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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김삿갓문학상
달리는 고깔모자 / 김금용
검은 레깅스 귀퉁이를 잘라냈어요
가위질 소리가 침묵을 깨웠죠
귀만 날카롭게 삼각형으로 불어나는 긴 정적
소름 돋았어요
살갖마다 뿔을 달고 오글거리는 실핏줄이
춥고 시린 청보라빛 꽃잎을 피워냈어요
뺨과 목줄기, 팔다리 사이로 빛무더기가 흘렸어요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졌어요
어둠은 빛을 품고, 빛은 어둠을 안고 날개를 떴어요
날개 냄새가 시큼해요
땀으로 번뜩이는 등줄기와 전라로 뛰는 무용수
옷 하나 벗었을 뿐인데
조여드는 무용복을 가위로 잘라냈을 뿐인데
무장한 외투에 묶였던 꽃씨가
나신으로 뛰는 머리칼마다 참제비고깔꽃이 피네요
프랑스 혁명의 고깔모자가 함성을 지르네요
꽃향기가 거친 입김을 따라 쏟아지네요
야생의 살냄새가 진동하네요
겁 없이 피어나네요
고깔모자가 달려나가네요..
제19회 김삿갓문학상 본상에 김금용 시인이 선정됐다.
김금용 시인의 작품 ‘물의 시간이 온다’는 다양한 공간의 편력과 함께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처럼 생명력을 발견해가는 기운을 새롭게 건네주는 작품이라고 평가 받았다. 우수상에는 1989년 시조 문학으로 등단해 제4회 북원문학상과 제17회 강원시조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 작가에게 돌아갔다.
김금용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 중앙민족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으며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펜번역문학상(2008년), 동국문학상(2013년), 산림문학상(2018년), 손곡문학상(2019년) 등을 수상했다.
영월군과 (재)영월문화관광재단이 주최하고 강원일보와 김삿갓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한 김삿갓문학상은 조선 후기 시인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 세계를 계승하고 문인들의 창작 의욕 고취 및 문예 활동 활성화를 위해 제정됐다. 시상식은 22일 오후 4시 30분 김삿갓문학관에서 김삿갓 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열리며 본상과 우수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1,000만원과 2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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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 이론에 대한 생각 / 김금용
지배적 역학관계가 필요해
머리로 하는 게 아니지
나비가 찔레꽃 향에 취해 손을 잡을 때
따뜻한 혈류가 옮겨갈 때 종속이 시작되는 거지
사랑에 지배받고 싶은 거지
쉽게 결판나는 숫자 세상은 싫어
계산으론 탈출구가 뺀해서 지루해 나만의 색,
나만의 빛깔이 없거든
낯선 곳을 향해 달리는 사랑엔 계산이 없지
흰 방울새는 온 숲을 뒤흔들며 구애를 외치지
숲속 아무도 귀를 막지 않고 시끄러운 외침을 참아 주지 간절함이 땅겨서겠지
직진하는 자의 눈빛이 숲을 흔들어서겠지
평생 한 번 내지르는 용기가 그리워서겠지
뒤돌아 모른 척 해봐도 흔들리는 걸음은 금새 알아 채니깐
프로베니우스는 숫자를 내밀며 공식대로
세상 진리를 터득해냈지만
주식투자와 부동산이 고단한 삶을 견딘다고 하지만
배를 비워야 머리가 맑아진다는 말씀이 맞는 거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픈 사랑의 속성은
주어진 길을 따라 걷기만 하는 개미보다
돌진하는 흰 방울새 울음이 더 간절한 것이지
들풀 춤사위 / 김금용
등 뒤에서 노을이 안아줄 때 좋아라
하나하나 살아나서 온몸이 간지러워라
오색 둥근 바람을 따라
두 팔을 벌리며 달려가면 두 팔 두다리도 가볍게 떠오르고 팔을 벌려 무술 팔과 모습을 흉내 내다 보면 독수리도 되고
다리 하나 올려 곧추서면 우아한 학이 되고
장난스레 몸을 웅크리면 원숭이도 되고 자유로워라
춤사위엔 가드레일이 없어라
아무 구분도 필요없어라
시선을 마주하면
민들레도 엉경퀴도 온몸을 흔들어라
고양이도 강아지도 날아가던 참새도
어깨춤 추며 달려라
서로 밟고 뜯어 먹혀도
들꽃이 들풀이 함께 춤추는 너른 초원
껴입었던 옷 벗어던지고
나를 허무니 좋아라
붉은 춤사위에 실리니 좋아라
낙타가시풀 / 김금용
목구멍 속까지 침이 말라버린
노쇠한 낙타 한 마리
메마른 낙타가시풀을 씹어 삼킨다
살아 있어야
시작되는 모든 것들
혀에 꽂히는 가시풀에 피 흘리면서도
모래가루 붙은 속눈썹 너머로
열사에 뿌영게 지워진 오아시스를 찾는다
무릎 베고 잠들
짝의 그림자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