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12시 가운데(하루종일) 어떻게 마음을 운용합니까?"
조주는 말했다.
"나는 12시에 부리어지는 게 아니라 12시를 내가 부린다. 그대는 부리어지는 12시를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부리는 12시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시간은 시간 속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시간의 주는 나다. 먼 과거로부터 미래까지가 이 찰나에 현전(현재와 연결,연속)한다.
번쩍 스쳐 사라지는, 저 어둠의 끝 모를 깊이에로 사라지는 이 순간이 무한한 미래와 과거를 있게 하는 근본원인이 된다.
과거는 과거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현재,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끝없이 유동한다. 자리바꿈, 그리고 결합과 이산(흩어짐)을 하고 있다.
이런 이치를 의상은 그의 법성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끝없는 저 세월이 곧 한순간이요
한순간 이대로 끝없이 긴 세월이라
9세와 10세는 서로 서로 자리바꿈하지만
그러나 그 한계에는 변함이 없다.
9세-미래의 미래 현재, 과거
현재의 미래, 현재의 현재, 현재의 과거
과거의 과거, 과거의 현재, 과거의 미래
10세-9세에 다시 현재일념을 덧붙인 것
오직 현재, 지금 여기에 있는 나로부터 시간은 시작된다. 시간은 한 덩이 밀가루 반죽이다. 이 밀가루 반죽은 길게 늘일 수도 있고 둥글게 축소시킬 수도 있다. 길게 늘일 경우 찰라가 그대로 영겁이 된다.
둥글게 압축시킬 경우 저 먼 미래가 모조리 이 순간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시계의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 분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된 시간이다. 시간의 본질은 없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시간은 그 공간과 상황에 맞게 변질되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을 버린 미래란 찰라를 외면한 영원이란 1을 부정한 1억과 같다. 1억이란 무엇인가? 1이 1억 개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1은 1억을 구성하는 기본 숫자다. 1을 버릴 때 1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끝없이 유동한다. 의상은 다시 그의 법성게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일체이므로 다는 곧 1이다. 한 티끌 가운데 시방이 있다. 온 우주 모든 티끌 가운데에도 또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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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보다 조금 위에 가면 사왕천이란 별이 있다 한다. 이 별의 크기는 지구의 몇 억만 배가 된다. 지구의 500년의 시간이 사왕천의 하루가 된다고 하였다. 또 사왕천 위에 가면 도리천이란 별이 있어서, 사왕천의 500년이 도리천에서는 하루가 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력이 시간을 늦춘다.'
질량이 작은 것 위에서보다 큰 것 위에서 시간은 더 천천히 간다. 즉 목성과 같이 비교적 큰 혹성에서는 지구에서보다도 시간이 더 천천히 간다.
지구상에서 어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가 목성에서는 더 느리게 간다. 태양에서는 더욱더 느리게 갈 것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태양 위에서의 1초 동안은 지구 위의 1.000002 초에 해당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석지현스님의 글에서-
<감상>
의상대사의 법성게는 화엄경의 진리를 요약해 놓은 글이며 화엄의 세계에서는 사사무애 법계라 해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 물질이 서로가 장애 되지 않고 중중무진하게 상융(조화롭게)하고 낱낱 사물도 우주에 중중무진(펼쳐진, 연결되어있음)의 연기의 법칙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 설법 도량에 온 우주 세계 호법 선신들과 보살들이 수없이 많이 몰려와 자리를 잡고 좁은 공간에 앉아도 좁거나 불편하거나 부딪치지도 않고 편안하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것은 불보살의 신통력 때문이다.
이렇한 화엄의 도리를 비유하면 큰 항아리가 밥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화엄의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화엄의 진리에서 시간은 유동적이며 고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중생들의 업력과 인식과 느낌에 따라 시간을 차별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기와 비슷한 하루살이를 보자. 하루살이는 평생을 살고 죽지만 인간세계에서는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사왕천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오백년이고 도리천의 하루는 사왕천의 오백년이니, 하늘 시간으로 몇 천년을 산다하니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50억년 이상이 되므로 무지 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란 이처럼 차별적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이치를 모르고 하늘에 태어나면 모든게 다 맞춰지고 영생이라고 착각하며 믿고 있다.
그렇지만 하늘 세계도 언젠가는 복의 힘이 다하면 다시 떨어질 날이 있다는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
왜냐면 영원한 열반이란 무명과 마음의 번뇌를 끊고 깨달아야만 영원한 해탈이며 영원한 구원이고 평안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분이 붓다이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감사합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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