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 가는 길] 03
1. 공항전경. 밤. 비-비 그친 새벽.
-밖. 빗소리가 요란한 공항버스정류장.
-텅빈 에스컬레이트. (비)
-비어있는 벤치. (비)
-꾸벅꾸벅 졸다가 비행시간 확인하는 어느 남자.
-비가 그친 공항주차장. 새벽.
2. 한강주변. 새벽.
서두르는 도우, 뒷좌석에 있는 백팩에서 애니의 유해상자를 연다.
그리고 소량의 유해를 손바닥에 조심조심 덜어서, 움켜쥐고 걸어간다.
차안에서 그런 도우를 바라보는 수아.
-도우, 강변으로 가서 태양을 향해 유해를 뿌린다. 흩날리는.
##1회 씬29.
애니 : 여기 꼭 한강 같지 않아. 여기 오면 한강 생각 나.
도우 : 진짜.. 한강(말하는데 울컥)
-차안의 수아. 서 있는 도우의 뒷모습을 본다.
가만히 서 있는 도우의 뒷모습.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감정 추스르고 돌아서는 도우. 도우를 죽 보고 있던 차안의 수아와 눈이 마주친다.
둘이 마주보며. (2회 엔딩)
-도우, 수아 쪽으로 걸어간다.
-차안의 수아. 걸어오는 도우를 본다. 한참 뒤에야 정신이 든 듯. 시선 45도로 돌리는.
<공 항 가 는 길>
3. 브리핑룸. 쿠알라룸푸르공항. 아침. <말레이시아>
파티션으로 나뉘어진 조종실 브리핑룸. 운행스케줄이 있는 화이트보드판 앞.
케빈과 진석이 브리핑중. (기장단 브리핑)
케빈 : 비행시간이 9시간 03분으로 나왔습니다.
진석 : (플랜지 보면서) 비행시간 많이 나왔네.
케빈 : (플랜지 넘기면서) 승객분은 만석입니다. 이륙 후 한시간 뒤 터뷸런스 가능성 있습니다.
진석 : 웨더는?
케빈 : 저희 E.T.A에 포그가 예상됩니다. 주의해서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T.A. estimated time of arrival 도착 예정 시각)
4. 비즈니스석. 기내.
(조인트 브리핑. 기장단과 승무원단이 함께 하는)
진석 : 안녕하십니까. ***편. ( )브리핑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장 박진석. 부기장 케빈 수고해주시겠습니다. (플랜지 본다) 오늘 승객은 만석.
5. 칵핏(조종실) 앞. 기내.
문자 확인하는 진석.
수아 : (문자소리) 집에 왔어요. 잘 다녀와요.
진석 : (답신 보낸 뒤 핸드폰 끊고. 가방에 넣고. 칵핏 문 연다)
6. 효은방. 수아집. 아침.
잠자고 있는 효은을 보는 수아. 드르르 진동소리에 깜짝 놀라서 문자를 본다.
진석 : (문자소리) 효은이에 관해서 매뉴얼 보낼 예정.
수아 : 매뉴얼...?
7. 주방. 수아집. 아침.
-설거지 잔뜩 쌓여있는데, 그 아래 그냥 앉아있는 수아.
#차안. (씬1. 수아 시점에서 보이는 도우)
유해를 뿌리고 수아 쪽으로 걸어오는 도우.
수아, 벌떡 일어나 설거지 한다.
8. 길. 아침.
운전중인 도우.
9. 도우집 앞. 아침.
기다리고 있는 석. 도우가 오자 손 흔든다.
차가 서자.
석 : 트렁크 열어. 어서!
도우 : (트렁크 연다) 기다린 거야?
석 : 그럼. 우리 은우.. 삼촌이 밤새 기다렸다. (트렁크 보더니) 짐두 챙겨왔어?
도우 : 누가.. 챙겨줬어.
석 : 이렇게 고마울 수가! 거기 주인?
#2회 씬72.
트렁크 끌고 급하게 오던 수아 모습. (도우 시점)
도우 : 있어.
10. 안방 앞. 도우집. 아침.
침실문을 여는 도우. 자고 있는 혜원을 본다.
#(씬1. 도우 시점에서 보이는 수아)
차 쪽으로 걸어가는 도우. 차장 너머 보조석에 앉아있는 수아를 뚫어져라 보며.
수아가 살짝 시선 돌려도 계속 본다.
침대에 앉아있는 도우. 그런 도우를 느끼고 뒤에서 안는 혜원.
혜원, 도우의 등에 키스하자.
도우 : 씻구. 밤새 그대루야.
혜원 : 응.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문을 여는 도우.
11. 욕실. 도우집. 아침.
세면대 앞. 도우,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다.
12. 차안. 길 위. (방금 전)
아까와는 달리 아무 말 없이 달리기만 하는 둘. 음악도 없다.
13. 수아아파트 앞. 아침. (방금 전)
멈추는 차.
도우 : (수아가 내리는 것을 본다)
수아 :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이박삼일 비행 다녀온 기분인데요.
도우 : 봐도 돼요?
수아 : ...
도우 : 편하게요.
수아 : (괜히) 아..효은이랑...
도우 : 또 봐요.
수아 : (쿵)
14. 그리고 둘. 아침.
-거실. 바닥에 앉은 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는 수아. 멍하니.
-마당에 젖은 우산을 펴놓는 도우. 골똘히 우산을 본다.
15. 은희방 앞. 고택. 아침.
문을 조금 열어보는 도우. 은희가 누워있다. 그 옆으로 링겔걸이가 보이고.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분골함을 덮을 수 있는 예쁜 덮개가 세워져있다.
문을 닫는다.
마룻바닥에 요 깔고 누워있던 석. 이부자리 개키며.
석 : 너 가구 밤새 만드시더니 완성하자마자 그냥 쓰러지셨어.
도우 : (표정)
은희 : (소리) 도우 왔니?
도우 : 네. (문 연다)
은희 : (누운 채로. 고개만 돌리고) 잘 가져왔고?
도우 : 네.
은희 : 석이한테 들었어. 고마우신 분이 애니물건 챙겨주셨다구.
도우 : ...네..
은희 : 고맙기도 하지.
도우 : (뭔가 골똘히 생각)
은희 : (그런 도우를 본다) 쉬어라.
도우 : (계속 생각)
16. 거실. 도우집. 아침.
주방으로 가던 혜원. 마당에 놓여있는 우산을 본다. 고개 갸웃.
17. 주방. 도우집. 아침.
도우, 스크램블해서 접시에 담고 오븐에서 구운 감자, 야채, 빵을 꺼낸다.
혜원, 그 옆에서 샐러드 만들고 커피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혜원을 일부러 툭툭 건드리는 도우.
혜원 : ...나 괜찮아.
도우 : ...
혜원 : 이성 잃구. 난리 치구. 나한테 완전 실망했겠다.
도우 : ...그렇게 생각 안해.
혜원 : 한 템포 쉬고 말하네? 서도우 호불호 명확한데. 일이초 뜸들이다 말하는 거면...
도우 : (그럼. 괜히 장난스럽게) 실망했나?
혜원 : (간 본건데. 저렇게 나오니까 덜컥) 당신이나 맘 변하지마..
도우 : (본다)
혜원 : 당신이 사랑했던 나. ‘좋은 엄마’도 그 이유 중 하나였잖아.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도우 : 그런 생각을 왜 해.
혜원 : 알았어. 앞으룬 안할게. 당신 믿어.
도우 : (먹는다)
혜원 : (한층 밝게) 비 왔었어? 마당에 우산 있더라. 젖은 우산.
도우 : 여긴 안 왔나?
혜원 : 응.
도우 : (본다. 잠시 딴 생각. 하지만 이내 자리 잡고)
혜원 : (커피 따라준다) 서울두 좁은 듯 넓어.
도우 : (끄덕. 커피 마신다. 혜원 본다)
혜원 : (커피 마시다가) 아.. (이런 이런) 갔다 왔구나.
도우 : ...
혜원 :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다른 지역에 비가 왔구나.. 가령, 인천? (자리에서 일어난다)
18. 서재. 도우집. 아침.
들어오는 혜원. 책상 아래에 도우의 백팩을 발견, 의자에 올려서 열어본다. 상자다.
떨리는 손으로 얼른 백팩을 닫는다. 그리고. 아래에 보이는 커다란 캐리어.
열어본다. 잡다한 애니물건들. 놀라서 보는 혜원, 미친 듯이 뒤진다.
도우 : 혜원아.
혜원 : (뒤지다 만다)
도우 : 어머님이랑 약속한 거야.
혜원 : ..그럼, 이 물건들은 뭐야.
도우 : 남길 건 남기고. 납골당에 둘 건 두고.
혜원 : 다 버려.
도우 : ?
혜원 : 당신. 나랑 이거 하나하나 쓰다듬고 일기라도 나오면 한장 한장 읽으면서 이건 두고. 이건 버리고. 그런 대화하자구?
그러다가 엄마 원망하는 글이라도 나오면? 낙서라도 나오면? ....나. 애니 혼자 키우면서 그렇게 좋은 엄마 아니었어.
갓 스물 넘어서 애 엄마 되구. 혼자 낳구 키우구. 공부하랴 돈 벌랴. 애 키우랴. 바둥거리구!
아빠한테 몇 번이나 보내려구 그 집 앞서 손 놓았다가 다시 끌구 오구. 그때마다 걔나 나나 울구불구.
19. 거실. 도우집. 아침.
듣고 있는 은희와 석.
혜원 : (소리) 원망하는 낙서라두 나오면 나보구... 어떻게 살라는 거냐구... 데려왔잖아. 거기까지만 하자...
당신하구. 나. 이런 사이 아니었잖아. 제발... 소리 지르는 일 이제... 그만...
듣던 은희, 자리 뜬다. 석이도 따라간다.
20. 서재. 도우집. 아침.
혜원 : (말하다 말구) 다 치워줘. 부탁이야.
도우 : (다 듣고. 단호) 한가지. 확실하게 해. 당신은 애니를 키웠고. 친부는 애니를 버렸고. 그거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딸한테 할 거 다 한거야. 원망했었을 수도 있겠지.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지만... 딸인데, 그럴 수 있어.
행여 걔가 그랬어도, 당신은 잘못 없어.
혜원 : ...
도우 :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더 잘 알아. 이젠 죄책감 운운하지마. 그런 거, 없어. 가질 필요도 없구.
혜원 : ...
도우 : (애니 짐들을 본다. 흐트러져있는 액자며 노트) 내가 알아서 치울게.
혜원 : (힘없이) 둬... 나 혼자... 찬찬히 보게..
도우 : ...
혜원 : 자꾸 언성 높이구 악 쓰구. (얼굴 감싸며) 나 왜 이러냐..
21. 복도. 인천공항. 낮.
<승무원교육실>이라고 쓰인 방에서 나오는 미진.
다가오는 승무원1과 승무원2, 미진에게 인사한다. 인사하고 각자 방향으로 가는데,
‘최수아선배’라는 말에 미진 멈춰 선다.
승1 : 박기장님 잠옷도 다린대.
승2 : 남자 속옷 다리면 바람 핀다던데.
승1 : 그러니 다리미내조지. 헛물 내조. 큭큭큭.
22. 거실. 수아집/ 복도. 인천공항. 낮.
-수아, (말레이시아에서 가져온) 효은이 물건들 꺼내다가 핸드폰이 울리자, 받는다.
-미진, 복도 걸으며
미진 : (E) 다리미녀.
수아 : 뭔 소리야.
미진 : 너 다리미녀래.
수아 : 다리...미녀? 내 다리가 쫌 되긴 하지.
미진 : (E) 다리미. (쉬고) 녀.
수아 : (아..생각났다) 신들이 났네.
미진 : (담담) 다리미로 호텔베개도 다려서 잔다. 다리미를 베고 잔다. 다리미로 옆에서 자는 남편 찍는다. 흉흉하다.
무식하게 다리미를 왜 가방에 넣구 다니니.
수아 : 이유는 안돌아? (거실로 나간다) 서도우 딸. 사고 난 거 맞았어.
미진 : (놀람) 말두 안돼.
수아 : 끔찍하지. (부엌으로 가서 정수기에 컵 놓고 물 내린다) 그 다리미 서도우 딸 꺼야. 가니까 막 처분하려고 하더라구.
미진 : 서도우 어떡하냐... 애아빠라서 기절했는데... 애가.. 어떡해. 간만에 서도우 보고 위로라도 해줘야겠다.
너 서도우 못 봤지? 다리미 잘 둬라. 그거 주면서 보든가..
수아 : 이미 봤어.
미진 : (톤 절대 안 높이는 애가 톤 올라가며) 어떻게! 언제!
수아 : 그게. (부엌 쪽창 커튼을 젖힌다. 햇살) 공항. 비. 새벽. ..겨우 몇 시간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다.
23. 효은방. 수아집. 낮.
책들은 책상 위에 꽂고. 옷은 옷장 서랍에 개어놓고.
효은 짐 정리중인 수아. 효은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가방에서 구슬이 박힌 전통문양의 소지품상자를 발견. 열어보니, 애니와 효은이의 사진. 그리고 애니의 독사진들.
#강변 앞에서 유해를 뿌렸던 서도우의 뒷모습.
-사진을 한장 한장 핸드폰으로 찍는 수아.
24. 납골당. 낮.
도우, 석이가 정성껏 만든 상자에, 어머니가 만들어준 덮개를 씌우고. 애니의 어린 사진도 놓고.
뭔가 허전하다.
-주차장> 차 앞에서 도우. 문자 확인한다. 사진들이 올라와있다.
수아 : (문자소리) 사진이 있어 보냅니다.
도우 : (답장 보낸다. 문자소리) 혹시 제가 보입니까?
25. 근처 문구점. 낮.
핸드폰과 연결된 인화기. 애니의 독사진이 나온다.
도우, 흐뭇.
도우 : (문자소리) 어디서 뭘루 헤매는지 보이나봐요. 필요한 걸 보내주시게.
26. 마트. 낮.
-정육점 주인에게.
수아 : 삼겹살. 600그람. (주인이 한 덩이 보여주자) 비계는 좀 떼구 썰어줘요. 너무 두툼하게 말구.
수아 : (문자소리) 예쁜 사진이 많더라구요.
-상추 등등 야채를 고르는 수아.
-납골당. 애니의 활짝 웃고 있는 최근 사진이 놓여있다.
도우 : (문자소리) 마침 필요했습니다. 고마워요.
27. 주방. 수아집. 오후.
효은 : (샤워하고 머리 털면서) 내일부터 학교 가는 거 맞지?
수아 : (삼겹살 구우며) 아. 맞다. 매뉴얼. 아빠가 다 해놨댔는데.
효은 : 나 다니던 학교겠지?
수아 : 그렇겠지. 이 동네야 빤하니까.
효은 : (노래) 삼겹살이겹살이. 겹살이겹살이.
수아 : 머리 말리구 와. 냄새 배.
효은 : (머리 말리러 방으로 가서 드라이) 내 걱정은 하지두 마. 울 학교에 모르는 애들 하나두 없어.
알아서 갔다가 알아서 밥 먹구 다 해.
수아 : (굽는다)
효은 : 제아 삼촌 언제 온대?
28. 운동장. 오후.
효은이 혼자 공차면서 드리블 연습중.
제아 : (감탄) 진짜네 진짜.
수아 : 공차기가 거기서 거기지. 선수할 것도 아닌데.
제아 : 누나, 저건 공차기가 아니야. 드리블이지. (뿌듯) 역시. 외탁이야 외탁!
(자기 허벅지 찰싹 치면서) 찰진 허벅지! 바탕이 되니까. 어후~ 걸스 빠워.
효은 : (보고 있는 엄마와 삼촌 의식해서 더 멋진 폼으로. 온몸을 날려가며 일인 축구하는 중)
수아 : 쟤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핑크공주였다는 거 아니니. 핑크 아니면 안 입었잖아. 발레에 목숨 걸고.
축구도 저러다 말거다.
제아 : 자식들은 배신의 연속이야. 나 봐.
수아 : 엄마 살아계셨을 때, 너 이만큼만 열심히 살았어도 얼마나 좋았어.
제아 : 누난 또.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니까! 그 믿음으루 완전 열심 사는데.
수아 : (상기하자) 엄마가 효은이 얼마나 이뻐했니. 효은이 봐주는 모습 보심 너, 기특해 하실 거야.
제아 : 해줄게. 뭐가 문제야. 하나밖에 없는 조칸데.
수아 : (과연 그럴까? 하지만) 믿는다.
제아 : (돌변) 일당 오만오천원. 오천원은 교통비. 여까지 오는데 전철에 버스에 한 시간이야. 선불루.
수아 : (니가 그럼 그렇지) 축구레슨도 포함. 모레부터 당장.
제아 : 오케이! (코치처럼 버럭) 효은아 거기서부터 달려야지! 그렇지! (효은한테 간다)
29. 전시실. 도우집. 오후.
여러 문양의 매듭작품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사이를 화난 듯 지나다니는 영숙.
영숙 :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네. (나름 품위 있게) 여기요. 여기!
경숙 : (나오면서) 네.
영숙 : 아니. 갑자기 강의가 왜 없어요?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마다 했잖아.
경숙 : 정해진 스케줄은 없어요. 선생님께서 사람들 있음, 그냥 해주시는 건데.
영숙 : 그냥, 자기 맘대루?
경숙 : 무료로, 그때그때 해주셨던 겁니다.
영숙 : 무료면, 그냥 막 해두 되나?
경숙 : (이 할머니 뭐야) 제가 매듭 강의하는 곳 알려드릴까요? 수강료 내면, 약속 지켜서 하는 곳 많아요.
영숙 : 돈 내구 이걸 받으라구?
경숙 : (아니 이 할머니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혜원 : (옆에서 듣고 있다가. 자상) 여기 선생님 인간문화재세요. 사회 환원 차원에서 관심 보이시는 분들, 가르쳐주셨던 겁니다.
‘강의’가 아니라 ‘체험’이요.
영숙 : (어이없다는) 이봐요. 나도 나름 품위 생각하는 사람이라 우리 전통예술 아낍니다.
근데 이건 아니잖아. 문화재도 삼시 세끼 밥 먹잖아. 정해놓고 하셔야죠. 당연히 사회를 위해 봉사하셔야 하고.
혜원 : 세상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선의’로 하신 겁니다.
영숙 : (혜원 훑어보니 뭔가 있어 보인다. 마침 전화가 온다. 급한 듯 돌아서 나가면서) 바쁜 사람 시간 쪼개 왔더만!
경숙 : (나가는 거 확인하고) 그냥 해주시는 건데, 걸 제때 안 해준다고 따지는 건 뭐래요?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혜원 : 거저 주니까 귀한 줄 모르지.
30. 중문. 도우집. 오후.
영숙 : (통화중) 박기장. 음 시드니 잘 도착했다구? 걸 뭐 새삼스럽게 보고를 하고(하고 듣다가. 정색) 뭐? (휘청)
31. 운동장. 늦은 오후.
축구하는 둘을 보는 수아. 핸드폰이 온다. 모르는 번호다.
수아 : 여보세요...
남자 : (E) 504호 사모님이시죠!
수아 : 네....
남자 : (E) 오시면 옮길려구 했는데. 기다리다가 저희 먼저 출발합니다.
수아 : ?
32. 수아아파트 앞. 늦은 오후.
달려가는 수아와 효은.
수아, 짐 실은 용달차가 출발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효은 : 엄마 저거 저거 내 책상! 저거! (쫓아간다)
무작정 용달차를 쫓는 효은.
멀거니 보던 수아, 전화를 건다.
수아 : 박기장님. 이건(하는데)
진석 : (E) 일단은 효은이랑 자네 짐만 옮겼어. 어머니댁으루 들어가.
수아 : (어이없다) 왜? 아니 왜!
진석 : (E) 매뉴얼 확인해보랬지. 장모님 돌아가신 뒤에 뉴질랜드 사태에, 말레이시아 소동에.
악순환 막으려면 일단 어머니 도움 필요해.
수아 : 상의만 했어두 됐잖아요!
진석 : (E) 자넨 나하고 상의하고 효은이 데려왔나? 어머니 설득한 거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수아 : (말문이 막혀서. 효은이 멀어지는 것 보고. 버럭) 효은아! 가지마!
멈춰 선 효은, 엉엉 운다.
수아, 돌아버리겠다.
수아 : 효은이 바꿀게요. 뭐라고 설명이라도 좀..
진석 : (E) 바빠.
수아 : 맥주 마시잖아!
33. 맥주집. 시드니. 저녁.
작고 좁은 맥주바. 맨 끝 구석 4인용 테이블에 앉아있는 진석. 맥주잔 허공에 들고 있다.
진석 : (핸드폰을 끊으며. 혼잣말) 이렇게 명쾌하게 결론내주는 남편 있음 나와보라구 해... (맥주 한잔 들이켠다)
34. 전철 안. 늦은 오후.
달리는 전철 안. 한강이 보인다. 비온 다음이라 반짝반짝 거리는.
(울다가 지쳐) 앉아서 자는 효은 보이고.
수아 : (중얼중얼 한강 보며)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하나두 모르겠어요. 뭔가 한꺼번에 우루루루쾅쾅.
이게 뭐죠? 묻고 싶어요. (불쑥 부른다) 서도우... (뱉어놓고 더 놀란다. 누가 들었나? 둘러본다)
35. 서재. 도우집. 늦은 오후.
트렁크를 여는 혜원. 긴장한 듯 내용물을 하나 하나 본다.
액자들(애니 책상 위에 있던 도우가 찍어줬던 서울 풍경들)은 오른쪽에 둔다.
노트가 나온다. 한장 한장 꼼꼼히 보다가 후루루룩 넘기다가 왼쪽에 둔다.
다리미가 나온다. 들어서 왼쪽에 두려다가 오른쪽. 쓰던 자잘한 학용품들은 다 왼쪽으로.
(물건들은 대충. 노트는 꼼꼼하게 보는 혜원)
36. 효은방. 영숙집. 늦은 오후.
효은 침대부터 책상까지 그대로 다 옮겨 놨다.
깡충깡충 뛰는 효은.
효은 : (좋단다) 여기 다 있어! 엄마 여기 다 있어!
수아 : (힘없이 미소) 다행이네. (돌아보면)
영숙 : (소파에 앉아. 팔짱 끼고 고개 숙이고. 입 꽉 다물고)
37. 거실. 영숙집. 늦은 오후.
소파에 앉아 창밖만 뚫어지게 보는 영숙. 수아가 ‘저 어머님’ 하고 말을 붙이려고 하자, 손으로 막는다.
영숙 : 너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두 필요하다.
수아 : ...
영숙 : 감정 좀 추스르고 다시 얘기하자. (휴우~ 바르르 떨리는 긴 한숨)
수아 : (뭐라 말도 못하고. 어디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앉아야 할지. 주방으로 갈지)
영숙 : 정신 사나우니까...
수아 : 급하게 와서... 제가 뭘..
영숙 : (대답도 귀찮다. 나가~ 손짓)
38. 영숙집 앞. 늦은 오후.
나가래서 일단 나온 수아. 어딜 가나. 핸드폰을 든다. 목록을 보다가. 애니아빠를 본다.
39. 1층. 수아아파트. 저녁.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수아.
미진집 현관문이 열린다. 추리닝차림에 안경 쓴 미진, 쓰레기 버리러 나오다가 수아 보고 깜짝 놀란다.
40. 거실. 미진집. 저녁.
소파에 쓰러져있는 수아.
반은 안쓰럽게, 반은 귀찮다는 듯이 보는 미진.
수아 : 어머님이 (영숙 흉내. 나가~ 손짓) 이러는데 갈 데가 있어야지. 그냥 이러다 갈게. 그런 눈으로 보지마...
미진 : 불쌍한 거 반. 나 귀찮은 거 반. 간만에 나가 놀지도 않고 집에서 푹 쉬려구 했더만.
수아 : (피식) 너도 그런데. 평생 남편 자식 뒤치다꺼리하다 이제 좀 조용히 혼자 계시려는 울 시어머니 맘은 어떻겠냐... 뭔 죄야.
미진 : 일하는 엄마들은 다 너같애? 뭐가 그렇게 힘들어?
수아 : 설마 나만 이럴까. (핸드폰 보며) 효은이한테 전화하랬는데. (박기장 번호 누른다. 스피커폰) 했는지 모르겠네.
미진 : 야. 스피커 꺼. 부부대화 라이브루 들으면 결혼 더 하기 싫어져!
수아 : 알았어 알았어. (하는데)
주현 : (E) 여보세요!
수아.미진 : ?!(웬 여자음성?)
주현 : (E) 최선배님! 오해 마십쇼. 여기 야.. 니들.. (니들이라고는 했지만 한명정도 다른 여자 목소리 ‘안녕하세요~’ 한다)
박기장님께서 핸드폰 놓고 잠깐 나가신 거 같은데.. 어디 가셨지? 저희 회식중입니다.
수아 : (스피커폰 끄고 얼른 받으며) 안녕하세요. (부사무장톤) 네... 아. 아녜요. 오해 안 해요. 네. 수고해요. (끊는다)
미진 : 저것들 지금 키득 거렸냐?
수아 : 그랬나? (몰라)
41. 맥주집. 시드니. 저녁.
진석이 앉았던 자리의 혜진과 주현.
혜진 : 회식은 무슨 회식? (맥주 마신다)
주현 : (킥킥) 그럼 뭐라 그래.
혜진 : 그러게 왜 전활 받아? 너 왜 자꾸 웃어?
주현 : (킥킥)
42. 거실. 미진집. 저녁.
미진 : (호들갑 떨지 않고) 진짜 오해 안 해?
수아 : 이런 거 가지구 오해하면 난 창훈 선배랑 차 한 잔도 못하겠다.
미진 : (자리 잡고 앉아서) 그럼, 한번 정해보자. 넌 어디까지가 괜찮은 거야? 시드니 맥주집이라 치고.
수아 : (끄덕끄덕) 거기야 맞아. 잘 아네.
미진 : (말해놓고. 아차. 하지만 넘어간다) 거기서 마시고 얘기하고. 괜찮다?
수아 : 응.
미진 : 호텔서는?
수아 : 우리 호텔 밥 먹듯이 가잖아. 회의두 많이 하구.
미진 : 한두 시간은 괜찮다? 우리한텐 사무실 수준이니까.
수아 : 한두 시간 정도는 뭐..
미진 : 밤새면?
수아 : 건 얘기가 다르지.
미진 : 그 정돈 오해할 만하냐?
수아 : 그게(하다가)
#새벽. 공항.
벤치에 앉아 얘기하던 자신과 도우.
수아 : 로비나... 다른 데선... 사정상 얘기가 길어질 수 있지 않을까.
미진 : 룸에서 한두 시간은 되고. 밤새는 안 되고. 룸 외에는 밤을 새든 말든 다~ 된다.
(비아냥) 박진석, 대단한 와이프랑 산다. 네 무덤덤한 성격이 이럴 때 엄한 빛을 발하네?
수아 : 추측 가지구 사네 마네 하면 벌써 다 찢어졌지. (살짝 자조적)
미진 : (쟤 뭐 아나?) 니네 뭐야. 박진석 누구 있지.
수아 : ...없어. 니가 보고 들었음 말해주구.
미진 : (살짝 당혹) 들은 게 어딨어!
수아 : (그냥 씁쓸히)
43. 현관 앞. 동아파트. 저녁.
미진집에서 나오는 수아. 곧장 현관으로.
미진 : 니네 집 간다며?
수아 : 다음에... 짐 마저 챙겨와야 되는데... 힘이 하나두 없다. (나가려는데)
미진 : (걱정스럽게 본다) 야! 박진석 엄한 짓 안 해. 철없는 어린애들이 카리스마 있네 없네... 호기심 갖는 거 같은데.
와이프 넌 줄 다 알아. 말도 잘 못 붙여.
수아 : (돌아보더니) 내가 그렇게 멋진 남자랑 사는 거야? 상기시켜줘서 고맙다~
미진 : 재수 없어. 가!
수아 : (손 흔들며 간다)
44. 맥주집. 시드니. 밤.
혜진 : (빈 병 내려놓으며) 빨리 마셔. 밤 되니까 무서워.
주현 : (내심 문 보며 기다린다)
허겁지겁 가게로 들어오는 진석. 카운터에 가서. 주인에게 핸드폰 잃어버린 얘기하려는데,
주현 : (방긋. 손 흔든다)
진석 : (어쭈... 자연스럽게 자리로)
주현 : 기장님 여기 자주 오시나봐요?
혜진 : (바짝 긴장. 일어나서 주춤 주춤 인사)
진석 : (난처. 하지만 최대한 나이스하게 그저 미소)
주현 : 제가 우연히 이걸 주웠지 뭡니까? (하고 진석 핸드폰을 흔들흔들)
진석 : 고마워요. (받아든다)
주현 : (친근) 근데 어쩌죠. 제가 실수로 전화를 받았는데. 아니 누구 핸드폰인지 모르겠잖아요. 근데..
혜진 : (얘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굴지? 주현 본다)
진석 : (통화목록 이미 봤다) 와이프네.
주현 : 제가 실수한건 아니죠?
진석 : 와이프 누군지는 알죠?
주현 : (웃으며) 그럼요. (동시에)
혜진 : (긴장) 그럼요.
진석 : (못 박듯) 그럼 됐어요.
주현 : 시간 되시면 합석하셔두 되는데.
진석 : 내가 낄 자린 아닌 거 같고. (핸드폰 흔들) 답례로 내가 계산할게요.
주현 : (나가는 진석 보다가. 바로 핸드폰에 다다다다다 문자)
진석 : (계산대 앞으로 간다. 문자가 온다)
주현 : (문자소리)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진석 : (계산하고 바로 나간다.)
주현 : (핸드폰을 본다. 답장이 없다. 슬슬 열 받는다)
혜진 : 너 왜 친한 척이야. 난 기장님 가까이서 보니까 무서워 죽겠던데.
주현 : 친하니까.
혜진 : ?
45. 진석방/ 주현방. 호텔. 시드니. 밤.
-테이블 위에 놓여진 핸드폰. 드르륵. 드르륵. 문자가 온다.
가운 입고 편하게 쉬던 진석. 문자 쓱 눈으로 보고는 확인 안한다.
주현 : (문자소리) 뭐가 잘못된 건지 진심 궁금해서 그럽니다. 비행 첫날 우연히 봤고.
-2인실.
화장대 앞에서 화장 지우고 있는 혜진.
주현, 등 돌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열심히 문자 보낸다.
#45-1. 맥주집. 저녁. (회상)
들어가는 주현. 오른쪽을 보니 진석이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다.
진석 : (뚫어지게 주현 본다)
주현 : (진석 보고 목례)
진석 : (똑똑똑. 테이블 두드린다)
주현 : (저게 뭐지? 진석 쪽으로 간다) 기장님.. 뭐 하실 말씀이라두?
진석 : (미소) 나 바라봤잖아요.
주현 : 보시길래 봤는데. (웃는다)
진석 : 보길래 봤는데. 미안해요.
주현 : (웃으며) 저 시드니가 처음인데. (슬쩍 앞자리에 앉는다)
진석 : (미소)
주현 : (문자소리) 그날 밤 분위기 좋게 얘기 나눴고.
#45-2. 객실(진석방). (회상)
소파에 약간 떨어져 앉은 둘. 맥주 마시며 웃고 떠든다.
진석이 냉장고 쪽으로 가면, 주현이 고개 갸웃. 하지만 좋은.
맥주 더 가져온 진석. 가깝게 주현 옆에 앉는다.
주현 : (문자소리) 그 다음날도.
#45-3. 객실. 다음날밤. (회상)
정말 얘기만 하는 둘. 진지하게 경청하기도 하고 때론 웃으며. 분위기 좋다.
주현 : (문자소리) 물론 승무원으로서의 제 고충과 전망, 사회생활의 장단점 등 심도 있는 얘기도 나눴지만
주현 : 기장님은 늘 이 방이세요?
진석 : 이 방이 집보다 편해. 여기가 집인지 집이 일하는 덴지. 가끔 헷갈려요. (피식)
주현 : (문자소리) 기장님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꽤 깊게 얘기해주셔서 전 기장님을 더 잘 알게 되었구요.
#2회 씬16.
주현 시점에서 건너편 진석의 모습. 전화 받지 않고 차갑게 주현을 보는. (전씬과 완전 다른 사람처럼)
주현 : (문자소리)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명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2인실.
답신이 없는 것을 확인한 주현. 핸드폰 던져버린다.
-진석방.
쿨쿨 잠만 잘 자는 진석.
46. 주방. 도우집. 밤.
식탁 위에 상자를 올리는 혜원.
혜원 : 당신이 갖고 있든가....
도우, 열어본다. 액자와 다리미. (혜원이 정리했을 때 오른쪽에 뒀던 것들이다)
혜원 : 나머진 내가... 알아서 했어.
도우 : ..
혜원 : 애니는 데려왔고. 애니 물건들은 나누고.
도우 : ..
혜원 :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좋은 딸은... 확실하잖아. 그렇게 묻고, 잊고 살테니까. 노력하자.
도우 : ...
혜원 : (갑자기) 우리 여행갈까? 며칠 그냥 단 둘만.
도우 : (혜원의 모든 것이 어색하다. 하지만) 스케줄 돼?
혜원 : 알아봐야지.
도우 : (그래...가 안 나온다)
혜원 : (미소)
47. 1층 가게. 밤.
가게문 닫으려는데. 도우의 차가 선다.
현우 : 쟨, 닫으려니까 와.
도우 : 벌써 닫게?
현우 : (다시 문 연다) 오늘은 일찍 닫으려구 했지.
도우 : (멈칫) .....오늘 새벽이었네..
#새벽.
유해를 뿌리고 돌아서는 도우. 차안의 수아를 본다.
현우 : ?
도우 : ...열두시간이 지난 건데. 계절 하나가 훅 간 기분이다.
48. 아파트입구. 영숙집. 밤.
수아, 계단을 오르다
#씬13.
수아를 데려다주는 도우.
수아 :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이박삼일 비행 다녀온 기분인데요.
수아 :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난건데... 뭐가 이렇게 스펙타클하냐..
49. 영숙집/ 작업실. 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수아.
-작업실. 도우 맥주 마시며 애니방에 있던 사진들을 죽 본다(갖다 놨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둘의 하루가 끝난다. F.O
50. 진석방. 호텔. 시드니. 새벽.
거울 앞에서 기장복 다듬는 진석.
진석 : 대화를 했지. 이런 저런 대화. 좀 친근하게 대화하고 나면 이 남자를 가진 것 마냥 아침에 커피 들구 오는 여자.
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 여자에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 내가 뭐... 실수 했습니까?
주현 : (뭔가 억울한데 딱히 대꾸할 수는 없고)
진석 : 내 와이프 후배(강조)라 여기서 끝내는 겁니다.
주현 : (고개 조아린다)
진석 : (모자 눌러쓰고) 사람들 눈도 있으니 5분 뒤에 나와요. (현관문 앞으로)
진석이 거울 앞에서 사라진 뒤. 거울에 비치는 주현의 모습. 양손에 커피 들고 있다.
부들부들 떨면서 양손에 든 커피 쓰레기통에 쑤셔 박는다.
51. 복도. 호텔. 시드니. 새벽.
진석, 나오자마자 옆방에서 나오는 케빈. 케빈이 인사하자, 받는 둥 마는 둥.
그 뒤로 승무원들이 “기장님 나오셨어요”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진석의 ‘먼저 타라’는 매너손. 모두들 탄 뒤, 진석 마지막에 탄다.
52. 은희방. 고택. 아침.
‘보’(보자기)를 내미는 고은희 여사.
은희 : 이거 애니 물건 잘 챙겨준 분께 전해줘요.
도우 : (보기만 한다)
은희 : 왜요?
도우 : ..아니에요.
은희 : (직감이) 혜원이 모르게 전해줘요. 그래도 됩니다. (미소)
도우 : ...
은희 : (보를 한지봉투에 잘 넣고, 끈으로 매듭을 지어서 봉투를 묶는다. 힘이 드시는지 쉬엄쉬엄. 봉투를 종이가방에 넣어서)
사람과 사람은 정성스럽게 이어져있어요. 한 올 한 올. 사람이 드나드는 덴 다 이유가 있어요. 인연이라는 건 소중한 겁니다.
도우 : (속이 읽힌 듯 고여사를 본다)
53. 거실. 영숙집. 아침.
수아 : (핸드폰으로 메일 열어서 보며) 진석씨가 보낸 매뉴얼에 따르면, 6개월간 시댁에 머무르며 기본부터 다시 점검한다.
영숙 : (기가 차다)
수아 : 효은이 인근 학교에 전학(놀란다) 근처 학교로 전학...했다네요?
영숙 : (헉) 내가 저혈압이라 아침에 사우나도 못 가는데.. ...아고아고 혈압아. (뒷목 잡고)
54. 효은학교 앞. 아침.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효은, 불안한지 계속 수아 쪽을 본다.
효은이 들어갈 때까지 서 있는 수아. ‘괜찮아’ 말해주면서.
효은이 들어간 뒤. 어느 여자(현주)의 뜨거운 시선이.
수아 : (누구지? 고개 갸웃)
현주 : (수아 빤히 보더니 꺄르르)
#날씬한 실루엣의 승무원. (과거 현주)
현주 : (E) 최수아! 그만큼만 해. 잘하네! 꺄르르.
수아 : 현주언니?
55. 카페. 낮.
주방에서 와플, 커피 가지고 나오는 현주. 둘이 마주앉는다.
수아 : (현주 몸 스캔)
현주 : (앉자마자 생크림에 와플 적셔서 한입 먹더니) 뭐.
수아 : 예전에 언니 몸매 끝내줬는데.
현주 : 승무원 때 몸무게 조마조마했던 거 진저리 나. 마흔여덟까지 이러구 살거야.
수아 : 웬 마흔여덟?
현주 : 오십부터 갱년기 오면 급 우울해질 거 아냐. 그 전에 심신을 만들어놓고. (먹으며) 난 아침만 되면 단게 땡겨.
애들 셋 여기저기 보내고 나면 진이 빠져. 당 떨어져. (커피 마시고) 살겠다.
창훈씨가 얼마 전에 니 얘기해서 함 보고 싶다 했는데, 이사온 거야?
수아 : 아니. 시댁.
현주 : 아. (끄덕끄덕) 어머님이 애 봐주구?
수아 : 6개월만.
현주 : 그 뒤는?
수아 : (절레절레)
현주 : 그런 게 어딨어.
수아 : 나만 일 관둠 다 해결될 문젠데.
현주 : 니가 이 일 하지 누가 해. 승무원이 천직인 앤데.
수아 : 내가 왜?
현주 : 무디잖아. 단순하구. 충성도도 높구. 잔머리 안 굴리구. 진짜 일하는 애.
우리 바닥에 쫌만 힘들어두 ‘시집이나 잘 갈랍니다’ 투덜거리는 애들 얼마나 많아.
수아 : 나두 시집이나 갈랍니다-할 때 간건데.
현주 : 너나 나나 소박하게 했지. 전화번호 달라는 남자들 안 만나구. 소박하게 공항서 만나 공항서 결혼하구.
(젠장) 너무 소박했어. 그 이쁜 나이에 화려하게 좀 살껄. 소박은 개뿔..
수아 : (피식)
56. 마당. 주택. 오후.
내부가 한옥으로 된 주택. 도우가 설계한 집이다.
마당에 정원에 돌을 다시 놓아주는 도우(AS로 손질해주는 중).
노인 : 살기도 편하고... 아주 마음에 들어요.
도우 :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구요.
노인 : 문짝 하나. 조명 하나. 여기 돌 하나. 다 장인이시라면서 그 분들한테 수익금도 다 돌려드리구..
(고개 끄덕) 지은이랑 좋은 일 하네.
도우 :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나오는 도우. 차에 올라타다가 보조석에 놓인 상자(고은희가 준 선물)를 본다.
57. 아파트입구. 영숙집. 오후.
계단을 오르는 수아. 그때 문자가.
도우 : (문자소리) 한강 근처의 잘못 간 그 집에 갈 일 있습니까?
수아 : (놀라서 보더니. 두리번두리번. 문자소리) 제가 보이나요? 잘못 간 그 집에 가는 중입니다.
58. 주방. 영숙집. 오후.
영숙이 식탁에 앉아서 냉수 마시고 있다.
수아, 문 열고 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 개미소리 만하게 얘기하고는 잠시 서 있는데. 식탁에 앉아야하나. 뭘 해야하나..
영숙 : 그 방 니네 방 해. 들어가.
수아 : (효은방문 연다)
59. 효은방. 영숙집. 오후.
수아, 서서 답답한지 가슴을 주먹으로 살살 툭툭 친다. 문 밖에서 톡톡~
수아 : 네.!
영숙 : (밖에서 소리) 얘기 좀 하자.
수아 : ...
수아, 나가려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도우 : (문자소리) 근처에요. 잠깐만 봐요.
수아 : !
60. 차안. 영숙아파트 주차장. 오후.
차안에서 수아의 답신을 기다리는 도우.
61. 주방. 영숙집. 오후.
식탁에 앉아있는 영숙.
영숙 : (수아 나오는 걸 보더니) 앉아라. (수아 앞에도 냉수컵 놔주고)
수아 : (나가고 싶은 마음뿐) 어머님. 저...
영숙 : 니들 나한테 억하심정 있니?
수아 : 그런 거 아니에요. (안절부절)
영숙 : 일단 앉아. 앉아서 차분하게 이 사태를 정리하고 대책을 세우고...
수아 : 그래야 되는데. 어머님, 저 잠깐만...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영숙 : (뭐래니!)
수아 : 제가 좀 답답해서. 조금만. 네? 어머님...
영숙 :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힌다) 너만 답답하니?
수아 : (뒷걸음질로 나간다) 금방 들어올게요. 정말 금방이요!
62. 엘리베이터 안/ 아파트입구 앞. 오후.
1층을 누르는 수아. 가슴이 답답. 가슴팍을 툭툭 친다.
1층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햇살이.
천천히 걸어가는 수아. 저 앞으로 도우의 차가 보인다.
수아, 도우와 눈이 마주친다.
일부러 주차장 구석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수아. 운전하면서 수아를 따라가는 도우.
63. 주차장 일각. 오후.
도우 : (차창을 내린다)
수아 : 어쩐 일루?
도우 : 손녀 물건들 챙겨줬다고 우리 어머니가 전해달라네요. (선물상자 내미는데)
수아 : (지나가는 할머니 발견, 얼른 몸을 낮춘다)
도우 : (사라진 수아,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도어락 푼다)
수아 : (몸 낮춘 채 차 문을 살짝 열며) 시어머닌줄 알구... 아니다. 제가 이렇게 숨을 이유가 없는데 뭘 잘못했다구.
(다시 차 문 닫으려는데)
도우 : 괜한 얘기 듣는 것보단 낫죠. (선물상자 겸연쩍게 넘기며) 이렇게 드리게 되네요.
수아 : (팔만 뻗은 채로 받으려다가) 제가 지금 이걸 가지고 들어가기가... 어머님이 계셔서...
지금 상황이 어디서 선물 받고 들어왔다면 좋은 소리 못들을 것 같아서요. 다음에 받으면 안 될까요?
도우 : 아.. (선물 옆자리에 놓는다) 그래요. 다음에. 전 좋아요.
수아 : (승무원 미소) 죄송합니다.
도우 : (풋) 그거.. 은근 중독성 있는 거 알아요?
수아 : ?
도우 : 과한데.. 자연스러워요.
수아 : (풋...뭔가 말을 하려다 만다)
도우 : (역시 뭔가 말을 더 하고 싶은데 만다)
수아 : (문 닫으려 하자)
도우 : 탈래요?
수아 : ...
도우 : 답답하면 한바퀴 휘 돌아두 돼요.
수아 : (2초 정도 생각하더니, 정신이 든다) 아니, 아니에요.
(선물 갑자기 집어들며) 가져갈게요. 다음에 또 보는 거 아닌 거 같아서.
도우 : ...
수아 : 들어가세요.
도우 : (머쓱하지만 미소) 그래요, 그럼.
수아, 도우가 가는 것을 눈으로 쫓는다. 도우 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 있는 수아.
-도우차 안. 도우, 백미러로 수아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멈춘다.
-도우차가 멈추는 것을 본 수아. 순간 ‘탈까?’ 하는데, 1, 2, 3초 정도 도우차가 서 있다가(수아가 오기를 기다리듯이) 다시 출발.
‘늦었다’ 눈을 찔끔 감는 수아.
64. 도로-터널. 오후.
-아쉬운 듯 차를 몰고 가는 도우.
-한강둔치로 이어진 터널을 달리는 수아.
65. 한강. 늦은 오후.
달려서 한강까지. 헉헉 거리며 달려와서는.
수아 : (소리) 애니라고 했죠. 내가 지금 많이 답답해서 그런데... 그 사람하고 얘기하면...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세상에 미안해서라도 남편이 어떻게 굴든 ‘죄송합니다’ 하구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이런 그지같은 이유를... 그냥. 순수하게. 그래요. 이 나이에 순수하게... 그냥 아빠랑 차 한바퀴 휘~.
그 정도는 해도 될까요? (허공 보다가... 체념한 얼굴) 한바퀴 휘.
66. 효은학교 앞. 늦은 오후.
풀이 죽어서 나오는 효은. 눈앞에 수아가 손 흔든다.
효은, 수아에게 신발주머니 홱 던져주고는 터벅터벅 걷는다.
효은 : 나 다니던 학교에 고스란히 보내줄 아빠가 아니지. 대단한 울아빠.
수아 : (신발주머니 들고) 너 오는 거 아빠가 양보했잖아. 하나씩 양보하자. (다독이려는데)
효은 : (뿌리치고 가다가 가방도 넘긴다)
수아 : (효은이 가방 어깨에 메고. 신발주머니 들고. 손에는 도우가 준 선물 든 종이가방 들고) 학교는 어때? 애들은... 효은아?
효은 : (그냥 간다)
67. 영숙집 앞. 늦은 오후.
효은 : (들어가려다 말고) 안 되겠어. 엄마. 다시 말레이시아 가자. 거기가 나아. 메리이모한테 물어봐줘.
수아 : (화도 안난다) 빈말이라두 그러지 마라.
효은 : 진짜야! 공부를 너무 빡세게 시키잖아! 숨도 못 쉬겠어! 축구부 갔더니 쳐다두 안 보구!
수아 : ...알구 온 거잖아.
효은 : 가자! 엄마두 그래. 내가 칭얼거리면 따끔하게 혼내서 국제학교 계속 다니게 했어야지!
수아 : (그래. 따끔하게) 그럼 따끔하게 말할게. 앞으로도 난 니 의견이 일번이야.
그래야 너도 니가 뭘 원하는지 알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지고!
효은 : 애한테 바랄껄 바래라! (하고는 휙 들어가버린다)
효은이 가방, 신발주머니. 손에는 도우가 준 선물종이봉지 들고 서 있는 수아.
수아 : 박효은!
효은 : (다시 나오며) 왜! 왜!
수아 : (소리 안 높인다) 니 가방 가져가.
효은 : (홱 가방과 신발주머니 낚아챈다)
수아 : 엄마는 한바퀴..
효은 : (듣지도 않고 현관 열고 들어간다)
수아 : (가슴팍 팍팍 친다. 답답하다)
68. 거리. 저녁.
다다다다 달리는 수아. 택시! 택시! 소리 지른다.
69. 택시 안. 저녁.
다리 위를 달리는 택시. 수아, 전화중이다.
수아 : 미진아. ...아니 뭐 하나 물어보려구. 그때 너랑 갔었던 수제맥주집. 거기 이름이 뭐였지?
어? 아니. 친구들이랑 갈려구 하는데. 그때 거기가 좋았던 것 같아서. 어. 어, 그래.
70. 1층 가게 앞. 밤.
건물 앞에 도착한 수아. 통유리 너머 서빙하는 현우도 보이고.
수아, 들어가려다.
수아 : 미쳤구나 최수아... 여길 왜 와서... 뭘 어쩌겠다고. (획 돌아선다)
현우 : (수아가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본다)
71. 2층 작업실. 밤.
지은과 얘기중인 도우.
지은 : 엄마랑 약속한 게 있어. 3년 내 볼만한 회사 만들어놓지 않으면 이 일 관두는걸루.
도우 : (그래서? 눈빛만)
지은 : 몰라. 우리 엄마 자꾸 이상한 얘기 해. 이러다가 우리 회사 엎어버리는거 아냐..
도우 : 이제 2년째구. 슬슬 의뢰 들어오기 시작하구. 뭐가 문제야?
지은 : 그게 문제래. 나두 몰라. 2년 만에 의뢰 받구. 것두 작은 할아버지 집에.
것두 의뢰라구 축하파티까지 해댔다구. 두고두고 핀잔이야. 우리집, 돈 제대로 못 굴리는 애들한텐 절대 돈 안 쓰잖아.
너나 내가. 눈만 높은, 단가 못 맞추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들이란다.. 어렵구 실력 좋은 장인분들
어떻게든 띄워보겠다는 건데.. (슬쩍 도우 눈치) 우리 함께 한 2년... 의미 있었다구 봐.
도우 : 경험해보자구 시작한 일 아닌데.
지은 : 나두 너처럼 가치 있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모냥 빠져두 너무 빠지잖아. 짜증나. 알아주는 사람두 없구.
가만있음 알아주는 사람 투성인데. 뭐만 하면 우습게 봐.
도우 : 한심하다.
지은 : 한심해서 미안.
이층으로 올라오는 현우.
현우 : 아무래도 니들 중 한명 만나러 온 거 같은데.
둘 : ?
사이. 창밖을 내려다보는 도우. 수아가 가게에서 멀어진다.
도우 : (놀람. 변명해준다) 내가 일루 오라고 한거야.
지은 : 누구? (도우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는데)
도우 : (지은 머리 치우며) 너 간다구 했지?
지은 : 아니, 그런 말 안했는데.
도우 : (허겁지겁) 내 핸드폰... (어딨지? 못 찾겠다. 내려가는 현우 보더니) 현우야!
현우 : ?
72. 거리. 밤.
걸어가는 수아.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놀라서 돌아보니, 탐탁지 않은 표정의 현우다.
73. 2층 작업실. 밤.
작업실을 나서는 지은.
도우 : (핸드폰 찾고 있고)
지은 : 내가 의지는 약해두. 의리는 강하다는 걸 보여주지. 난 누가 뭐래두 니 편이야. 혜원씨편 아냐!
도우 : (대꾸 없다. 손만 바이바이)
74. 1층 가게. 밤.
지은 : (내려가다가 수아가 들어오는 것을 본다. 슬쩍 보기만 모른 척 그냥 지나간다)
수아 : (지은을 의식하지 못하고 들어온다)
현우 : (눈으로만 지은에게 인사. 수아에게는 위로 가라고 불친절하게 손짓만)
75. 계단. 밤.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수아. 긴장한 채 올라가는데. 고개 드니, 도우가 서 있다.
76. 홍갤러리. 밤.
홍여사 비서(황현정)와 혜원. 목록과 혜원이 가져온 전통보(선물할 보자기)들을 일일이 검토하는 둘.
현정 : (목록 보여주며) 1번부터 20번까지는 (어느 도안 가리키며) 이거. 맞지?
혜원 : 어.
현정 : 지난 명절에 이렇게 싸드렸더니 어디서 했냐구 문의가 난리두 아니었어. 고은희여사네서 했다니까 다들 언감생심..
혜원 : (기분 좋다)
현정 : (슬쩍) 니 남편이 지은씨랑 하는 사업.. 다른 얘긴 안 해?
혜원 : 무슨 일 있어?
현정 : 나도 잘은 모르는데. 느낌 안 좋아.
혜원 : 이제 시작인데 관두라구 하겠어?
현정 : 2년만에 시작이 무슨(고개 절레절레. 비아냥) 자선사업을 한다는 건지. 사업을 한다는 건지. 시원찮더니..
혜원 : (기분 나쁘지만 티 내지 않는다)
현정 : 넌, 어때... 괜찮구.?
혜원 : (애니 얘기군. 침묵)
현정 : 어느 날 서도우랑 결혼한대서 날 놀래키더니 딸이 있다고 커밍아웃. 그때 나 기절한 거 생각하면..
그러더니. (본론 얘기할 참. 쯧쯧...)
혜원 : (서류 챙긴다)
현정 : 학교 다닐 때부터 니 속 모르겠다는 애들 천지였어. 알아. 뭐든 티 안내고 묵묵히 해내는 거. 아는데.
지금 같은 땐 쉬어두 돼. 주변에서 말 많다.
혜원 : (다시 일 얘기) 지은씨 사업, 아는 거 있음 알려줘.
현정 : (못 산다) 야. 무슨 친구가 속얘기만 하면.
혜원 : 속..? 속얘기... ‘진심이다, 속얘기다.’.. 다 엄살이지. 진짜 속은 못 드러내. 그 아픈 걸 어떻게 내 입으루 말해.
현정 : (!) 미안..
혜원 : 우리. 일 얘기만 하자.
현정 : (다시 목록 보더니 억지루) 완벽해. 고마워.
혜원 : (미소)
77. 2층 작업실. 밤.
어색하게 왔다갔다 하는 수아.
도우 : 그거 들고 다니는 거 아닌데.
수아 : ?
도우 : 선물.
수아 : (선물상자. 역시 굳은 표정)
도우 : 뭐.. 한잔 할까요?
수아 : 뭐든. (움직이지를 못한다. 몸이 굳은 듯)
도우 : (수아가 긴장한 거 안다) 와줘서 너무 좋은데요.
수아 : (자기가 생각해도 좀 어이없지만) 힘든 일이 있었거든요. 남편이 효은이 데려온 것에 욱해서
저랑 효은이 짐을 시댁에 옮겨놔버렸어요.
도우 : 잘못 간 집. 그래서 거기로(끄덕끄덕)
수아 : (도우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선물 흔들며) 이렇게 방황하구. 아까 차 한바퀴 휘~ 돌자고 할 때,
정말 어딘가 가고 싶었는데... 것두 말 못하겠구. 뭐 그런 복잡한 상황.
도우 : 잘 왔어요.
수아 : (도우 본다. 와르르 고민, 갈등이 무너진다)
도우 : (수아 대놓고 본다)
수아 : 별일이에요.
도우 : ?
수아 : 미친 사람처럼 집안일 하구. 일 하구. 애 챙기구. 쓰러져 자구. 그저 남들 다하는 먹구 사는 일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매일 이러구 살다가 비행 가서. 어느 낯선 도시에서 잠깐, 삼사십 분 정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구. 인생 뭐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다시 힘내게 되는... 그 삼사십 분 같아요. 도우씨 보고 있음.
도우 : ...
수아 : (말해놓고 어색)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
도우 : 이게 뭔가 했는데... 그거였네요. (끄덕) 생애 최고의 찬사에요. (미소)
수아 : (마음이 놓인다)
78. 1층 가게 앞. 밤.
차 한 대가 선다. 혜원의 차다.
혜원, 차창을 열고 도우의 차를 본다.
혜원 : 여깄나? (윗층 본다. 도우에게 전화해본다)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혜원을 본 현우.
79. 2층 작업실. 밤.
도우, 핸드폰이 울린다.
수아 : 어디서 핸드폰이 울리는 것 같은데.
도우 : 아까부터 찾았는데... 괜찮아요. 급한 일 없어요.
80. 1층 가게 앞. 밤.
전화하면서 현우 쪽으로 가는 혜원. 쉿! 하라는 손짓과 함께.
2층에 은은한 조명 켜져 있는 것 보고.
혜원 : (핸드폰 걸며) 뭘 마중까지.
현우 : 어이 제수씨.
혜원 : 형수님이지. 안 받네. (핸드폰 끊는다) 2층에 있죠?
현우 : 먼저 들어가요.
혜원 : 응. (가다가) 아 깜박했네. 브로셔 보여준다는 게. (다시 차로 간다. 트렁크 열고 뭔가를 찾는다)
현우 : (혜원 보다가 잠시 고민)
81. 2층 작업실. 밤.
수아 : (마주보고 서 있는 게 어색한 참에 핸드폰 소리가. 괜히 찾는다)
도우 : (피식) 괜찮다니까.
수아 : (책상에 간다. 종이 사이에 끼어있는 핸드폰 발견) 여기요. 현우씬데.
도우 : (책상에 걸터앉아 핸드폰 받는다) 어..
현우 : (E) 내가 전화를 해주는게 맞는지, 쓸데없이 구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서 그런데.
도우 : 급한 거 아니면. (하는데)
현우 : (E) 혜원씨 왔어. (끊는다)
도우 : (끊고 잠깐 생각하더니 옆에 서 있는 수아의 팔을 잡는다)
수아 : (헉)
도우 : (아주 차분) 언제든 답답하면 와요. 지금 와이프가 올라올 것 같은데... 현우한테 가 있어요. 아래층에요.
수아 : !
도우 : (손을 마주해서 더 꽉 잡는다)
수아 : (그대로 있는다)
82. 계단. 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수아. 다리가 떨린다. 난간을 잡고 겨우겨우 내려간다.
83. 1층 가게 앞. 밤.
현우, 자기가 혜원의 짐을 들어주겠다는 둥. 괜히 시간을 끌다가 수아가 내려오는 것을 본다.
84. 1층 가게. 밤.
현우와 같이 들어오는 혜원. 혜원, 바에 앉아있는 수아의 뒷모습을 슬쩍 보며 지나간다.
계단으로 가는데, 도우가 내려온다.
혜원 : (반갑게) 도우씨!
수아 : (움찔)
현우 : (수아 앞으로 가서. 맥주 한잔 내어준다) 150번째. 오늘 마지막 잔입니다.
수아 : (온갖 촉각이 뒤에)
도우 : 나가던 길이었는데.
혜원 : 맥주 한잔 하자. 데이트하려구 왔는데.
수아 : (듣는다. 초긴장)
도우 : 가봐야 하는데. (서두르자)
혜원 : 알았어. 현우씨 한잔만! 테이크아웃.
현우 : 없는데.
혜원 : 솔드아웃? 벌써?
수아 : (자기도 모르게 맥주를 옆으로 밀어준다) 전... 괜찮아요.
현우 : !
도우 : !
수아 : (자기도 해놓고. 앗뿔싸. 다시 맥주잔 끌어오고 싶은데)
혜원 : (냉큼) 그럼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현우씨 계산은 도우씨한테 받아.
현우 : (끄덕) 내 사전에 ‘그냥’은 없으니까. 돈도 받고, (의미심장하게) 들을 말도 있고...
도우 : (나간다)
수아의 뒤로, 혜원과 도우가 나간다.
현우 : 대신 이거 (작은 잔에 독한 술 소량 덜어준다)
수아 : (술 한잔 들이켠다. 아, 써! 순간!)
#1회 씬90. 칵핏(조종실).
정면으로 쏟아지는 붉은 기운.
수아 : (소리)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기분. 온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수아는 혼자 남아있고. 그 뒤로 도우와 혜원이.
-도우는 혜원과 걸어가고. 그 뒤로 수아가.
수아 : (소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회. 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