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기대어
고재종
강의 면목이라면 면면한 유수와 범람,
강물 따라 걷는 마음은 넘치고 또 흐르네.
보리숭어며 비오리 떼가 튀고
창졸간의 갸륵한 것들이 좋이 울어도
순간의 꽃보다는 이야기로 더 유장할 터,
금결은결 반짝이는가 했더니 금세
그리움의 파란으로 일렁이는 시간 아닌가.
한때는 한도 없이 파닥거렸던
강변 은백양 잎새와 첫사랑의 흑단머리는
바람의 갈래 갈래로 흩어지고
오늘은 강가에 퍼지는 라일락 향기,
강섶을 일구는 고라니며 노인장과 함께
또 무엇, 그 누구로 흘러드는 구름 떼라니!
구름이 깊어지면 강물도 높아져서는
서러움 밖의 그 무엇이라도 소환할 듯한 모색,
서녘 놀이 비쳐 든 갈대밭 속의 연애 너머
썩지 않고 들끓는 고독의 항성으로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그런 유정의
경계 같은 것들을 오늘도 추문하는 것이랴.
흐르는 강에 차마 가닿지 못하고
사소한 마음 하나에도 수만 물비늘을 뒤채는,
지금은 결락한 꿈의 시간에 기대어
제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강의 명색이여.
고재종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신작시집『시여 무기여』에 시 8편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사람의 등불』『날랜 사랑』『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쪽빛 문장』『꽃의 권력』, 육필 시선집『방죽가에서 느릿느릿』.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