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 / 고영민
주말 저녁 무렵 아내가 내민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 밖에 나왔는데 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 영락없는 내 어머니였다 돌아가신 지 삼 년 된 어머니가 다른 모습으로 아직 이승에 살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뚱한 생각으로 한동안 쳐다보았다
어제 퇴근길 사내아이의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딸만 둘인 내가 모르는 사내아이의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왜 돌아보았을까
- 시집 『햇빛 두 개 더』 (문학동네, 2024.10) ------------------------------
* 고영민 시인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문학사상》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 『봄의 정치』 『햇빛 두 개 더』 지리산문학상(2012), 박재삼문학상(2016), 천상병시문학상(202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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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걸어갈 때 ‘아빠!’하고 여자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적이 자주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걸었던 익숙한 길도 아니고 낯선 길인데 뒤돌아봤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알 수 없음’이라고 그 까닭을 갈음하게 되지만, 전적으로 ‘닮은 목소리’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이때 다양한 감각이 내 감각기관을 통해 채집됩니다. 물론 모든 감각이 동일하게 채집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별적으로 어떤 감각에는 집중하고 어떤 감각은 적당히 무시합니다. 이는 내 몸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감각기관은 나에게 중요한 정보 위주로 채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라면, 나의 감각기관은 무엇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될까요. 아이와 관련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하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몸속에 각인된 내리사랑(부모)의 유전자 때문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 것이 화자가 한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이었다면, 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란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움은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를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혼동하게 만듭니다. 어떤 지독한 그리움은 나를 지속해서 혼동 속에 빠트려 몸과 마음을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이런 경우 병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사람이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게 됩니다. 실수하면 안 되기도 하고, 이성은 감정에 이끌려 무너지려는 나를 잡아줍니다.
또한, 이러한 혼동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움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A·I나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바탕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리움이죠. 어쩌면 내가 오늘 힘을 내서 살아가는 까닭, 저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떠나간 내 사랑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그것이 저를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어떤 그리움은 내 동력이 되어 나를 힘껏 살아가게 합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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