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울려 퍼진 ‘어메이징 그레이스’
지난 6월 3일,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음대 피아노과 입학시험에서 만 12살인 제 아들 노엘이가 심사 교수 6인 만장일치로 최연소 합격하였습니다. 심사 교수 전원 만장일치 합격은 가장 높은 점수로 곧 수석합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독일 교육법에 따라 만 14세가 되는 2025년 10월부터 학사과정에 진입하며 그 전에는 영재학교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음대는 독일의 3대 상위학교이며 특히 피아노과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교수가 있을 만큼 좋습니다. 그리고 노엘을 프라이부르크 음대로 이끌어준 저명한 크시스토퍼 시쉬카(Professor Christopher Sischka) 교수님은 음대 부총장이며 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기로 소문난 친환경 도시이고 독일의 자랑인 남서부에 있는 검은 숲(Schwarzwald)의 중심도시이며 제가 유난히도 자주 머물렀고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노엘이도 이곳 광장에서 파는 소시지 빵을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노엘이는 2011년 7월 7일에 대구동산의료원 산부인과에서 출생하였는데 노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노엘 아빠인 제 꿈을 통해 지어 주셨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십사 간구 드린 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부탁드린 그날 밤 제 꿈속에 큰 책을 펼치시고 친히 글을 써 주셨습니다.
“노엘”
기쁨의 아이
행복한 아이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아이
그 노엘이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잘 자라서 만 12세에 독일 대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섬세하신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2023년 11월 4일,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프라이부르크 음대 피아노과 교수실에서 시쉬카 교수님을 만난 날, 교수님께서 노엘의 아빠인 제게 물었습니다. 노엘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노엘이가 피아노로 인해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며 피아노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기를 바란다”고 대답하였는데 그 대답이 교수님을 크게 감동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날 노엘의 연주를 직접 듣고 또 부모인 우리 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대단히 기뻐한 시쉬카 교수님이 노엘이를 자신의 제자로 삼아 잘 지도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답니다. 그 후 귀국하여 올해 5월 다시 독일로 가기까지 또 한 번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독일과 러시아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한 어느 집사님에게 하나님께서 “니가 노엘이에게 네 지식을 나눠 주어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집사님의 아무 대가 없는 헌신적이고도 귀한 가르침으로 노엘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어 입학시험을 잘 치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노엘의 연주를 들으신 효성병원 원장님이신 우리 교회 박경동 집사님과 최오란 권사님 부부께서 노엘을 무척 아껴주시며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그 어린 자녀를 양육하여 일꾼 삼으시려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가 바로 그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노엘이가 태어나게 된 것과 자라난 과정, 그리고 불과 두어 해 공부한 실력으로 독일 대학에 합격한 것과 귀한 선생님과 후원자를 만나게 된 모든 여정이 저희 부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축복이요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노엘이는 프라이부르크 음대 최연소 학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공부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대학원생들이 공부하는 곡들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그분께서 늘 인도하실 줄 거듭 확신합니다. 저희는 다만 하나님께서 저희를 쓰시도록 정결한 도구로 준비되어갈 따름입니다.
며칠 전에는 노엘이가 프라이부르크 음대 피아노과 연습실에서 노엘이가 사용하는 멋진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였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날 노엘의 연주가 프라이부르크 음대는 물론이고 온 독일 땅에 널리 울려 퍼졌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노엘의 일생 동안 노엘이의 정결한 영혼과 가녀린 손가락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어메이징 그레이스 Amzzing Grace”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되기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꿇어 엎디어 간구 드리며 저희 마음과 삶을 내어 드립니다.
1992년, 부족한 저를 삼덕교회로 이끌어주시고 장학금을 주셔서 영국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도록 도우시고 방학 때 잠시 귀국한 저를 앞에 앉혀두시고 이번에 결혼 안 하면 영국으로 못 간다고 겁을 주시며 결혼 주례까지 맡아 주시고 협력선교사로 세워주셔서 응원하시며 늘 아껴주신 김태범 원로목사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친 아들 이상으로 아껴주시고 늘 보살펴 주시며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믿음의 동무로 삼아주신 김재진 장로님의 크신 사랑과 10년간 빈번하게 복통으로 시달리며 몸이 불편하던 저를 진료하시고 복부에 염증이 퍼져있다는 것을 발견해주신 조준찬 장로님.
제 손목을 잡으시고 진맥하셔서 제 육신의 이상징후를 최신의료기계인 MRI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감지하시고 얼른 응급실로 가도록 하셔서 24시간만 늦었으면 패혈증으로 생명을 99.99% 잃었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져주신 대한민국 최고의 명의이신 서정호 장로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담낭이 터져 온 복부를 감염시켰고 동산의료원에서 4시간의 응급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졌습니다. 제 뱃속에서 새끼손톱만 한 것과 그보다 더 큰 돌멩이가 70여 개 나왔습니다).
저는 늘 삼덕교회를 생각하며 유럽과 필리핀, 그리고 한국에서 주님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로 저를 감동하게 하신 윤혜승 장로님이 늘 그립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동인 권사님께서 저희 가족이 보고 싶으시다며 부르시고 차 대접도 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사랑입니까. 윤혜승 장로님과 이동인 권사님의 아드님이신 윤영 집사님도 함께 만났습니다. 윤영 집사님은 형제같이 저와 생각이나 믿음의 색깔이 닮았습니다.
삼덕교회는 제 인생에 있어서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 글은 김태범 원로목사님의 권면으로 대구삼덕교회의 신망애 회지에 보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