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년 ~ 기원전 117년)
중국 전한의 문학자이다. 쓰촨성 청두(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이다.
(사마상여는 탁문군과 연애 사건으로 유명이 되었다.)
경제(景帝)를 섬겼는데 경제는 상여의 특기인 사부(辭賦)를 싫어해서, 경제를 떠났다.. 효왕이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가 토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 문군(文君)과 결혼하여 부유하게 되었다. 〈자허부(子虛賦)〉에 의해서 무제의 부름을 받고, 서남의 만이(蠻夷) 땅에서 공적을 올렸다.
(탁왕손의 무남독녀 탁문군이 청상이 되어 집에 와 있었다. 한눈에 반한 사마상여는 <봉구황>이라는 연가를 바쳤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인 성도로 도망갔다.
사랑의 도피 생활을 하다보니 생활비가 떨어져서 임공현으로 돌아와 술장사를 시작했다. 부자 탁왕손이 이를 부끄럽게 여겨 그들에게 수많은 돈을 주니 일약 부자가 되었다.
사마상여는 한무제 때 궁으로 불려가 관리가 되었으며, 그는 특히 사부(辭賦)에 뛰어나 그의 <자허부(子虛賦)>, <상림부(上林賦)>, <대인부(大人賦)> 등은 한 위 육조(漢魏六朝) 문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시 짓는 재주로 한 무제에 아부하고------, 나쁜 얘기들이 많은 걸 봐서 인격적으로는 보잘 것 없고, 신분도 낮았으리라고 한다.
사마상여가 시인으로 유명했지만, 그의 아내 탁문군 역시 뛰어난 재녀(才女)였다. 그녀는 거문고 솜씨와 한시 작품 또한 뛰어났으며, 몸이 약한 사마상여를 일심으로 모신 열녀였다.
사마상여에 대한 후일 평은 양 극단이다. 긍정적인 편은 대시인으로 특히 사부(辭賦), 산문에 뛰어나 후일 문인들의 사표가 되었다는 점과 부정적인 면은 궁중 시인으로서 지나치게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공허한 수식어와 상상의 글을 썼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때의 시인은 악기연주의 가사를 지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악부시라는 것은 바로
노래의 가사이다. 한나라 때는 악부시가 유행했다. 요즘으로 치면 작사가(?)이다.)
사마상여가 유명해진 것은(나에게) 사마천의 사기에 사마상여와 탁문진의 연애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걸뱅이나 다름없는 사마상여가 시를 지어 노래 부르자, 부잣집 딸 탁문군이 홀딱 반해서 야간 도주를 했다 하여 ---
그의 시는 길고 --,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