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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장죠셉
출애굽기 25장 23-30절에 기록된 말씀에서 진설상이 주는 교훈을 토대로 신부가 되려는 후보들에게 첫번째로 요구되는 내용은 감사와 기쁨의 삶이라고 합니다.
진설상(쉴찬)
진설상의 원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첫 걸음 입니다. 진설상의 자료도 아가시아라는 조각목 입니다. 진설상은 조각목을 자르고 쪼개고 대패질을 하고 정해진 규격대로 자르고 못을 박아서 만듭니다.
기쁨과 감사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위해 세상의 관습을 버리고 성소의 관습으로 바꾸어야 신부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 있는 나무를 잘라서 성소로 가져와서 완전한 진설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믿음이 척량, 곧 테스트(Test)를 받게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설상을 만들도록 명령하신 의도를 알아야 신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진설상의 뜻을 하나님께 드림만을 강조합니다. 옳은 해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한 부분만을 생각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드리는 예물외에 다른 뜻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든 예물은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7: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 16:24)
감사는 찬양과 다르고, 찬양은 경배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 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당연히 해야할 의무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했습니다.(살전5:16-19)
아가시아 나무는 기술자의 손에서 다루어 집니다. 그 기술자는 누구이어야 됩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목사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서 다루어지게 해야 됩니다. 나를 하나님을 위하여 다스려지게 할수 없을까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말입니다. 쓰임의 테스트(Test)에서 합격될 수 없을 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짐에 대하여 감사하고 기뻐해야 신부로 합격받게 됩니다.
성소로 운반되는 나무는 뿌리를 잘라버립니다. 세상으로 깊이 뻗어있는 세속적인 뿌리들을 잘라버려야 신부로 합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잘라버리지 않으면 성전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나무를 자르면 수액이 흐름니다. 그것은 나무가 흘린 눈물입니다. 자아를 버리려면 고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눈물 없이는 신부로 합격될 수가 없습니다.
바람을 일으키고 소리내는 가지들을 잘라버럽니다. 바람을 일으켜서 말썽을 만드는 '나'라는 아이덴티를 버려야 신부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왜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아픔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기쁨과 감사의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아야 신부가 될수 있습니다.
톱이나 대패로 판자가 될 때까지 쪼개고 갈아내야 됩니다. 높아지려는 교만함을 잘라버려야 신부가 될수 있습니다. 의지로 자기를 갈고 닦아서 하나님의 집에서 고르게 만들어져야 됩니다. 판자로 만들어진 나무는 찌르는 가시와 거칠한 껍질은 없어졌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삶이어야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습관이 없어지고, 자신의 거친 성품이라는 껍질이 벗겨지게 되어서 신부로 합격됩니다.
토막과 토막의 아귀가 맞게 끌로 구멍을 내서 연결지웁니다. 이것은 연합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려면 먼저 자신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연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골수 까지 뚫고 들어가서 하나님과 연결지워져야 신부로 합격됩니다. 그러려면 자신을 진설상이 되는 일에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됩니다.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는 이유는 인색하거나 신자라는 흉내만 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신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못을 박아서 완전한 진설상을 만듭니다. 쓸모 없는 조각목 나무가 진설상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합니까? 사람이란 어떤 존재였습니까? 아가시아 나무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쓸모 없는 상태로 아궁이에 던져저서 태워져야 될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나를 진설상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쓰이는 것이 좋겠지요. 어떻게 쓰이는 '나'가 되어야 합니까? 나는 조각목으로 쓰일 수 없을까요?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쓰이기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어야 신부로 합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끓어지지 아니하였느냐(욜1:16)
삶에서 기쁨과 감사가 없어진 원인은 자신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지는 예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설상이 요구하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진설상에는 진설병이 끊이지 않도록 매일 풍성히 준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이 내 전체를 주관하시면서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시고 입혀주고 양육하심에 대하여 감사와 기뻐하는 생활이 진설상의 원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합니다.
'안에서(Within)'란 말과 '관해서(Concern)'란 말은 분명히 다릅니다. 감사는 우리에게 관계되는 사건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예수 안에 있는 자신에게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화평하신 마음으로 부르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기쁨을 충만히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원망과 시기와 불평과 분노와 슬픔과 싸움이 있습니까? 감사가 없기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먼저 자신의 속 사람을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학대하는 죄 입니다. 그렇게 하면 신부로서 합격 받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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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