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상
조정인
아기들이 말을 배우는 봄
어떤 천사들은 고작 사나흘 어린 날갯짓으로 오네
노란 멀미처럼 나비 한 마리 어른어른 삼월 맨흙에 내려앉아
이마를 얹고 엎드렸네
콧잔등에 실핏줄이 내비치는 파리한 아기는 푸르고 묽은 똥을
스르르 흘렸을 텐데, 손발이 시리고 혈관을 떠도는 얼음알갱이들이 아파
흘림흘림 멀건 울음을 흘렸을 텐데
아기 울음소리 그친 수상한 봄날,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 아기들은 오줌 싸고 똥 싸면 안 되고
우리나라엔 붉은 맨흙이 많고
오줌 싸고 똥 싼다고 밀쳐지고 욕조에 담겨져 인형처럼 흔들리며
어지러워, 엄마. 그러지 마세요. 아기는 그런 말도 못하고
팔다리를 늘어뜨렸지
담요에 싸인 아기는 베란다에 내놔졌다가
칠흑의 밤,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실려 엄마 아빠와 함께
깜깜한 여행을 떠났네
우리나라엔 맨흙이 많고
엄마는 손전등을 비춰주고 아빠는 구덩일 파고
엄마, 무서워. 아기는 제가 누울 흙구덩이를 들여다보다
엄마 아빠 얼굴을 말갛게 올려다보는데
이리 와, 이제 내가 네 엄마란다
검은 구멍이 팔을 뻗어와 아기를 끌어당겼지 찬 흙이 뿌려졌지
봄을 문상하러 온 어린 조문객처럼
흙을 밀치고 떠오른 병약한 신화
미동도 없이 맨흙에 이마를 얹은 노란 나비 한 마리
조정인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