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구약의 엘리 제사장 시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싸울 때 이스라엘이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돌아보니 언약궤를 실로의 성소에서 가져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보내어 언약궤를 전장으로 가져올 때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2차 전쟁이 났는데 그 전쟁에도 또 다시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 가운데 세우신 실로의 성막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언약궤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도 이런 악함이 있습니다.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옵소서.
나의 영혼을 좀먹는 악이 숨어 똬리를 틀고 있사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하 21:15-22
제목 : 방주에 속하여, 모세에게 속하여, 예수에 속하여 산 자가 되다.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300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 나의 묵상
본문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4차에 걸친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우는데 블레셋 진영에는 거인족에 속한 용사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전쟁에서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싸우는데 그는 지치고 피곤하였다.
그 때 거인족의 아들 이스비브놉이 300세겔 되는 놋창으로 무장을 하고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였다.
그 때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다짐을 받으려 하였다.
곧 왕은 다시 전쟁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전쟁은 곱에서 일어났다.
이 때는 후사 사람 십브개가 거인족의 아들 중 한 사람인 삽을 쳐 죽였다.
곱은 예전에 단지파가 차지했었지만 블레셋에게 점령당한 도시이다.
세 번째 전쟁 역시 곱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쳐 죽였다.
그의 창은 베틀채 만큼이나 컸다.
네 번째 전쟁은 가드에서 일어났다.
블레셋 진영에서는 역시 거인족 출신인 용사가 나섰는데 그는 키가 크고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6개씩, 모두 24개였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였는데 다윗의 형인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쳐 죽였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가드에 사는 거인족의 아들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세상은 블레셋의 거인족과 같은 용사요 장수며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들은 각종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하며 자기들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살아 있음이 증명 되며 어디를 내놔도 떳떳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이 땅에 번성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았다.
영의 사람들이었던 경건한 셋의 후손들까지 가인의 후예들에게 다 먹혀버린 것이다.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을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함으로 인하여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신다.
바로 그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는데 이 네피림은 곧 용사요 거인이며 세상의 유명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가면 갈수록 죄악을 낳는 기계가 되어 갔다.
(창 6:4-7)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말의 뜻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상에서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각종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내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한 가인의 후예들이다(창 4:16-24).
사람의 딸들이란, 경건한 셋의 후손을 말한다(창 5장).
이렇게 세상은 두 부류로 딱 나뉜다.
하지만 세상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며 악의 소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세상의 전쟁은 이 두 부류의 전쟁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전쟁 역시 이와 같은 두 부류의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용사 거인 유명한 자들이 제 잘 난 맛에 살아가고 있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노아이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들에 비해서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께 방주 건축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저 묵묵히 배만 만들 뿐이다.
가끔씩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는 배를 만들 때도 바닷가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꼭대기에서 만들고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얼마나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겠는가?
저 사람 미쳤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노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 그리고 비웃음으로 죽어갔다.
세상 모든 사람을 상대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 전쟁은 바위에 계란치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전쟁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노아 가족의 전쟁을 넘어 세상의 악과 하나님과의 전쟁이다.
하여 그 전쟁의 결과 120년 후에 세상 모든 사람은 물에 빠져 다 죽는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만 유일하게 물 위에 뜬다.
그들은 방주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육신적으로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표상 되는 방주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그는 그 방주에 속하여 물 위에 뜬 것이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이다.
그가 비록 전쟁에 지쳐 피곤하였지만, 그의 부하들과 함께 블레셋 거인들을 물리쳤다.
이는 그의 힘이 아니라 노아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집어삼킬 것 같은 홍해가 막고 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다.
홍해를 향하여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들라고 말이다.
지팡이를 들자 바닷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른 땅으로 걸었다.
이 장면을 설명하는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고전 10:1-2)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세례는 물에 빠져서 완전히 죽는 것이며 또한 그 물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을 모세에게 속하여 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이 죽고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한다.
나는 분명히 예수에 속하여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자임을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도 함께 연합하여 죽고 주님의 장사됨에 연합하여 함께 장사됨이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연합된 자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가 살리심 같이 나도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예수에 속하여 산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의의 과정을 내가 행한 것이 아니다.
나는 구원 받은 자임에도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시는 자였다.
이런 나는 마땅히 영 죽을 죄인이며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내가 산 자로 지금 당당히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창세전 언약에 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맞지만 나의 믿음이라는 것은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날마다 흔들린다.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나는 불과 며칠이 못되어 넘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믿음을 주님께서는 ‘믿음있음’으로 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약함이 은혜인 것이다.
나를 용사요 거인이며 유명한 자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약한 자를 주님의 강함으로 이끌어주시는 그 은혜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하여 애를 쓰는 자였습니다.
세상의 거인은 자신을 자랑할 것이 많고, 드러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종은 그런 노력과 애씀에도 전혀 드러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였음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용사와 거인을 부러워했고, 큰 자와 유명한 자들이 어찌 그리 부럽던지요.
하지만 지금은 복음을 알기에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네피림에 마음을 빼앗겼던 지난 날, 나의 모습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제는 약한 자임이 나의 자랑이 되고, 부족함이 나의 자랑입니다.
내가 약하기에 우리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날마다 몸으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나의 약함을 더욱 뼈저리게 깨닫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