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화장품은 스타 마케팅, 이미지 마케팅 보다는 과학적으로 효능을 입증한 뒤 신뢰를 바탕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시대가 곧 올겁니다."
세계적인 피부노화 전문가이자, 화장품을 만드는 벤처회사 대표인 서울대병원 피부과 정진호 교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치료, 임상 연구, 강의만 하던 교수님이 살벌한 화장품 시장을 경험한 뒤 말한 것이라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년 간 '피부가 어떻게 노화하는지'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발표한 논문이 200여 편에 이른다. 정 교수가 2013년 설립한 '정진호이펙트(JUNGJINHO EFFECT)'는 주름 등 노화된 피부를 되돌리는 화장품을 비롯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검증안된 제품을 감성으로 판매하는 현실
정진호 교수는 "지금까지는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화장품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 꿈을 팔았다"며 "예쁜 모델이 효능이 불확실한 화장품을 바르면, 자신도 그런 피부를 가질 수 있다고 헛된 기대를 하고 화장품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화장품 업계 입장에서는 뼈아픈 말이지만, 연구와 경험이 뒷받침된 정 교수의 주장이어서 귀가 솔깃해졌다.
정 교수 말대로 화장품으로 노화된 피부를 되돌릴 수 있을까? 정 교수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피부가 어떻게 노화하는지, 피부 세포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이고, 어떤 물질이 노화를 늦추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 화장품을 만들었다"며 "나는 20년 간 피부 노화로 생기는 40가지 이상의 변화를 파악했고, 15가지를 타깃으로 해서 이를 젊게 되돌리는 물질을 찾아 넣어 화장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화장품도 임상시험으로 효능 입증해 판매해야
화장품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약'처럼 과학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입증하는 과정도 거쳤다. 지금까지 나온 상당수 화장품의 임상시험은 대상자에게 짧은 기간 화장품을 바르게 한 뒤 '피부가 좋아진 것 같나' '주름이 줄어든 것 같나' 등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객관적이지 못했다. 또 화장품을 바르기 전 주름을 측정하고, 바르고 난 후 주름을 측정해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측정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정 교수는 "정확한 연구를 위해 환자, 측정자 모두 누가 실험군(화장품을 바른 사람)이고 누가 대조군(위약을 바른 사람)인지 모르게 효능을 측정하는 '이중맹검 대조군 비교 임상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 대상자는 적어도 40~50명(실험군 20~25명, 대조군 20~25명)은 돼야 하고, 실험 기간도 6개월~1년은 해야 효과를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진호 교수는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는 이런 식으로 연구를 안 한다"며 "돈은 많이 드는데, 효능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호이펙트에서 나온 'W에센스 크림'의 경우, 45세 이상 여성(실험군 22명, 대조군 22명)에게 6개월 간 유효 성분이 포함된 화장품과 유효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화장품을 바르게 한 뒤 결과를 측정했다. 유효성분을 바른 그룹은 주름 등 피부 노화 징후가 17% 감소된 반면 대조군은 피부 노화 징후가 3% 높아졌다.
연구만 하던 정진호 교수가 화장품을 만든 계기는 2009년 책 '늙지않는 피부 젊어지는 피부'를 쓴 것이었다. 정 교수는 "책을 쓰다가 이렇게 많은 연구를 했는데, 왜 아무도 활용을 안 할까 하고 생각을 했다"며 "출판 이후 내가 쓴 논문이 정말 그런지 테스트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2013년 화장품이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피부 건강을 위해서라도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바를 것을 권한다. 피부는 노화될수록 피부 두께가 줄어들고 피부는 건조해진다. 피부 재생 기능도 떨어진다. 이럴 때는 보습제 등을 발라 피부의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 햇빛 역시 피부를 손상시키므로 평소 자외선 차단제를 습관적으로 발라야 한다.
정진호이펙트에서는 최근 보습제도 출시했다. 피부 장벽이 망가지면 보습이 안되는데, 피부 장벽이 왜 망가지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제품이다. 5월 말에는 자외선을 차단하고 자외선으로 인한 염증까지 완화하는 선크림이 나온다. 내년에는 미백 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최근 미백 화장품 임상연구를 9개월 간 했지만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아 모두 버렸다"며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제품을 만들 때까지 연구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호 교수 밑에는 40여 명의 연구진들이 피부 노화와 화장품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