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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차라리 그냥 너희 나라는 우리나라(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 우리(연방정부)는 주정부에도 그렇게는 대우하지 않는다." 어느 지한파 미국 언론인이 지난해 술자리에서 한국은 과연 주권이 있는 나라인지를 한탄하는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기자가 미국에서 한 4년 넘게 국제관계를 다루면서 느꼈던 최종 결론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은 우리나라를 뭐(?)처럼 생각하는데, 우리만 짝사랑 아닌 짝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다들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가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기자가 종사하는 우리나라 언론계가 국민들이 이러한 환상을 가지게 한 일등공신(?)일 것이다. 일례로 최근 발생한 탄저균 사태를 보자. 사건이 발생하자 어김없이 미국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안 되는 '한국발'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즉,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가 우리나라 국방장관을 지난 5월 30일, 싱가포르에서 만나서 공식 사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측과 신속히 공유하고 책임자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할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토를 단 내용이 "한국 국방부 관계자가 이런 사실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는 외신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외신에서 언급한 내용은 카터 장관이 "실수로 탄저균이 잘못 배달된 문제에 관해 책임 있는 사람을 찾을 것(find out)"이며 "해명할 의무가 있는(accountable) 것으로 간주하겠다"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한국과 함께 탄저균이 배달된 것으로 알려진 호주 국방장관을 만나서는 이에 관한 "업데이트(추가 진전 상황)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사실 이것도 우리 입장에서 봐서 놀라운 것이지, 미국으로서는 놀라운 것도 아니다) 따로 있다. 카터 장관이 이 시기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4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서 여러 나라 국방장관을 만났고, (한국 국방부 주장도 이 과정에서 우리 국방장관도 만났고 카터 장관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흔하게 배포하는 보도자료(readout)에는 호주, 일본, 하물며 말레이시아 국방장관과 면담했다는 보도자료도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 국방장관과 면담했다는 보도자료는 없다. 물론 만나서 악수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으니,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면담이든 회담이든, 사과는 고사하고 한국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는 사실도 미 국방부도 외신도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거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짝사랑을 넘어 스토킹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탄저균 사건이 발생하고 주한미군이 지난 5월 27일과 29일, 두 번의 보도자료를 내면서(보다 격이 높은 미 국방부 공식 발표도 아니다) 강조한 말은 사고는 났지만 "시민에게는 위험이 없다(There is no risk to the public)"는 것이다. 즉 탄저균을 가지고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가 사고가 발생했지만, 우리 시민이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 국방부가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건을 조사하다가 지난 6월 12일에는 10년 전인 2005년에 일본에도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됐고 이것은 이미 2009년에 처리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그날 주일미군이 아니라 미 국방부 스티브 워런 대변인이 직접 즉각 나선다. 그는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중요한 점을 밝혀야겠다고 전제하면서 "지금은 활성화이든 비활성화이든 일본에는 탄저균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신을 비롯해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직전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됐고 22명이나 노출됐으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한국에 관해서는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은 미 국방부가 일본 국민에게는 탄저균이 단 하나도 일본에는 없으니 전적으로 안심하라고 했다. 이러니 기자가 미국은 한국을 뭐(?)같이 생각한다고 한탄하는 것이 그냥 넋두리일까?
이를 단지 지금 한국에는 탄저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미 국방부의 상황이니 이렇게 한 것이라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우리 국방부 관계자가 미 국방장관이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책임자 처벌까지 약속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국방부를 믿지 못하는 기자의 애국심이 부족한 것일까?
기자는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 미국 언론인이 나의 한탄에 동감하면서 "우리는 주정부에도 그렇게는 대우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장면이 마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처럼 떠오른다. 치유될 날이 올 수는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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