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 속에 있는 악한 본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죽이지 아니하고는 천국 본향을 향한 이 땅의 순례길을 제대로 갈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도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자신의 본성을 고통스러워하며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한탄하였다.
만약 죄를 범하면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사악한 본성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선을 좇아 살아가려고 하는 자신에게 또 다른 한 법이 있어 자신을 끌어다가 사탄에게 종노릇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신을 아파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하였으며 이어 자신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낼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심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렇다.
날마다, 그리고 순간마다 자신 속의 사악한 죄의 법을 죽이지 아니하면 결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죄인 된 우리들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더욱이 어린 아이들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찬양하자고 하면 몸서리를 치며 도망간다. 하지만 먹고 마시고 놀며, 또 컴퓨터게임하고 음란한 것들을 가까이하자고 하면 미치도록 좋아한다. 이게 우리인 것이다. 틈만 나면 휴대폰을 켜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의 바다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고 도리어 자신을 죽이는 음부의 권세와 입을 맞추는 이 세대를 바라보며 예레미야의 눈물을 흘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며 왕 앞으로 나아갔던 에스더의 결단을 따를 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모진 고초 당하신 주님께서 가신 그 골고다 언덕길을 제 십자가를 지고 오를 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