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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七彩 운남의 길 위에서 – 7편▐
마지막 날 – 여강의 교외 산책
(2014. 7. 5 : 인상여강 공연-운삼평- 백수하-옥수채-흑룡담-중경)
6시에 모닝콜 벨이 울렸고, 식당으로 내려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7시 40분에 체크아웃한 후
8시에 옥룡설산으로 출발했다.
여강 외각도로로 빠져나와 일방통행의 직선도로를 따라 30분쯤 달려 옥룡설산 게이트(입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옥룡설산은 중국 최초의 5A급 관광 경구(景區)다.
입구는 명찰까지 단 까만 양복을 입은 직원들과 철모와 전투복을 갖춰 입은 경찰들이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다. 관광지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국가기밀군사시설을 방문하러 가는 듯하다.
한참 기다려 수속을 끝내고 들어선 중앙선이 없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고,
차창 밖은 솔숲이 울창하고 숲속에는 조그만 마을도 하나 숨어있다.
어느 순간, 산 너머 멀리 흰 구름에 감싸인 설산의 머리 부분이 푸른 하늘 아래 살짝 드러났다.
산을 돌아나가자 시야가 확 트이며 드넓은 삼림지대가 펼쳐지고 옥룡설산으로 오르는 길인지 계곡인지 하나가 가늘고 희게 기어가고 있다. 살짝 보이던 정상은 다시 구름 속에 잠겨있다.
버스는 ‘인상・여강(印象 麗江)’을 공연하는 극장 주차장에 들어섰다.
많은 차량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고, 뒷창문에 ‘칠채운남(七彩云南)’이란 글자와 함께
운남성 지도를 그려놓은 차들도 많이 눈에 띈다.
여행의 막바지에 들어서니, 우리가 밟아온 여행일정인 “스린(石林) - 쿤밍(昆明) - 따리(大里) - 리지앙(麗江) -
위롱쉐산(玉龍雪山) - 샹그리라(香格里拉)”의 지명이 일목요연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 인상・여강(印象 麗江, Impression LiJang ) ●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해발 3천m에 세워진 극장에 들어서니, 거대한 원형 야외무대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이곳은 차마고도의 길목인 옥룡설산의 운삼평 아래, 오로지 ‘인상・여강’ 한 작품만을 공연하는 전용극장이다.
객석에 앉아보니 설산을 상징하는 붉은 갈지자 고갯길이 일곱 단으로 꾸며져 있고,
무대 위로 구름에 덮인 옥룡설산이 무대장치처럼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그리고 무대는 전면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360도 빙 둘러가며 설산의 고갯길을 꾸며놓아
넓고 입체적인 연출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상・여강(印象 麗江, Impression LiJang)’의 연출자인 장이모(張藝謀, Zhang Yimou) 감독은
계림의 ‘인상 유삼저(刘三姐)’를 연출하여 대성공을 거두자 이와 유사하게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항주의 서호를 무대로 한 ‘인상 서호’ 그리고 이곳 여강의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인상 여강’ 그리고 중국 최남단의 섬 해남도의 ’인상 하이난‘ 등을 만들어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두며 관광 사업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연출한 장이모・왕챠오제・판웨 3인의 총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출연진은 순수한 지역주민인 아마추어 배우라고 한다.
10개 소수민족에서 선출한 젊은 농민 등 500여명과 100여필의 말, 그리고 수십 개의 북과 소도구들이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대규모 공연이다.
9시 첫 공연인데도 빈자리가 없는 매진 상태다.
‘인상・여강’의 내용은 차마고도(茶馬古道), 대주설산(對酒雪山), 천상인간(天上人間), 타도조가(打跳組歌),
고무제천(鼓舞祭天), 기복의식(祈福儀式)의 총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 공연에서는 각 장의 구분 없이 연기가 이어져 있어, 집중하지 않으면 산만하게 느낄 수도 있다.
제1장은
차마고도를 오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다. 남성들의 역동적인 단체춤과 실제로 말들이 360도 무대 위를 힘차게 달리며 박진감을 보여준다. 마방은 설산을 넘어 오랜 기간의 여정이 필요하고, 여인들은 남편을 기다리며 큰 바구니를 지고 설산을 오르내리며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남성들에게는 삶의 무게와 거친 역동성이, 그리고 여인들에게는 사랑하는 남편들의 안전을 간절히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고단한 삶이 대사 없이도 잘 전달되고 있다. 강렬한 붉은 색의 무대는 은연중에 중국의 대지를 상징하고 있고, 소수민족의 붉고 푸른 전통의상과 마방들의 흰 양피코트 그리고 옥룡설산의 장엄한 자연이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으로 무대 배경을 받쳐주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또 무대 앞의 비탈길을 달려서 관중석 뒤로 돌아 달려나가는 말 타는 연기가 일품이었다면, 공연 내내 한 번도 옥룡설산을 보지 못한 지독히 운이 없는 날씨가 못내 아쉬웠다.
▲ 여인들은 남편을 기다리며 큰 바구니를 지고 설산을 오르내리며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 남성들은 마방이 되어 차마고도를 따라 길을 떠난다.
▲ 마방들은 오랜 여정 끝에 자랑스럽게 돌아온다.
제2장 대주설산은
설산 아래서 벌이는 술판인데, 척박한 땅에서 힘든 삶을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술이 취하면 싸움판도 벌어지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술 취해 쓰러져 있는 남편을 찾아 끌고 나가고, 비틀거리며 아내 뒤를 따라가던 남편이 산길에서 아내를 정성스럽게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간다. 술과 가무를 즐기는 소수민족들의 호방하고 낙천적인 생활상이 전개된다. 동시에 동서고금 한결같았을, 술 취한 사내들의 코믹한 모습과 술이 깬 남편이 아내를 업고 가는 장면은 웃음과 눈물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연출이기도 하다.
▲ 동서고금 술자리는 거나한 술판 끝에 싸움이 일어나고, 취하면 쓸어져 자고, 술 깨면 부스스 일어나 집으로 간다. / 사진(위)-싸움판 • (아래)-아내가 술 취한 남편을 찾아 끌고 나가고, 비틀거리며 아내 뒤를 따라가던 남편이 산길에서 정신 차려 아내를 정성스레 업고 집으로 돌아간다.
제3장 천상인간은,
배필은 부모가 정해주는 풍습에 따라 사랑하는 연인과 맺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 죽음을 택하여 설산으로 들어가는 연인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대목이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설산 속의 이상천국으로 떠나는 남녀, 그리고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른편 멀리 상단 무대에서 애절하게 펼쳐진다. 관람후기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냥 현실에서 시집가는 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애절한 모습으로 보고 있는데, 무대 위치나 분량이 너무 비중이 약해 일으키는 오해가 아닐까 싶다. 이 부분은 운삼평에 얽힌 나시족의 ‘정사(情死) 설화’를 모티프로 설정한 것일 터, 이 전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리라. 이곳이 바로 운삼평 아래이고, 운삼평(云杉坪)은 나시족 토박이말로 ‘여우꺼(尤舞各)’ 즉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곳’이란 뜻이다. 나시족에게 운삼평은 사랑을 완성시키는 정사(情死)의 땅이요, 이상천국으로 통하는 순결의 땅이기 때문이다.
▲ 설산 속 이상천국으로 떠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 (상)가족과의 이별 • (중)떠남 • (하)사랑은 전설로 노래된다.
제4장 타도조가는,
무대 여기저기서 심지어 객석 뒤에서까지 10개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민속의상을 입고 무반주로 노래를 하면서 입장을 한다. 각 민족들의 민속명절에서 유래된 가무(歌舞)에서 출발하여 서로 교류하고 친해지며
대자연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역동적인 일상이 전개된다. 소수민족의 다양성과 설산 아래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화합정신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설산 아래 소수민족들이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화합한다.
제5장 고무제천은,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나시족 동파교(東巴敎)의 제신의식(祭神儀式)으로 제문(축문)을 읽고
집단적으로 북춤을 추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축문의 내용은 대략 위대한 조상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거칠 것 없는 호연지기와 용맹을 뽐내는 것이라 하는데,
신들린 듯이 두드리는 웅혼한 북소리는 관객의 가슴을 얼얼하게 저민다.
▲ 하늘을 숭배하며 제사를 지낸다. / (상) 축문 읽기 • (중) 각 민족들의 제사 참석 • (하) 천지에 고하는 북소리
마지막 제6장 기복의식은
두 손을 모아 설산과 하늘에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엄숙한 제천의식이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전 출연자들이 전통복장으로 슬금슬금 등장하여 무대를 가득 채우고, 출연자와 관객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주고받는 문답형식의 기도는 초원을 덮고 설산의 구름을 녹일 함성으로 퍼져나갔다. 말을 못 알아듣는 외국인들도 중국인들의 함성 속에 묻혀 자연스럽게 공연의 끝을 기립박수로 마감하게 했다.
▲ 전 출연자들과 관객들의 기도 의식 / (상)하늘에 드리는 기도 • (중)땅에 드리는 기도 • (하) 피날레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과 기념사진도 찍는다는데 우리 팀은 끝나자마자 퇴장하여 약속된 장소에 모여
운삼평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러갔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몇 분과 공연소감을 나눠보니 호오(好惡)가 너무 극명하게 갈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유는 주로 1시간 남짓한 공연 내내 중국관객의 공연질서가
어수선해 집중이 안 되고, 자막 처리가 너무 성의가 없고, 배우들도 열의가 부족하다는 것 등이었다.
감동을 받았다는 측은 마이크를 든 배우가 간혹 멘트를 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주인공이나 대사가 없어 이해하기 쉽고,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배우들이 등장하여
대열이 끝없이 길어지다가 줄어들기도 하며 심지어 관객 뒤로 말들이 힘차게 360도를 도는 등
폭넓게 무대를 사용하는 기교에서 장이모 감독의 거장다운 면모를 보았다고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나는 만약 제3장 ‘천상인간’을 무대 위쪽으로 몰아내 짧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면 중앙무대로
끌어들이고 분량도 확대하여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드라마의 중심에 두고, 마방과 술판 장면을
부모 세대의 삶으로 배경화시켰더라면 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나시족의 정사설화(情死說話)는 자살예찬론이 아니라
사랑조차도 때묻고 상업화된 현대인이 잊고 있던 사랑의 원형이다.
청춘남녀가 처음 사랑이 싹틀 때 죽음으로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란 맹세를 하는 것은
그 사랑이 지고지순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자기최면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다.
그러므로 이 공연이 너무 상업적으로 여강의 인상을 눈요깃감으로 펼쳐놓은 쇼에 그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진지한 예술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권력이 된 장이모 감독에게 예술가의 배고픈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지만,
설산 속에 ‘사랑의 샹그릴라’라는 보석을 이미 가지고 있는 나시족에게는 대단히 실례되는 일이다.
순간순간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바삐 움직이다 보니 정작 공연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극장 밖으로 나와 쳐다보는 옥룡설산은 인간의 발자국을 허락하지 않는 늠름한 아버지 산이고, 설산 아래 어머니 같은 숲이 대평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왜 이들 민족에게 이 산이 성산(聖山)인지가 이해된다.
운삼평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즉흥적으로 32원을 주고 중국어판 『인문 운남』을 샀다.
‘인상 여강’에 대한 아쉬움의 반작용이었다.
● 운삼평(云杉坪) ●
극장 앞에서 공원 셔틀버스로 운삼평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5,596m의 옥룡설산을 케이블카로 오르는 코스는 3곳이다.
가장 높은 곳을 오르는 곳은 감해자(甘海子)다. 해발 4,500m정도까지 올라가볼 수 있으나 날씨가 안 좋으면
비싼 입장료에 비하여 볼 것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 높은 곳은 모우평(耗牛坪)이다. 모우는 야크를 말하는데, 3,500m에 있는 넓은 평원과 목장을 돌아보면서 눈으로는 설산을 구경하는 곳이다.
가장 낮은 곳이 3,300m의 운삼평(云杉坪)이다. 지금 올라야 할 곳이다.
어느 곳이든 이제 설산들은 자연환경의 파괴로 만년설이 줄어들어
여름철에는 눈이나 빙벽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옥룡설산의 암질은 석회암과 현무암이라 흑백이 분명하고, 그래서 예부터 '흑백설산'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앞으로 설산의 눈이 점점 더 사라지면 이 이름이 더 중심이름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곳에 와서 설산의 눈물을 보고, 만년설이 왜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나시족의 성산인 옥룡설산의 운삼평에 오른다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 나름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가까이
설산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율목잔도(栗木棧道 밤나무로 만든 길)를 따라 가능한 한 천천히 올라갔다.
샹그릴라에서 고산증을 살짝 경험했기 때문이다.
길옆에는 삼나무가 천년의 세월을 이고 하늘 높이 뻗어 있고,
더러는 고사목이 되어 이끼를 덮고 누워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야생화와 희귀한 식물들이 많아 식물의 왕국을 이루고 있다고 하나 관광객이 숲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느 분은 잔도 옆에서 산삼을 캐 어제 약주를 낫게 한 분에게 즉석선물을 했다고 한다.
드디어 삼나무 사이로 푸른 초원이 보인다.
이 높은 산위에 이렇게 넓고 평평한 분지가 있다니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손에 잡힐 듯한 설산의 기경(奇景)이나 고원산림의 풍모는 한 번만에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구름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다만, 조금 전 본 ‘인상 여강’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설산 속으로 말을 타고 들어간 순정(殉情)의 땅이라는 것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왜 이곳이 운삼평인지 알 것 같다.
나시족 전설을 떠올리며,
어느 삼나무가 양치기 청년 아약(阿若)과 아리따운 나시족 처녀 아명(阿命)의 정사수(情死樹)일까
두리번거려 본다. 내친 김에, '이상천국으로 통하는 순결의 땅'을 느껴보려고
삼나무 고사목에 푸른 이끼가 짙은 곳으로 한 발 다가가보니 숲의 요정이 금방 방울소리 울리며 나타날 듯하고, 정사귀신이 구름처럼 나를 휩싸고 돌듯하여 얼른 뒤로 물러섰다.
오른쪽 길은 사람이 붐벼 한적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목책과 밤나무를 깔아놓은 잔도가 초원을 한 바퀴 돌도록 되어있으니 어느 쪽으로 돌아도 마찬가지다.
연초록 초지에 말과 양과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을 자주 사진에 담으며 조금 가니
작은 새끼양 한 마리가 목책 사이로 들어와 내 걸음을 방해한다.
엉덩이를 밀어도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쪼그려 앉아 한참을 놀아줬다.
군데군데 목장 쪽 풀밭 위에 쓰러진 삼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누워있다.
수년 전 미국서부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도 산불지역을 그대로 방치해놓은 것을 보고 의아해했더니
그대로 두는 것이 회복이 가장 빠르다고 했다.
자연에게는 인간의 간섭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걸 여기서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설산은 구름에 덮여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길로 꺾어 사람들이 붐비는 쪽으로 돌아섰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니 목책에 기대어 작은 좌판을 펼쳐놓은 나시족 아주머니는 도통 관광객에겐 관심 없이
바느질에만 열중하고 있다.
저만큼 떨어진 다른 좌판에는 아예 주인 없이 이 산에서 나는 버섯과 야크제품만 옹기종기 해바라기를 하며
누워있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것 같다.
입구 쪽에 소원을 비는 나무패가 빼곡히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모두가 간절한 '사랑'의 소망과 기도문만을 쓸 것 같다. 하지만 실망할까봐 일부러 한 점도 읽지 않고 지나쳤다.
이제 초원을 한 바퀴 빙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초원을 뒤돌아보며,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푸른 운삼평은 금수곡이라고도 불리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만년설과 어울려
환상적이고도 이국적인 풍취를 보여주어, 흔히 '동양의 알프스' 또는 '지상낙원'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관광안내서를 떠올리며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작별을 고했다.
내려오는 길 중간에 있는 동심정(同心亭)에 잠깐 앉아 쉴 때 몇 사람의 대화가
화장실 입구 안내판마다 눈에 거슬렸던 한글 표기에 대한 것이었다.
“请勿吸烟 / No smoking / 되돌아감”이라니.
전에는 일본어가 있었을 자리에 한글이 자리 잡고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많은 한국관광객 중에서 한 사람도 공원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공원 측에서 알고도
귀찮아 고치지 않았는지, 어쨌든 웃을 일이 아니다.
● 백수하(白水河) ●
운삼평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다시 셔틀버스로 옮겨 타고 15분쯤 더 내려오니 백수하(白水河)다.
올라갈 때 차창으로 언뜻 보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곳이다.
설산의 빙하물이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처음으로 강의 모습이 되는 곳인데, 회백색 석회암 지대를 유난히 흰 강물이 흘러 ‘백수하’라 불린다고 한다.
설산 아래 나시족이 처음으로 정착한 나시족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산의 정상이 장관이라고 하나, 이제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 호수로 내려간다.
옥룡설산의 주봉이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이 없는 처녀산이듯이, 옥룡설산 주위를 사흘째 맴돌고 있지만 13개 봉우리 중 어느 하나도 우리는 본 적이 없어, 상당히 삐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니 물빛 하나만으로도 꼭 들려야 할 곳이다.
입구에 호수의 물빛과 똑같은 비취색으로 ‘남월곡(藍月谷)’ 세 글자가 새겨진 빗돌이 서 있어
모두들 인증 샷을 남기고 흩어져 호수를 거닐었다.
물가로 내려가 상류 쪽을 쳐다보니 역시 설산의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가까운 산 중턱에 붉은 색으로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동파문자로 새져져 있다.
안내판을 보니, 백수하는 옥룡설산의 빙하가 흘러내린 계곡인데, 공식적으로는 ‘남월곡(藍月谷) 관광풍경구’다.
석회질의 영향으로 옥색 물빛이 신비로운 옥액호(玉液湖)・경담호(鏡潭湖) 남월호(藍月湖) 청도호(聽涛湖) 등
4개의 호수가 층층이 이어져 있어 옥룡설산 관광을 마친 사람들이 들러 마지막 운치를 즐기고 있다.
▲ 백수하의 물빛 / (상)청도호의 에메랄드빛 • (중)남월호의 옥빛 • 옥액호의 비취빛 수면
상류 다리 너머에는 석회암 지형이 계단식 층을 빚어놓은
백수대(白水台)가 있으나 걸어서 가기엔 멀고 시간도 부족하다.
이곳은 위에 있는 백수대를 본떠 계단식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은 곳이지만,
수심과 햇빛에 따라 하류 쪽은 물빛이 부드러운 에메랄드빛이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옥색으로 다시 비취색으로 변하여 눈부시게 황홀한,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신의 선물이다.
우리말의 특징 중의 하나인 감각어의 발달도 시각언어에 오면 답답할 때가 많다.
물빛을 보석에 비유한 앞 문장보다 지명에서 가져오면 통틀어 ‘청람(靑藍)’이라 하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계곡물로 흘러가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인공적으로라도 슬쩍 거들어 물을 붙잡아 호수를 만들어놓으니,
그 물빛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든다.
구채구와 황룡을 떠올리며 실망하지는 말자.
조금은 인위적인 풍경이지만 옥룡설산의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청람색 물빛과 설산을 배경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광이 아니겠는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상여강’ 공연극장 옆에 새로 생긴 ‘옥룡설산음식센터(玉龍雪山餐飮中心)’에 2시 30분에 도착했으나
늦은 점심이라 식당의 음식이 부족하여 준비 관계로 2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하지만 평소에 한없이 게으르다가도 여행만 오면 부지런을 떠는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이 자투리시간에도 나는 2층으로 올라가 건물 뒤편 창밖으로 보이는 골프장을 구경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비거리가 아주 멀리 나가는 매력적인 골프장이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샷을 날리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다시 일행들이 무료하게 기다리는 1층 로비로 내려와 구석에 있는 TV 앞으로 가 월드컵 4강전을 잠시 시청한다. 화면 상단의 자막이, “파서세계배 (巴西世界盃) 1/4決宴”이고, 그 밑에 “法国:德国(0;1)”이니,
브라질월드컵 후반전 중반에 독일이 프랑스를 1:0으로 이기고 있는 중이다.
수첩에 자막 글자를 메모하고 있으니 일행 한 분이 다가와 무얼 하느냐고 물어본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 분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주어
나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식당 입구에 있는 정말 재미있는(?) 조각상을 사진에 담았다.
남근상은 많이 보아왔지만 여근상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무려 3시 30분이다. 여행 중 가장 늦은 점심이다.
오늘 일정이 가장 타이트하지만, 이 와중에도 할 건 다하는 부지런함이 스스로도 놀랍다.
● 옥수채(玉水寨, Jade Water Village) ●
이제 ‘옥수채’로 출발한다.
가는 길은 여강 시내가 까마득하게 가물거리는 백사편(白沙片) 대평원 길을 달려 오른편으로 꺾어들어야 한다.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온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그냥 버려져있는 상태인데, 공사안내판을 보니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명은 ‘옥룡설산 수생태(水生态) 보호공정 건설’인데,
구체적으로는 ‘옥룡현 백사편 수원지호수(습지군) 건설’이다.
총공사비 5억원(한화 850억 상당)을 투입하여 전후기로 나누어 99개 호수를 건설하는데,
1기는 백사상편(白沙上片) 75개 호수를 지금 만든다는 것이다.
환경오염 문제가 악화되어 만년설이 사라져가고, 여강의 중요수원지가 사(석)막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공사로, “설산-삼림-초지-습지-수면”를 보호하여 옥룡설산경구를 유지보호하려는 게 최종목표라는 것이다.
양쪽 차창 밖으로 규모는 작아 보이지만 수많은 호수가 한창 만들어지고 있다.
완성되면 또 하나의 관광지가 생겨날 것이고, 대륙답게 이렇게 드넓은 땅이 그동안 버려져있었다는 게 부럽다.
차가 오른편으로 꺾이자 왼편에 여강 시내가 아직도 멀리서 가물거린다.
옥수채는 이름과는 달리 깊은 산속이 아니라 평원의 한쪽 끝에 있는 낮은 산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옥수채(玉水寨)는 옥 같은 물이 흐르는 산마을이란 뜻을 지닌, 여강의 발원지요 동파교의 성지다.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이 이 옥수채를 거쳐 여강 시내 흑룡담으로,
다시 여강고성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이곳 4km안에 백사촌과 동파곡이 있어, 찬찬히 둘러본다면 이곳만으로도 하루코스로 충분하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회색빛 커다란 옥돌에 ‘동파교 성지 옥수채(东巴敎 圣地 玉水寨)’라는 붉은 글씨가 첫눈에 들어온다. 매표소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니 인공으로 만든 3단 폭포가 보인다.
신룡 삼첩수(神龍 三疊水)다. 여강의 발원지인 이 물을 신령스러운 용으로 보고, 세 겹의 폭포를 출룡(出龍)폭포・회룡(回龍)폭포・송룡(送龍)폭포라 부르고 있다.
물속에는 북미 원산의 냉수어종인 홍준어(虹鱒魚, 일명 三文魚)가 떼를 지어 살고 있고, 길가에 이 고급 물고기의 장점을 돌에 새겨놓았다.
‘대자연신법장(大自然神法場)’이란 돌문을 지나니, 광장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거대한 황금 대자연신(大自然神)이 많은 동물신들을 거느리고 원통형 대형 향로에서 나오는 향불연기를 쐬고 서있다. 그 옆에는 역시 커다란 오석에, 여기가 여강의 물줄기의 근원이라는 징표로 써놓은 ‘여강원(麗江源)’이란 금빛 글씨가 눈길을 끈다.
나시족의 기원설화에 의하면, 장족의 사내가 선녀와 정을 맺어 세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가 벙어리였다.
이곳에 사원을 짓고 라마신께 지성으로 기도를 드려 모두 말문을 트이게 했고, 이 아이들은 자라 나시족・장족・백족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나시족과 백족은 모두 장족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사원 본당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화합원(和合院)이 있고, “민족 화합이 나시족의 정신”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계단 옆에는 만든지 얼마 안 된 거대한 동물 신상(神像)이 또 한 줄로 나란히 서있다.
계단을 오르면 ’옥수연(玉水緣)‘이란 현판을 단 거대한 사원건물이 나온다.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는 황금탑이 우뚝하고, 양끝에는 역시 황금 신조(神鳥)가 바깥쪽을 멀리 내다보며 앉아있다. 전각 앞에는 왼쪽에 호랑이 오른쪽에 하얀 야크상이 서있다.
둘 다 붉은 천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동파교가 여러 동물과 자연을 숭배하는 원시종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사원 앞마당에는 원색의 천을 겹겹이 두른 남근 형상의 ‘천향로(天香爐)’가 우뚝 서있어,
나시족의 남근숭배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나시족 바이족 장족이 숭배하는 신상들이 모셔져 있다.
갑자기 속이 불편해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동파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용을 잡아먹는 새인 대붕신조(大鵬神鳥)를 사진에 담으려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면 여행이 제대로 될 리 없으니 슬슬 걱정이 된다.
화단의 희디흰 물매화가 청초한 모습으로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이내 옥수채 입구에 있는 ‘동파만신원’ 옆을 지난다.
들어올 때는 반대편 창가에 앉아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옥수채보다 이곳이 더 마음을 끌어당겼다.
옥수채에서 보았던 동파교의 만신(萬神)들이 드넓은 백사편과 설산을 배경으로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인류의 원시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나시족에게 남아있는지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여행이란, 특히 초행길 여행이란 늘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과 미련 때문에
더 오래 가슴에 남기도 하니까, 이쯤에서 마음을 접어야 한다.
● 흑룡담 공원 ●
이제 마지막 코스로 여강 시내에 있는 흑룡담공원으로 간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재미있다. 옥수채에서 나와 우회전하면 여강까지 드넓은 직선인데,
2차선이 모두 일방통행이고, 반대편 길은 공원 같은 숲 너머에 나 있다.
그리고 차량도 별로 없는데도 시속 40km라는 표지판이 붙어있고 운전기사도 준법운전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소한 법규위반에도 면허취소가 될 정도로 무거운 처벌이 뒤따르니
법규 위반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점은 미국과도 많이 닮았다. 여러 해 전 미국 서부관광을 1주일 할 때도 법규 위반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한적한 시골길을 너무 천천히 간다싶어 창밖을 내다보면 30마일, 50마일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될 때가 많았다.
심지어 도시 근교에서는 사람도 차도 없는 정지 신호 앞에서 미련할 정도로 성실하게 신호를 지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때의 감동은 귀국 후 석 달을 완벽하게 모범운전을 하는 신사로 만들어주었다.
그 후 조금씩 무너져 옛날 운전습관으로 돌아가다가 딱지를 한번 떼이면
또 한 1년은 준법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지금껏 반복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바로 세우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을 어찌해야 할까.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생각을 하다가 잠시 눈을 붙인 모양이다.
흑룡담공원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흑룡담은 여강고성에서 불과 2km 거리,
상산(象山) 기슭에 포근히 안겨있는 유서 깊은 여강의 대표적 명소 중의 하나다.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매화꽃이 필 때는 매화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호수 면적은 76만㎡에 달하고, 호수 위 맑은 물에 비친 옥룡설산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나, 날이 맑고 물이 차 있을 때의 일일 것이다. 오늘처럼 흐리거나 구름에 덮이면 설산은 수면에 뜨지 않을 것이고, 계절적으로 물이 말라버린 참담한 흑룡담 사진도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었다.
옥수채 가는 길에 봤던 99개 호수 만들기 공사가 여강의 다급한 실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예로부터 여강의 주요수원이 되었으며,
지금도 흑룡담을 거쳐 고성마을의 곳곳을 흘러가며 여강을 여강답게 만들고 있다.
공원에 들어서자 물이 가득 찬 호수에 녹음이 우거지고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어
카메라를 어디로 들이대어도 작품이 될 것 같다.
하얀 다리와 전각을 넣어 호수 사진을 몇 장 찍고 길을 따라 가니 산 위에 ‘해탈림(解脫林)’이라 쓰인 건물이 보인다. 이름이 특이해 눈앞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원래 16C 복국사란 절의 문루(門樓)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건축의 품격이 전아하고 여러 건축학상 특징을 많이 지닌 문화재라고 한다. 결국 집이 아니라 문이다.
올라가보지 않고 지나쳐 바로 앞에 있는 ‘동파문화연구소’의 입구를 또 사진만 찍고 나온다.
이곳은 올라가보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호수를 따라 길을 꺾으니 고풍스러운 만수정(萬壽亭)이 나온다. 정자 한편을 찻집으로 쓰는 모양인데, 메뉴판 아래 멋진 글귀가 보인다. “福如金沙江 壽比玉龍山”이라, 모든 인간의 꿈이 복을 누리며 오래 사는 것인데, 그 빗대는 말이 금사강처럼 넉넉하고 옥룡설산처럼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니,
역시 금사강과 옥룡설산은 여강인의 상징이요 자긍심이다.
서울이 한강과 북한산을 가졌듯이, 자신들을 상징할 큰 물과 큰 산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큰 산 밑에 큰 인물이 난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어려울 때 큰 산을 쳐다보며 꿋꿋한 의지를 북돋우고 큰 강을 내려다보며 슬픔을 흘려보내니, 결국 땅이 사람을 기른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얀 오공교(五孔橋)가 수면에 제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다섯 개의 아치형 교각이 수면에 비처 공교롭게도 ‘五孔’이 둥근 다섯 개 원으로 보이니,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그리고 밤에 조명을 켜면 이 다리가 물고기 모양이 되는 사진도 어느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다.
다리 주위의 나무들도 연두에서 짙푸른 초록까지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그리고 수면에 어린 나뭇잎 색깔까지
누가 찍어도 예쁜 사진이 나오는 뷰포인트다.
시간이 없어 오공교를 가로질러 건너니 호수의 반도 채 못 본 상태로 공원을 나올 수밖에 없다.
공원 밖에 나와서 공원안내도를 보니, 공원 내에는 명나라 때 지어진 오봉루와 청대의 득월루 등 고대 나시족의 건축물이 있고 동파문화박물관도 있다.
막판이 되니 보고 싶은 욕심이 현저히 떨어진 모양이다.
서둘렀으면 호수 위쪽까지 갔다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버스는 흑룡담공원을 5시 30분에 출발하여 30분 걸려 여강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강의 하늘을 날아오른 건 밤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올 때는 중경공항에서 40분이 지연되더니 지금은 무려 1시간 반을 딜레이 시킨 것이다.
운남에만 해도 공항이 있는 곳이 열군데도 넘으니, 아무리 넓은 땅이라지만 군용기까지 합치면 중국의 하늘은 완전히 거미줄을 쳐놓은 상태고, 한 곳만 삐끗해도 연쇄반응이 일어나 한두 시간 어긋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설상가상, 밤 10시 20분에 중경에 도착할 때까지 기내식도 없었고,
호텔 군소주점(君巢酒店)은 또 너무 멀어 11시가 훌쩍 넘어 투숙을 완료했다.
모두가 멘붕 상태에 빠졌다. 호텔 주위엔 편의점도 없어 짝꿍은 결국 굶고 자고, 나는 호텔 구멍가게(?)에서
컵라면 한 개와 캔 맥주 하나를 가져와 객실에서 허기를 면하려 했다.
그런데 캔을 따 한 모금 먹으니 맥주가 아니다. 그제야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니 탄산음료가 아닌가.
누가 냉장고 아래 칸은 모두 맥주라고 해서 확인도 안 하고 가져왔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일상사를 그냥 대충대충 넘기는 버릇이 또 한번 이런 낭패감을 가져다주는구나 하고 혀를 차며,
결국 먹지 못하고 세면대에 부어버렸다.
대단한 유종의 미(?)다. 모든 일이 너무 매끈하면 당연하다는 듯 쉬 잊어버린다.
8일간의 여정에서 한번쯤은 뜻밖의 일로 곤욕을 치루면 오래 기억할 수 있으니
오히려 괜찮은 일일 수도 있다고 자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막 여드렛날 아침은
7시에 기상하여 식당으로 내려가 느긋한 아침을 즐기고 호텔주위를 한 바퀴 돌며 산책했다.
세계 최대도시 시민들의 아침 풍경을 보고 싶었으나 일요일이라 바쁘게 출근하는 모습도 없고
변두리라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올 때는 공항에만 갇혀있었고 갈 때는 하룻밤을 잤지만 중경을 전혀 보지 못했듯이, 영화 ‘중경삼림’에는 중경이 나오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왕가위의 ‘중경삼림’을 보며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어야겠다.
호텔로 돌아와 쉬다가 9시 40분에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가
예정된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12시 30분에 중경을 출발해서 오후 5시에 인천공항에 내렸다는 뜻이다.
어제 일을 떠올리며, 중요한 것은 중국 비행기가 아니고 우리나라 비행기였다는 점을 꼭 밝히고 싶다.
대구로 내려오는 밤기차에 앉아 눈을 감으니 칠채운남의 길들이 환하게 일어선다.
하지만 참으로 거나한 여정이었다고,
차마고도의 조로서도(鳥路鼠道)가 구름을 덥고 돌아누우며 당분간 푹 쉬라고 한다.
금사강 물소리와 말방울소리가 귓가에 찰랑거린다.
한숨 자고나면, 길은 또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 중경공항에서 내려다 본 양자강 – 금사강이 비로소 장강이 되었다. 운남여정의 장엄한 대미다.
● 에필로그 ●
1. 이번 여행 중, 나의 준비물은 카메라와 작은 수첩 한 권이었다. 매일 호텔에 들면 첫 번째 하는 일이 그날 찍은 사진을 검색해서 지우는 일이었다. 그러고도 담아온 사진이 1,000매가 넘는다. 찍기와 지우기의 반복이 나의 여행이다. 인간은 보고 느낀 걸 모두 기록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이 여행기도 사진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벌써 가물거리는 기억을 이어주는 것도 사진이며, 현장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새삼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사진확대 기술이다. 어떤 이는 사진찍기는 현장에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들어야 하고 더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2. 수첩은 1/3이 빈 장으로 남았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단체여행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연암의 『열하일기』도 말 위에서까지도 메모를 하는 지독한 메모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메모만이 인간을 정확하게 만들 수 있고, 하늘과 자연이 들려주는 말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게 만든다.
3. 중국어 간자체 검색은 네이버나 다음의 사전을 이용하면 쉽게 해결된다는 걸 이 여행기를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네이버가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지만, 필기인식기 사용은 획이 굵게 나타나는 다음이 더 편리했다. 전에는 주로 수첩에 메모했다가 종이사전을 이용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워 포기할 때가 많았다. 이번에는 사진에 찍힌 글자를 보고 필기인식기에 쓰면 금방 뜻과 발음까지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어 큰 덕을 봤다. 웬만한 글자나 문장은 모두 쉽게 해독할 수 있었다.
4. 한 번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일이지만, 모닝콜보다 한두 시간 이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낮에는 만날 수 없는 귀한 풍광이나 사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일찍 자야하는데, 평소에 늦게 자는 올빼미형이라 역시 쉽지 않았다.
5. 운남여행은 7~9월 우기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귀띔을 해주고 싶다. 이 여행기에서도 자주 언급했듯이 고산의 정상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온돈 주고 반 머리 깎는 꼴이다. 그리고 우기에는 스콜성 비가 수시로 내리기 때문에 비옷과 접는 우산을 꼭 챙기는 게 좋을 것이다. 또 날이 들면 자외선이 강해 얼굴가리개 하나쯤 준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속내를 털어놓자면, 운남여행은 세계 3대 트레킹코스인 차마고도와 샹그릴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했지만, 이 여행기는 다녀온 후의 운남에 대한 친근감과 궁금증 때문에 씌여진 것이다. 본문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산해경의 조선(고조선)과 고구려・백제의 유민설 그리고 일제강점기 같은 시대의 굴곡에서 운남으로 흘러들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핏줄이 이곳 소수민족 속에 보석의 원석처럼 남아있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남의 남쪽 끝 다이(傣)족자치주인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부터 동쪽의 좡(壯)족・먀오(苗)족자치주인 웬산(文山)・서쪽의 다이(傣)족・징포(景颇)족자치주 더홍(德宏)・북쪽의 장(藏)족자치주인 디칭(迪庆)까지 운남 일대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인구 45만에다가 태국과 라오스 쪽으로도 많이 넘어갔다는 라후족은 끊임없이 조선독립군의 후예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어 더욱 궁금하다. 시간과 여력이 남아있기를 간절히 꿈꾸며 이 여행기를 썼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과 운남의 어느 길 위에서 조우하기를 기대하며,
짜이찌엔(再見)!!! ( ♣ )
♣♣♣ 댓글은 저 밑에 있습니다. 아무리 해봐도 여백이 줄여지지 않아 그렇습니다.
(방법 아시는 분 댓글로 한 수 지도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그 동안 올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제 짝꿍(처음 사용함)도 몽석님 여행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른 것도 많이 알게 돼
재차 답사한 기분이다네요. 윈싼핑 산삼 다들 부러워 할까봐 입 봉인했는데 늦게사 자수하는 바, 극구 사양했는데 결국 제가 먹게 됐어요.
땀 비질 흘려 골은 것 같아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 덕에 송월산님 부부와 간단히 서울 모처에서 뒤풀이했습니다.
고맙게 그동안 잘 봤고요. 다시 한번 같이 갈 수 있는 영광을 가지기를 고대하면서 再見.
대단한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여행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상님, 묵직한 감상(?) 고맙습니다.
浪 掷浮生(랑쯔푸성) 님, 그동안 애독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을 담아, 어려운 이름 처음으로 다 불러봅니다.
저 역시 중국 가는 길을 함께할 수 있도록 꿈꾸겠습니다. 그 때는 뒤풀이에 합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길, 미리 부탁드려 놓습니다.
EWSN 님, 여기까지 동참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름 잊지 않고있다가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정성들이신 후기여서 되새김질로 보고 또 봐도 질림없이,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간듯한 느낌을 받게됩니다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드디어 장문의 여행기가 막을 내렸네요. 어찌보면 실제 여행의 끝남보다 여행후기의 끝남이 더 아쉽습니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夢石님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온전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려주신 사진들 전부 복사해 저장해두었습니다. 사진들이 너무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 여행 후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생나그네님, 고맙습니다. 다음에 차 한 잔 사 주시지요. ㅎㅎ.
애니님, 참 정성드려 읽으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나! 사진 전부를 복사하시다니, 나중에 내 사진 날아가면 다시 돌려받아야 되겠습니다. ㅎㅎ.
한 달쯤 후에 복사금지를 해놓아야 겠습니다.
몽석님의 심혈이 깃든 여행기를 한두줄의 댓글로 노고에 답하려니 겸연쩍습니다.
언뜻 급한마음에 정독을 못하고 넘어가기도 했으나, 나름 꼼꼼히 보았네요.
가이드가 없어도 될듯한 많은 자료는 어떻게 모으셨는지.... 놀랍습니다.
한편으로 묶는다면 차마고도 여행의 길라잡이가 되겠네요.
과히 여행후기의 정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습니다.
그리고 댓글이 아래쪽으로 내려간것은
저의 경우 포스팅을 할때 "HTML"를 이용하는데,
"수정"을 클릭한 다음 윗칸에보면 HTML을 클릭하면 내용이 HTML형식으로 바뀝니다.
맨 끝부분으로 내려가셔서 마지막 사진에 해당하는 내용이 끝난뒤 </P>뒤로 있는
<br>등의 다른 영문으로된 것을 삭제
송월산님, 잘 지내셨습니까? "HTML"를 이용해 해결했습니다. 또 한 수 지도받았군요. 고맙습니다.
참, 본문이나 사진 사이에도 "HTML" 문자가 보여 시도해보니 줄줄이 삭제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또 전부 망가뜨릴가 겁나서 중단했습니다.
제일 위 사진 하나와 제목 밑의 여행지가 날아가버려 지금 또 수정하러 갑니다.
몽석! 이렇게 여행욕구를 다시 일깨워 주다니.... 여름내내 컴 앞에서 수고한 모습이 눈에 서~언 하네그려. 가마~이 앉아서 두어 시간만에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 고마우이.....건강하시게....신.
신공께서 납시셨군요. 입회에서 댓글까지 남기다니, 대단한 내공이오. 우리 언제 술병 하나 꿰차고 훨훨 길 위에 나서보세나. 고마우이!!!
운남이 멋있고 이렇게 좋은 곳인걸 이 여행기를 통해 절감하였습니다.
잘보았습니다. 사진도 잘 찍어시고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시니, 지난번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모처럼 들어와보니 두 분이 더 답글을 남기셨군요.
배디링님, 운남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련해집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갈수록 새록새록 그리워집니다.
찰리박님의 멋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사모님도 안녕하시지요? 늘 건강하시고, 어느 길 위에서 반갑게 조우하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