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茶馬古道)를 다녀왔다. 일전에 KBS 다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차마고도, 실크로드보다 200여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였다는 그 차마고도, 중국 서남부 윈난성[雲南省]·쓰촨성[四川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며 차와 말의 교환 길로 사용됐다는 바로 그 차마고도다.
11박 12일에 걸친 일정으로 교회 단기선교팀의 일원으로 따라 나선 여행이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평생 처음 가보는 단기선교 여행이었다. 그만큼 기대와 두려움, 설렘과 긴장이 함께 했다.
다녀오고 나서 누적된 피로와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사흘 내내 지독한 무기력증에 싸여 있었지만 돌아보니 내 생애 그 어떤 여행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 여행이었던 것 같다.
장족-나시족-묘족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현장들... 많은 것을 보고 들은 만큼 할 말도 많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우선 오고 가는 길에 만난 차마고도의 자연과 티벳 장족 마을에서의 일정 몇 자락만 사진으로 소개한다.
* * *
|
|
|
야간 침대버스 |
LAX 공항에서 인천을 경유해 중국 운남성 쿤밍까지 가는데 거의 만 24시간이 걸렸다. 최족 목적지는 티벳자치구와 인접한 운남성 불산향 투오롱 마을. 쿤밍에서 따리(大理), 리장(麗江)을 거쳐 상그리라(香格里拉)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열 몇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다. (따리, 리장은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사진의 이 버스는 쿤밍에서 샹그릴라까지 가는 야간 침대버스다. 1, 2층에 모두 28명이 탈수 있고 이불도, 베개도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퀴퀴한 냄새와 발꼬랑내가 장난이 아니다. 때로는 모기, 벼룩, 빈대까지 설친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 그다지 넓지 않아 조금만 덩치가 커도 불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우리 일행과는 달리 중국 사람들은 밤새 일어나지도 않고 잘도 간다.
저녁 8시 출발하여 이튿날 8시에 도착했으니 12시간을 꼬박 달린 셈이다. 그것도 반은 비포장길이고 꼬불고불 산길 이다. 그러니 제대로 자기를 했을까. 다행히 2명의 운전사가 밤새 교대로 운전을 하는 것은 그나마 안심이었다.
|
|
|
샹그릴라에 있는 라마불교 사원
|
샹그릴라가 무슨 호텔이름인 줄만 알았는데 중국의 지명인 줄 이번에 알았다. 香格里拉(향격리랍)이라는 딱딱한 한자말이 티벳 현지어로 이렇게 달콤한 뉘앙스의 ‘샹~그릴라’로 발음된다는 것도 역시 이번에 알았다. 뜻은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고 하던가.
샹그릴라는 운남성 적경장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에 있는 현(縣)급의 도시다. 장족은 티벳민족을 일컫는 중국말. 샹그릴라의 원래 지명은 중뎬[中甸]이었으나, 2001년 중국정부가 샹그릴라라고 공식 개명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면 자기네 것으로 끌어다 붙이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이 아닌가. 원래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에 나오는 지명이었다. 거기서 지상에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샹그릴라를 그려냈는데 중국이 아예 이곳을 그곳이라고 주장하다 완전히 지명까지 바꾸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 지역엔 티베트족(장족)·후이족·묘족 등의 소수민족이 섞여 살고 있고, 그중 티장족이 43%로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티벳 불교인 라마사원들도 많다. 사진 속의 절도 그 중의 하나다.
|
|
|
불탑 돌리기 |
티벳 불교(라마불교)는 티벳인들에게 생활 그 이상이다. (달라이라마, 오체투지 이런 것들로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해 있다). 극락왕생을 위해서는 열심히 경전을 읽어야 하는데 문맹률이 높아 일반 주민들이 경전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경전을 속에 넣은 ‘마니차’를 돌리는 것.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이렇게 큰 것까지 있다. 한 번 돌릴 때마다 한권의 경전을 읽을 것과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밤낮없이 찾아와 이렇게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린다.
|
|
|
라마승과 함께. |
이번 방문 기간은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 경축 기간이었다. 가는 길에 들렀던 동죽림사라는 라마불교 사원에도 몇백 명의 라마승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이 기간 동안 민족 소요를 우려해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티벳자치구의 수도인 라싸 일대도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출입 금지였다.)
이 사진은 먼저 소개한 샹그릴라의 사원에서 만난 라마승이다. 이 분 역시 어쩌면 임시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은 라마승일지도 모르겠다. 사원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인사를 청하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옷깃까지 여미며 기꺼이 응해주었다.
|
|
|
말도 타 보고 |
샹그릴라에서 하루 낮을 보냈다. 이유는 다음날 또 1000미터 이상을 더 올라가야 하는데 고도 3500미터인 이곳에서 소위 고산 적응 훈련(?)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대부분이 두통, 복통, 안구건조증 등의 고산증을 호소했다. 나도 연탄가스를 마신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골이 분리된 듯 했으며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숨이 가빠 헉헉 거려야 했다.
그럼에도 황금같은 시간, 그냥 보낼 수 없어 샹그릴라 대평원 구경을 나갔다. 해발 3500미터를 쉴 새 없이 올라온 이런 산악 지대에 이렇게 넓은 대평원이 펼쳐질 줄이야.
장족들이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고 있었다. 30분에 타는데 80위안. 12달러 정도 되는 돈이다. (여름이 성수기라서 이렇게 비싼 것이고 봄 가을 비수기 때는 절반 정도로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2시간을 빌려 타면 눈 덮인 설산 바로 아래까지 다녀 올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돈은 따따블이다. 하지만 30분만 타기로 하고 돈을 치렀다.
말은 조랑말 정도의 자그마한 것이고 장족 여인이 계속 말을 끌어 주었기 때문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일찍 내렸다. (사실은 말을 타지 않고 그냥 구경만 했으면 더 미안할 뻔 했다. 이게 그들의 생계였으니까.)
|
|
|
차마고도 비석 |
샹그릴라 사원 아래에 세워져 있는 차마고도 비석. 이곳이 차마고도의 한 구간이었음을 말해 주는 표지석이다. 증거확보를 위해 한 컷.
|
|
|
양쯔강 발원지 |
금사강(金沙江)이다. 이 물이 흘러 흘러 양자강이 된다. 해발 5000미터 이상의 설산에서 쏟아져 내린 눈 녹은 물이라고 하지만 강을 이루고 나면 물빛은 이렇게 흙빛이 되고 만다. 주변 산은 황량하고 강물은 황톳물이어서 온 천지가 누렇다 못해 붉고 바라다 보는 우리들 마음까지 붉어지는 것 같다.
강을 따라 지나온 길이 보인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 갈 수 있는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양반. 이보다 더 높고 험한 길을 매일 10시간씩 달렸다.
처음엔 사람만, 그 다음에 말과 함께 다니던 길이었다. 그게 차마고도였고 지금은 그 길이 우리 미니밴의 반 정도 되는 작은 차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조금 왕래가 잦은 길이면 차 두 대가 다닐 정도로 넓히고 포장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힘이라고나 할까.
|
|
|
TV에 나왔던 차마고도 현장. |
절벽 아래로 난 좁은 길, 바로 저 길이 차마고도 TV 타큐에 나왔던 바로 그 길이다. 촬영팀이 이곳에 와서 며칠이나 묵으면서 마방들을 섭외해 연출하다시피 해서 찍었다고 현지 선교사가 전해 주었다.
|
|
|
메콩강 발원지 |
해발 4000미터 산 등성이에서 내려다 본 란창강(瀾滄江). 이 물은 메콩강으로 흘러간다. 양쯔강 상류인 금사강과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천애의 절벽이라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산마루를 돌고 돌고 또 돌고 돌아 올라 갔다. 그러다 차도 사람도 지칠 무렵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내려다 보았다. 아득하다.
굴러 떨어지면 '나 지금 떨어지고 있다‘며 몇 통의 전화를 다 돌려도 될 정도로 높은 천길 낭떠러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오금이 저려 내려다 보는 것도 진땀이 나지만 그런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손으로 휴대폰까지 돌려가며 운전사는 잘도 올라간다. (중국은 아무리 오지라도 휴대폰 중계탑이 있고 어디든 펑펑 잘 터졌다.)
|
|
|
매리설산 관문. |
운남성 최고봉인 매리설산(梅里雪山)은 이곳 티벳인들에겐 가장 성스러운 산이다. 해발 6000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13개가 있고 가장 높은 곳은 6700미터쯤 된다고 한다.
일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어 장관이지만 정상을 볼 수 있는 날은 연중 손꼽을 정도. 몇해 전 일본인 등산객이 조난당한 이후 중국 정부가 등정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하염없이 가다보니 어느 순간, 매리설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티벳 불탑과 티벳양식의 성문이 인상적이다.
|
|
|
멀리 보이는 만년설. |
매리설산 전망대에 섰지만 산 봉우리는 모습을 감추고 자태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다만 7월인데도 중턱 아랫자락까지 남아 있는 만년설을 보며 산의 위용을 미루어 헤아릴 뿐이다. 구름 속 눈 덮인 최고봉을 상상하며 전망대에서 한 컷 찍었다.
|
|
|
장족들의 카드놀이 | 매리설산 전망대의 한 소매 가게 앞에서 티벳 장족 남자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냥 카드가 아니라 마작 같기도 하다. 약간의 돈을 걸고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부녀자들도 옆에서 연신 훈수를 들고 있다.
맨 앞 남자의 허리춤을 자세히 보시라. 단도가 있다. 그러고 보니 운남성 장족 자치주 기념품 가게에서 가장 많이 파는 것도 이런 칼이었다. 전통적으로 티벳 장족 남자들은 이렇게 칼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 그러다 이런 돈내기에서 혹시 흥분하여 불쑥 칼을 빼들면 어쩌나 싶었다.
|
|
|
마방. |
드디어 만났다. 차마고도 다큐를 보면서 그려보던 마방(馬幇)들이다. 차마고도를 따라 수십 마리의 말이나 야크를 이끌고 교역품을 실어 날랐던 상인들이다.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온갖 생필품을 다 싣고 다녔다고 한다.
요즘은 차마고도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로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차가 오를 수없는 산간 오지로는 이렇게 마방들이 다니고 있었다. 길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진을 찍었다.
|
|
|
목적지 투오롱 마을. |
드디어 목적지가 보인다. 운남성 성도인 쿤밍에 내려 사흘 밤낮을 달려온 끝이다. 장족 마을로 모두 16가구 14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삼각형의 뾰족한 봉우리며 , 사진엔 나오지 않지만 아래로 영화 '아바타'의 계곡 신 촬영지 모델이 됐을 법한 험한 계곡이 협곡을 이루고 있어 경치 또한 장관이다.
이 마을엔 어린이들을 위해 몇 년전 어느 선교사가 지어준 학교가 있고 지금은 한국의 영농 전문가의 도움으로 약초, 마늘 등의 특용작물 재배로 마을 소득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학교 어린이들은 이제는 소수민족을 위한 외지 기숙학교로 모두 강제 이송되어 선교사가 지어준 학교는 일반 가정집으로 변해 있었다)
국은 외국인에 의한 기독교 선교는 공식적으로 금지된 곳이어서 이곳도 드러내놓고 선교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 우리도 공안에 전원 여권을 제출하고 방문 신고를 하고 난 뒤에야 올라 올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선교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고, 실제 현지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이번 여행 기간 중 종종 장족 크리스천들을 접할 수 있었다.
|
|
|
투오롱 마을 주민들 |
낮 시간에 도착했더니 남정네와 젊은이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할머니, 아주머니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토담집 벽 아래서 해바라기를 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나타나자 일제히 일어나 반가움을 표하고 있다.
|
|
|
건강 상담 |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혈압을 재 주고 약도 나눠주고, 아이들 영양제도 나눠주었다. 언어가 달라 영어-중국어(북경어)- 현지 티벳어로 삼중 통역을 해야 했다. 어른들이 이런 일을 하는 동안 함께 간 대학생들은 마을 휴지 줍기등 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민들 대다수가 위장병, 고혈압, 피부병 등을 앓고 있었고 나이 50만 되어도 다들 할머니처럼 보였다. 가지고 간 약품과 선물을 나눠주고 일일이 안아 주고 그들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했다.
워낙 순박한 사람들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그 짧은 만남에도 그렇게 인정이 그리웠을까, 떠나올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함께 갔던 젊은 학생들도 그런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내심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
|
|
장족 남자 전통복장 |
이튿날 산을 내려와 티벳 장족 어린이 초등학교를 방문했따. 사진은 그 학교 남자 선생님들이다. 이날이 마침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이라 기념식 참석을 위해 전통 민속복장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
|
|
영어 교실 | 함께 간 대학생들이 장족 소수민족 초등학교에서 1일 영어캠프를 열었다. 3, 5학년 60명의 아이들에게 영어 발음과 ABC 노래 등을 가르치고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은 옆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면서 일일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또 가져간 즉석 프린터로 뽑아 스키커를 붙인 예쁜 액자에 넣어 주었다. 그들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자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後年再見! 내년에 또 오세요~, 그들의 또랑또랑한 작별인사가 귀에 쟁쟁하다.)
|
|
|
스티커 |
빨간 목도리를 한 여자 어린이가 나에게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이 목도리는 공산당원 자녀들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중국 공산당원은 지금 8천만명쯤 되고 13억 전 인구의 6%쯤이니까 어떤 식으로돈 엘리트라는 표시를 내고 싶어는 할 것이다.
교실에 들어서자 처음엔 맨숭맨숭 쳐다만 보던 아이들이 금세 이렇게 친해졌다. 수업은 영어로, 현지 선교사님이 중국어로 통역을 했다. 왕년에 아주 쬐꼼 중국어를 공부했던 덕에 인사 정도는 나눌 줄 아는 나도 이번 여행에서 근 20년만에 중국어 좀 써 먹었다. ^ ^
<오늘은 여기까지. 기회가 되면 다른 중국 사진도 올릴까 합니다. / 원문은 미주중앙일보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