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8]'광고인' 박웅현 님의 책 읽기
‘광고인’(광고업에 종사하는 카피라이터. 속된 말로 ‘광고쟁이’라 하나, 요즘엔 ‘광고 크리에이터’라 해야 한다) 박웅현 님을 아는 분들도 많을 것이나, 낯설다는 분들이 더 많을 터. 『책은 도끼다』(2011년 1쇄, 2013년 58쇄)와 『여덟 단어』(2013년 1쇄, 그해 10월 28세)의 저자이다. 두 책이 2016년 100쇄를 돌파했으니, 지금은 족히 200쇄를 넘었을 듯. 책이 나오자마자 지인이 선물한 책으로, 너무 신선하게 재밌게 읽어서, 2016년 내처 속편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출간, 349쪽, 16000원)를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얼마 전, 원불교 경전인 <대종경>을 판화 200여점으로 그린 이철수판화집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문학동네, 2015년 펴냄, 490쪽)를 보다가 박웅현 님의 발문을 발견,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위에 언급한 그의 책 세 권을 서재에서 찾아 부랴부랴 다시 읽으며 최근의 동향을 검색해 보았다. 그는 여전했다. 좋은 책들을 읽으며, 감동적인 대목(울림을 주는 문장)엔 ‘밑줄 짝’을 한 후, ‘밑줄 짝’들만 다시 읽으며 타이핑을 하고, 타이핑한 것들 중 다시 마음에 쏙 들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반드시 손으로 필사筆寫를 한다는 것이다. 필사한 노트만 해도 100여권이 된다던가. 그러니까, 한 권의 책과 중요 대목을 4번 읽는다는 말이 되겠다. ‘밑줄 쫙’ 하니까,예전에 그 말로 히트를 친 최영만이던가, 개그맨이 생각난다.
1961년생. 중학생 딸이 논술학원을 보내달라 조르자, 그 역할을 자청하면서 책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좋은 책 감별사’가 된 듯한 애서가愛書家이다. 그가 만든 수많은 광고문구 중 한두 개는 들어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이 에너지다” “혁신을 혁신하다” “진심이 짓는다”(건설사) 등이 그의 작품이다. 어느 책이든 숙독熟讀하는 그는 “행복한 삶의 보물지도가 책 속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가 숙독하고 감동한 책들을 독자들이 ‘자기 책’이 아닌 ‘추천 책’들을 많이많이 사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는 광고쟁이답지 않게 ‘책에 대한 책’을 서너 권 쓰며 유명한 인문학강사가 되어, 어느 것이 본업인지 바쁜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취미가 특기가 되더니, 그것으로 인하여 유명한 인문학강사가 되어 부업으로 돈벌이make money까지 하다니(수입이 만만찬을 듯),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감수성만 녹슬지 않는다면, 파파 늙을 때까지 정년도 없지 않은가. 마냥 부럽다. 그가 최근에 쓴 책이 『문장과 순간』이라던데, 꼭 구해 읽으며 그의 신공神功에 거듭 놀라볼 생각이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그를 “인용의 대마왕”이라 했다지만, 그것이야말로 ‘재주가 메주’가 아닌 그만의 ‘특별한 재주’임을 누가 부인하랴.
10년이 다 되어 새로 읽는데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그가 책 속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문장이나 생각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박힌다.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에서 발견한 짧은 시들이 그의 글로 인하여 휘황찬란한 빛을 발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꽃>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천 개의 물방울/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봄바람에/이 골짝/저 골짝/난리났네.제정신 못 차리겠네/아유 꽃년 꽃놈들!> 등이 그것이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었으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스쳤던 수많은 명문들이 줄줄줄 이어져 나온다. 그는 어떤 재주가 있어 ‘무슨 놈의 책을 그렇게도 ‘만나게’(‘맛있게’라 하면 안된다) 읽고, 북리뷰(서평, 독후감)를 이렇게도 ‘만나게’ 쓰는 것일까? 세밀하고 치밀하다. 디테일하다. 적확하다. 갈피갈피 좋은 글과 문장이 살아나 그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어느 면에선 원작자보다 정작 두어 수 더 위인 것같다. 책 제목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따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어떠하신가? 맞는 말인가? 그렇다. 책은 도끼여야 한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그런 것. “책은 도끼다”는 이 구절에서 탄생됐다. 그러니, 그는 계속 “다다시, 책은 도끼다”는 '다-다시 시리즈' 책을 죽는 날까지 쓰는 도리밖에 없다. 그것이 그의 숙명이자 업보인 것을.
그의 목표는 심플하고 명확하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인간은 누구나 ‘공유共有의 본능’이 있으므로, 본인이 느꼈던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는 거다. 나는 기꺼이 동참하련다. 그의 팔뚝에는 이런 글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고 한다. “日常이 聖事다” ‘하루하루가 다 성스럽다’는 뜻이리라. 그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듯하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정지용 시인의 <호수>라는 짧은 시를 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