어져있었지만, 그 자리를 거기서 깨버렸다.
급한 용무가 생겼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혹 다른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도 깨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만사를 제쳐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친구 둘이 그 밤에 문득 내 생각을 하고, 그리고 찾아주기까지 하는, 바로 그 끈끈한 우정 때문이었다.
앞뒤 생각 없이 무턱대고 나섰다.
막상 나서고 보니 막막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100여리 길을 달려야 하는 먼 길이었다.
처음에는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을 했다.
인천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강남역까지 가야했는데, 거기까지 걸어가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려야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그 요금이 아깝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그냥 걷느냐 택시를 타느냐 하는 그 선택의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안 될 일이었다.
친구들의 취기가 깊어지면 가나마나가 되기 때문이었다.
끼익!
그 초미의 순간에 내 앞에 영업용 택시 한 대가 급정거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본 모양이었다.
그 참의 선택이었다.
“인천 갑시다.”
그 길로 100여리 그 먼 길의 인천까지 영업용 택시를 타고 가게 된 것이다.
돈을 내고 타는 영업용 택시로서는 내 인생 처음의 장거리 승차였다.
강남대로를 북으로 달려 올림픽대로로 접어들고, 올림픽대로 양화대교 남단에서 시내 길로 잠깐 빠졌다가 다시 경인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달리는 도중에도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먼 길을 다시 돌아올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서울로 와야 하는데, 잠깐 기다려줄 수 있나요?”
나를 기다리는 두 친구에게 얼굴만 보여주기만 해도, 나의 우정은 증명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택시 운전사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그럼요. 저야 택시비만 받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해서 그 운전사가 원하는 택시요금을 선지불하고, 그 밤의 내 교통편을 그에게 맡겼다.
그런데 또 하나의 걱정이 생기고 있었다.
왕복 택시요금을 다 지불했는데, 그 운전사가 나를 인천에 버려두고 그냥 도망 가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신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 또 적지 않은 택시요금을 부담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떤 증명서를 받거나 택시번호를 확인해두거나 하는 것도 좀 추잡한 처신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 운전사와 통성명도 하고 나이도 묻고 하는 둥해서, 대화를 트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대화를 했기 때문에, 참 많은 사연들을 주고받았지만, 기억나는 것은 1944년 생으로 나보다 나이가 네 살 위라는 것과, 영업용택시 운전 외에 경기도 양주 쪽에서 산양산삼 영농조합에 관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둘뿐이었다.
그 대화 끝에 나는 내 명함을 건네줬고, 그 운전사는 앞으로 주위에서 법무사 일거리가 생기면 우리 사무소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미심쩍었다.
그렇다고 그 미심쩍은 내심을 내비칠 수도 없었다.
지금껏 대화에서 쌓은 신뢰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꾀가, 그 택시 앞자리에 회사명과 운전사 이름이 적혀있는 아크릴판을 핸드폰 영상으로 찍어두는 일이었다.
몰래 찍었다.
그렇게 찍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참 찝찝했다.
내색을 감춘 그 비겁한 양심 때문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알아보는 내게 그 운전사가 한 말이 그랬다.
나를 태워서 서울에서 인천까지 그 먼 길을 왕복하는 바람에, 그날은 모처럼 사납금을 일찌감치 채우고 집에 들어가서, 아내와 오순도순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도 고맙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만 한 것이 아니었다.
“주신 명함을 보고 사무실 앞까지 왔는데, 잠깐 나오실 수 있어요. 내가 선물할 것이 하나 있어서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이후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상기시피면서, 형의 뜻을 동생이 거스르면 안 된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가봤다.
“이거 한 번 드셔봐. 효과가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노란 보자기로 싼 선물을 하나 건네주고 있었다.
산양산삼 세 뿌리였다.
그 운전사에 대한 내 불신의 순간이 후딱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 선물, 참 부끄럽게 받은 선물이었다.
첫댓글 대단한 인간관계 설립의 달인으로 명합니다 ㅎㅎ
정성으로 꼭꼭 씹어서 잘 드시게나 보약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