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 신앙과 성령 신앙
(디모데후서 4:3-5)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성경은 선지자와 사도가 전한 교훈을 바탕한 진리입니다. 이 교훈은 불순종하고, 자기 이익에 근거하고, 생명 현상이 없는 자들을 구별하여 교재를 단절하라고 교훈합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3:6, 14)“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에 얹혀 걸어가는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제시하니 본을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뇌와 말씀의 차이는 선악과와 생명과의 차이만큼 천양지차(天壤之差) 입니다. 성도와 성도 아닌 교인의 신앙의식 수준은 바르게 인지 하느냐와 왜곡된 믿음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신앙은 결코 자본주의에서 출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는 반드시 육신의 이익이라는 미끼를 거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자들이 바라볼 때 주변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신앙의 속성에서 변질된 자들과의 교류는 끊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파가 많아지고 교리가 다양해지고 각기 복음이라고 외쳐도 성경을 말하는 내용이 육이 달라붙어 있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변질된 자들이 자기가 변질된 존재임을 모르고 여전히 그들도 자기를 신앙의 범주에 놓고 자인하고 자신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세상 적이기에 그들 세력은 세상을 흡수하며 훨씬 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 같이 큰 세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치명적인 문제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AD313년에 발생한 로마의 콘슨탄틴의 밀라노 칙령입니다. 콘스탄틴이라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정치에 이용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천주교가 탄생했습니다. 천주교는 로마의 국교이기에 성경을 들고 정치와 연합하도록 변질된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강제로 신자 화 하는 세뇌가 성령을 대신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교리를 생산하고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우주 안에 오직 하나의 교회만 인정하는데 그 교회가 가톨릭, 즉 천주교만 있다는 것입니다. 1517년 종교 개혁을 하게 된 루터 같은 개혁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가톨릭교 이외의 어떤 교회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결함이 없는 지상 교회의 통치자이며, 교황은 계승하는 지상교회의 대표자이며, 무오류의 영적 지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완전하신 분은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고 증거 합니다.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심으셨느니라.”
그들은 천주교회가 정한 선언이 성경보다 앞선다고 믿습니다. 천주교 없이는 성경이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이 없어도 천주교는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그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라고 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전체가 뒤틀린 격이 된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믿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4:5~6(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이렇게 선명하게 진단 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으로만 보아야 하는 이유 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임한 사람은 세상 소리는 피곤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세상소리가 꿀 송이 같이 달고 진리는 피곤한 것입니다.
또 기독교의 또 하나의 변질된 아류는 또 하나의 종교인 이슬람인데 예언자 무함마드는 610년에 이슬람교도들이 신성한 계시라고 생각하는 코란을 받기 시작했으며, 유일신에 대한 복종, 임박한 최후의 심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것, 등으로 성경을 함부로 편집 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메시지는 소수의 추종자와 반대로 큰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후 서기 8세기까지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서쪽의 무슬림 이베리아에서 동쪽의 인더스 강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 후 이슬람의 황금시대는 문화와 과학의 많은 중심지를 탄생시켰고 중세 동안 저명한 박식가, 천문학자, 수학자, 의사, 철학자를 배출했습니다. 현제 이들은 17억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형성하는 기독교 최대의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은 땅의 세력이냐? 하늘의 순전함이냐? 의 차이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바꾼 자들은 무섭고 두려운 심판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22:18,19)“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러기에 아무에게나 말씀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만 말씀을 들어야 선악과 독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성경을 쓰셨기 때문에 성경으로 재단하고 치료하고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모르면 돌이킬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세뇌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속기 쉬운 존재입니다. 정작 타락한 삯군목사들 밑에서 맹종하며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다는데 질적 비극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 한국교회의 저급한 신앙수준입니다. 신도들의 왜곡된 수요에 왜곡된 공급을 하는 공급 책들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듣기 좋고 부자 되기 위한 설교를 하고 헌금과 축복의 공식을 팔며, 기적을 외치며 하나님과 거래행위를 하는 중개소가 되어 있습니다.
신도들은 내 돈 내가 헌금해서 복 받고 싶은데 누가 방해를 하느냐고 패거리가 되어 있고 진리를 말하면 오히려 믿음 없음을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구역모임, 철야기도모임, 수요기도모임 등에 끊임없이 헌금주머니를 돌려 삼박자축복에 오중복음 공식에 어긋나지 않도록 교인들에게 헌금기능이 복채로서의 만족감을 제공하니 서로가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세뇌란 다름 아닌 “복 받아라” 입니다. 건강 축복, 물질 축복, 성공 축복입니다. 왜곡된 복음에 세뇌를 당하고, 긍정 복음에 세뇌를 당하고, 야베스기도에 세뇌를 당 하면 브랜드 목사를 추종하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사이비를 집단화 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담임목사의 교주 신앙입니다. 육의 목회가 얼마나 타락한 건지 영화처럼 보여주는 세뇌의 현장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하나님은 없고 인간이 세뇌한 꺼대기들만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