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오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발작적 기침, 호흡 곤란, 어지럼증. 매년 초여름이 되면 국내 주요 병원의 응급실에는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밀려 들어온다. 대기 중 오존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시기다. 오존의 독성이 천식이나 만성기관지염 같은 호흡기질환 환자들의 약해진 폐 세포를 공격하는 것이다. 호흡 곤란에 심장마비까지 오면서 그대로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한다.
▷최근 10년간 오존 노출에 따른 국내 초과사망이 2배로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오존 농도의 상승으로 인한 초과사망자는 2010년 1248명에서 2019년 2890명으로 증가했다. ‘초과사망’은 특정 기간에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수를 넘어서는 사망을 뜻한다. 통계적 개념이다. 오존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예상 평균치보다 훨씬 더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국내 오존 농도는 평균 35.8ppb에서 45ppb로 높아졌다.
▷산소 원자 3개가 결합한 오존은 강력한 독성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 혹은 ‘보이지 않는 킬러’로 불린다. 폐뿐 아니라 뇌 같은 다른 장기에도 병을 일으키고, 선천성 기형 발생 위험도를 높이는 오염물질이다. 지난해 영국이 주도한 국제공동팀의 연구에서는 오존 농도가 0.2% 상승할 때마다 연간 6000명이 넘는 추가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존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위협한다. 오존 농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은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우리나라는 오존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빨리 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사망자 수는 100만 명당 15.9명으로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율은 OECD 35개국 중 가장 높다. 오존은 질소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이 햇빛과 만나 광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생성된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많은 대도시의 오존 농도가 높다 보니 서울, 부산 같은 도시에서는 수시로 ‘오존 비상령’이 떨어진다. 해외에서도 도시 거주자 5명 중 4명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을 넘어서는 농도의 오존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이제 곧 햇볕이 강해지는 계절이 온다. 오존 농도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새빨개지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마스크로도 못 막는 오존의 공격은 폭염과 함께 몰려오니 더 괴롭다. 오존주의보 체크, 야외 활동 및 과격한 운동 자제, 수분 보충 같은 대처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오존을 발생시키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게 해법일 것이다. 대기오염을 악화시키는 기후변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환경론자가 되라는 게 지구의 호소이자 경고다.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