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신화에 나타난 여성의 상징 미학과 자연관
張 英 蘭 한국외국어대학 철학
Ⅰ
인류는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현대 문명의 깃발 하에 급속하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 환경과 더불어 단순히 자신들의 생존 기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파멸도 자초해왔다.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만물의 영장으로 옹립하고 스스로 만물의 지배권을 부여했다. 그것은 인간이 단지 ‘이성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고 그 외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일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만이 이성적인 동물인가? 사실 이것은 어떤 능력의 소유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문제이다. 이성적 능력의 일반적 기능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단지 인간만이 사유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 가운데도 어떤 것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성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성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만 근거해서 다른 동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도 자연(physis)이다. 인간은 세계 내에서 최고의 지위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 자신이 바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자연의 이법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며 유기적인 변화를 거듭해왔다. 수천년 동안 인간은 자신들의 지식과 문명을 통해서 늘 자신들과 함께 머물러 있던 자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을 거부하고 부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연의 유사품과 대용품을 만드는데 집착해 왔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것은 거대한 고물 덩어리와 폐기 처리물이고,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바로 위대한 자연과 생명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본래적 관계를 재확립하고 부활시켜야 한다. 인간 의식 속에 희미하게 존속하고 있는 자연과의 원초적인 결속의 이미지는 바로 신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신화는 우주의 창조와 운행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기초적 자료이다. 원시인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을 신화 속에서 무수한 상징과 은유로 폭넓게 표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과 은유는 그들의 생활 양식과 인식 방식에 대해 문외한인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근본적인 사유 구조를 은폐시키는 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적 쉽게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식을 표현하는 최초의 도구 혹은 대상은 인간의 몸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파악한 자연의 이법과 초자연적인 이치를 신의 ‘몸’으로 형상화하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원시인들이 이러한 형상화의 작업을 통해 상징하려는 것들에서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Ⅱ
인간의 의식은 자연으로부터 느린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것은 마치 땅 속에 묻혀진 씨앗같이 자연 안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다. 우리가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기 이전에는 우리는 돌, 나무, 동물과 같이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했지만, 인간은 동물들과는 달리 자연을 해석하려고 하였다. 인간이 자연에서 발견한 최초의 이미지는 여성적인 신성이었다. 왜냐하면 자연과 여성의 순환적 주기는 상호 유사한 생산성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이나 오늘날의 인간이 가장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자연의 연속적인 재생산이었고, 이러한 자연을 통해 인간은 무한한 생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1. 위대한 어머니 여신과 몸의 상징 미학
위대한 여신은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의 상징이다. 여신의 몸은 살아 있는 것이든 또는 죽어 있는 것이든 간에 모든 존재하는 것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탄생의 원천이다. 원시인들은 여신의 신비로운 능력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돌이나 뼈 등에 그녀의 몸을 조각하고 그려냈다. 여기서 여신의 몸의 부분들은 단순한 물리적인 기관들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의 수많은 상징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위대한 여신의 ‘자기-표상’, 즉 그녀의 가슴이나 배 또는 완전히 벗은 몸은 신적인 현현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에 여신상들은 대부분 벗은 상태로 묘사되거나, 또는 갖가지 여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상징들로 몸을 장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구․신석기 시대의 여신상들의 몸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기괴한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여신의 다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부풀어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특징들은 출생의 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일상적인 상태의 여성의 몸이 가진 구조나 비율보다는 거의 임신 후기 상태의 여성의 몸이 가진 구조나 비율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모습을 찾아냈기 때문에, 당시의 여신상들은 대부분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문화로의 과도기를 포괄하고 있는 크레테 문명부터 여신은 임신한 몸의 형태에서 벗어나 비교적 균형이 잡힌 몸매로 그려지고 있으며,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신체의 선을 드러내는 주름 무늬의 옷을 입고 있다. 특히 구․신석기 시대에 지나치게 커서 복부까지 축 늘어졌던 여신의 가슴은 크레테 시기에는 약간 큰 크기로 위로 올라와 있지만 과감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크레테 여신이 유독 가슴만을 과감하게 노출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신이 가진 생명력과 관련이 있다. 노이만에 의하면, 당시 여신이나 또는 그와 동일시되는 여사제들은 그들의 전 가슴을 통해 영양 공급을 받는 생명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여신의 가슴은 가려진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여신의 능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 강조되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신석기의 사람들이 여신의 원초적인 능력을 그녀의 몸 혹은 조각상의 형태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 크레테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특징보다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표상들이나 도구들을 통해 일상성 속에서 추상적 특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생명에 대해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이미지는 바로 어머니 또는 여성성이다. 구석기인들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에서 자신들의 원초적인 신성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석기 시대의 신화는 여성의 몸의 이미지를 통해 탄생의 신비를 구체화시키려고 했다. 더욱이 인류는 이미 수만년 전에 여성의 출산의 신비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B.C. 23,000-18,000 경에 발견된 유물을 보면 대부분이 작고 벌거벗은 형태로 여성의 임신한 몸을 그린 조각상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달의 변화하는 국면과 여성 자궁의 다산의 측면이 가진 상호 밀접한 관계를 분명하게 지시하고 있다. 우리는 당시의 신화나 여신상들을 통해 나타난 초기의 인류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세부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들이 가진 자연관과 우주관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자궁
원시인들은 우선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서 여성을 1차적인 출산 기관인 자궁의 구조와 관련하여 다양한 신성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자궁은 마치 모든 것의 원형이 들어있는 것처럼 알 모양으로 그려졌고, 자궁 속의 양수는 생명의 물의 원천으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도식은 우주 만물의 탄생의 신비에도 적용되어 우주의 자궁과 물은 바로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자궁은 또다른 의미에서 재탄생의 장소가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순환적 인식 구조에 의거한다. 그들은 이러한 자궁의 상징을 동굴과 무덤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의 동굴은 가장 신비스러운 장소, 즉 바로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성한 재탄생의 장소였다. 우주 전체가 여신의 몸이었으며, 특히 동굴은 여신의 성소였다. 인간이 동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이 행위를 통해 마치 생명의 신비가 잠들어 있는 여신의 몸 안을 들어가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일상 생활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구석기인들의 죽음의 미학이 깃들여져 있다. 신격화된 여성의 자궁은 생명이 태어나서 돌아가는 곳으로,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동굴은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 변화하는 장소로서 과거의 삶과 미래의 삶을 묶어 준다. 그래서 그들은 동굴 속에 자신들이 사냥했던 많은 동물들을 그렸던 것이며, 이러한 그림들을 통해 동물들이 살아있게 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여신은 바로 삶과 죽음의 여신이며, 또한 재탄생의 여신이다. 그녀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을 주기도 한다. 당시의 무덤에서 함께 출토된 여신상과 물레바퀴들은 인간의 삶을 잣는 운명의 여신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동굴을 신이 머물러 있는 혹은 신의 몸과 동일시되는 사원이나 신전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이만은 단적으로 동굴이 나중에 발전된 형태가 사원이며, 따라서 집과 피난처로서 위대한 여신의 상징인 것처럼, 사원의 문은 여신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라고 주장한다. 즉 동굴은 그녀의 자궁이며, 인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출입구와 문지방 의식은 이 신비스러운 여성적 장소의 표현이다. 사원의 울타리, 문, 기둥은 위대한 어머니의 상징들이다. 특히 고인돌과 문의 여성적 원리는 항상 여성의 자궁을 통한 재탄생과 연관되어 있다. 고인돌은 여신의 신성한 집이다. 이것이 확장되어 사원이 되었고, 일반적으로 ‘신성한 구역’이 되었다. 가장 초기의 신성한 구역은 여성이 출산한 곳이다. 그 곳은 위대한 여신이 지배하는 곳이며, 모든 남성들의 출입이 배제되는 곳이다.
동굴과 함께 무덤도 이미 구석기부터 여신의 몸이나 자궁으로 인식되었다. 이 두 가지는 하나의 장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무덤으로 보이는 어떤 동굴은 좁은 통로와 계란 모양의 영역과 움푹 파인 곳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더욱이 동굴의 내부가 완전히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러한 붉은 색은 바로 어머니 여신의 재생산 기관의 색깔을 상징한다. 신석기 시대의 무덤들도 계란 모양이거나 알이나 자궁을 상징하고 있다. 짐부타스는 말타, 시실리, 사르디니아의 바위를 깍아 만든 무덤이나 지하 무덤이 대개 자궁 형태나 알 모양 또는 사람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서유럽에 있는 거석 무덤은 여신의 몸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고한다. 실제로 이러한 무덤은 여신의 다양한 형태를 분명하게 그려내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윤곽이 여신이 오므리고 앉아 있는 형태나 서있는 형태 등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궁을 상징하는 알의 모양을 띠고 있다. 이것은 원시인들이 여신의 몸 또는 자궁과 동일시된 무덤을 통해 재탄생하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여성의 몸의 가장 신비스러운 장소인 자궁 속에서 움틀거리는 생명의 기반은 바로 물 또는 양수이다. 아이를 출산할 때의 첫 신호는 바로 양수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으로서 물은 여신을 새와 뱀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왜 그들은 여신을 새와 뱀의 이미지와 연관시켰는가? 한편으로 새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볼 수 없는 저 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가시적인 동물로서 인간에게 어떠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고 믿어졌다. 신석기인들은 태아가 자궁으로부터 나오는 것과 새가 알로부터 나오는 것을 비유하여, 이 세계가 우주의 알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 여신은 세계의 만물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알을 품어야 했는데, 이것이 새의 형상과 혼합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에 있어서도 생명의 원천인 물과의 관계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모든 생명은 비나 눈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물’과 강, 호수, 바다 등과 같이 ‘땅에 있는 물’로부터 탄생한다. 신석기인들은 새를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물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하늘의 어머니로서의 여신을 새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생명을 가져오는 새 여신은 여성과 새의 복합적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그것은 새의 머리와 긴 목으로 연결되는 알 모양의 신체로 표현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뱀은 다양한 함축을 담고 있는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다. 신석기인들에게 뱀의 이미지는 매우 빠르고 유연한 모습으로 떠올랐고, 땅 위와 아래, 그리고 주변에 있는 물의 역동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뱀은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하나의 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문화에서 땅을 둘러싸고 있는 원초적인 물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뱀은 소용돌이 무늬로 상징화되는데, 이는 불멸성과 생명 에너지의 이미지로 보여진다. 뱀은 자신의 껍질을 벗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마치 달이 주기적으로 어둠으로부터 태어나고, 자궁이 주기적으로 출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뱀은 달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허물을 벗을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변화에서 우주적 연속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뱀은 때로는 남근을 상징하고 있다. 남서부 유럽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남근들은 소용돌이 무늬의 뱀이나 나선형과 그물형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러한 무늬들은 물과 관계가 있다. 상고 구석기 시대에 출토된 조각상들 중의 어떤 것들은 남근과 여신의 몸을 융합한 형태를 띠고있다. 이 시기의 ‘비너스들’ 중 어떤 것은 전혀 얼굴을 가지지 않은 남근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현상들이 BC 약 5000년까지의 신석기 시대 동안 남동 유럽에서도 나타난다. BC 6만년 중반 경에 발견된 작은 조각상들 가운데 남성 생식기의 형태를 가진 것이 있는데, 윗 부분은 남근형이고 더 아래 쪽의 엉덩이는 고환같이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짐부타스에 의하면 비록 이러한 남성적 요소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작은 조각상들은 본질적으로 여성이라고 한다. 즉 그것들은 두개의 성의 융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남근에 고유한 신비스러운 생명력을 가진 여성성의 강화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원래 이것은 여신의 내부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되는 여신 안에 있는 남성적 원리를 상징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는 재생산을 하게 만드는 독자적인 남근의 이미지로 변화되어, 청동기 시대에는 여신의 배우자로 나타나 여신과 결합하여 땅을 풍요롭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
(2) 가슴과 엉덩이
대부분의 석기 시대의 조각상들은 얼굴이나 배 부분은 가능한 사실적으로 묘사되거나 크게 강조되지 않은 반면에, 가슴과 엉덩이 부분은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신체 비율로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신체 부분들은 추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신의 가슴은 모든 생명체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상징화되었다. 그래서 구석기 시대에 주로 발견되는 돌에 새겨진 여신상이나 맘모스의 상아에 새겨진 여신상은 대부분 축 늘어진 형태의 거대한 가슴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여신상의 엉덩이도 마치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커다랗게 부풀어올라 있다. 이것은 구석기 여신상들이 대부분 대지모의 다산성과 풍요성을 기원하기 위해 임신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신석기 시대에 여신상도 생명을 주는 물의 원천으로서 가슴을 상징화하였다. 이러한 가슴의 이미지는 하늘의 물을 나르는 새의 이미지와 자주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때로는 새의 상징인 V 무늬나 소용돌이 무늬가 그려졌거나, 혹은 비나 젖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듯한 지그재그 무늬로 가슴이 채워진 약간은 추상화된 여신상이나, 또는 새의 머리와 긴 목을 가진 두부와 아름답게 부풀어 오른 인간의 가슴을 가진 상체만으로 묘사된 새의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 여신은 일반적으로 영양 공급을 하는 그릇으로 형상화되는데, 이러한 그릇들이 가슴을 가지거나 혹은 젖꼭지를 가진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역시 그들이 가슴을 그러한 여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배와 배꼽
석기 시대의 여신상은 대체로 풍만한 형태로 그려져 임신한 상태로 보여지기도 하나, 모든 여신상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들에 의거한다. 우선 여신의 손이 가슴에 올려져 있으면 임신하지 않은 상태를 그린 것이고, 배에 올려져 있으면 임신한 상태를 나타낸다. 다음으로 후자의 경우는 가슴과 엉덩이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반면, 전자의 경우는 후자에 비해 그다지 강조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임신한 여신상은 대지모(大地母)와 관련이 깊다. 임신한 대지모의 배와 사당의 벽이나 항아리에는 주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점들이 찍힌 마름모나 삼각형 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두 가지 무늬들은 원래 음부의 형태를 도식화한 것으로 생명의 원천과 관련이 있다. 점들은 자궁이나 들판에 들어 있는 씨앗을 나타낸다. 그래서 씨앗들이 가득 차있거나 또는 점찍힌 마름모 무늬들로 장식된 둥근 항아리는 대지모의 자궁으로 인식되었고 씨앗은 죽은 자의 영혼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원시인들의 재탄생의 염원을 형상화한 상징적 표현들이다.
여신의 임신한 배는 때로는 언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서 영국 윌트셔에 있는 실버리 언덕의 기념물(BC 2750)을 살펴보게 되면, 신석기의 영국에서 언덕은 여신의 임신한 배 모양을 나타내며, 전체적으로는 여신이 앉아 있는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버리 언덕의 원형 꼭대기는 생명을 생산하는 힘이 집중되어 있는 여신의 배꼽(omphalos)이다. 그리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실버리에서도 배꼽은 아마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심의 상징적 기능은 마치 태아가 배꼽을 통해서 자라나듯이 우주의 만물이 여신의 배꼽으로부터 창조되어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짐부타스에 의하면 그리스의 많은 화병들에 나타나는 옴팔로스의 표현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는 여신 내부의 뱀이거나 또는 왕관을 쓴 여신이며, 옴팔로스는 대지모가 젊은 측면과 뱀의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킨다. 신석기의 무덤의 경우에도 그 단면도를 살펴보면, 임신한 배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덤 안에 있는 넓다란 판에도 임신한 배와 배꼽을 상징하는 매듭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원시인들이 여신의 배를 통해 재생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인간들은 어둡고 광막한 우주 공간 안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이 던져져 있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이들에게 예상할 수 없는 시․공간에 언제든지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세계의 질서 안에서 죽지 않음, 즉 불멸성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생성․소멸하는 이 세계의 가시적인 현상들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발견해 내었다. 그것은 이러한 자연의 변화가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탄생의 신비로부터 죽음의 신비를 극복해내고 다시 재생의 신비를 읽어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비를 완성시키는 것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지배하고 순환시키는 강력한 우주의 힘으로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이라 불린다. 원시인들은 이러한 강력한 힘을 여신의 몸을 통해 구체화시키고 있다. 여신의 몸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여신의 능력이 내재하는 장소이자, 초월하는 장소이다. 그들은 여신의 몸을 통해 생명력의 원천이 가시화되는 원리를 설명하려고 했다.
2. 달의 여신과 순환론적 세계관
달은 인간에게 어떻게 보여졌으며, 어떠한 의미를 가졌었을까?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하늘의 영역에서 인간을 비롯한 다른 모든 생명들을 비추어주는 태양과 달은 원시인들에게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달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같은 짙푸른 밤하늘을 은밀하게 지켜주는 신비로움 자체이었을 것이다. 태양이 항상 동일한 형태로 대낮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면, 달은 늘 변화하는 형태로 밤하늘을 떠다닌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은 언제나 동일하게 있는 것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경외심과 호기심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은 이러한 것들의 역동적인 원리와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훨씬 더 신비하고 신성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나아가 그들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들의 다양한 양상들을 관찰하면서 어떠한 동일성의 원리를 발견해내었다. 그것은 바로 일정한 주기에 따라 이러한 변화의 현상들이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공통적인 변화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달은 인간에게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변화까지 지배하는 원리이었다. 달의 변화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함께 변화해나간다. “달의 국면들은 모든 것들이 참여하는 위대한 우주의 춤의 일부이다. 즉 천체의 운동, 조수 변화, 동물과 식물에 있어서 피와 수액의 순환이 달의 국면에 따라 변화한다.” 달은 변화하는 세계의 총체적인 이미지로서, 철기 시대(BC 1250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화에서 여신의 최고 이미지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달의 여신은 시간의 주기의 척도요, 천상과 지상의 연결과 영향의 척도이다. 달은 여성의 출산과 관련된 월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달의 변화하는 측면은 여인의 일생을 나타낸다. 즉 초생달은 어린 소녀이고, 보름달은 임신한 여성인 어머니이고, 어두워지는 달은 빛을 안에 갖고 있는 현명한 노파이다. 여신은 시간적으로는 재생의 이미지를 가지며, 무시간적으로는 총체성의 영속적 이미지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지러지던 낡은 달(하현달)이 새로운 달(상현달)로 다시 살아나고 모든 변화하는 측면들이 단일성의 원리 안에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는 달과 이지러지는 달로서 그려지는 이원성은 그녀의 총체성 속에 포함되고 초월된다. 여성은 달의 신성한 원리를 자신 안에 분유받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 속에 있으면서도 영원한 존재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빛과 어둠의 어두컴컴한 국면들에서 끊임없이 다시 새로워지는 성장과 쇠퇴의 유형을 보았고, 이것은 삶에 대한 신뢰를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점차 차가는 달(상현달)에서 그들은 생명이 자라나고 성장해가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꽉찬 달(보름달)에서 그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생명의 증가를 경이로워 했을 것이다. 이지러지는 달(하현달)에서 그들은 삶의 종말을 즉 여신이 사라진 것을 애도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잃어버린 달의 어둠에서 되돌아 올 그녀와 그녀의 빛을 고대했을 것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들은 초생달의 재출현을 믿게 되고, 그래서 어둠을 새로운 삶이 부활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으로서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어머니의 어두운 자궁으로 되돌아간다고 믿었을 것이며 달처럼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삶과 죽음을 대립적인 것으로 지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 연속되는 국면들로서 보았다.
신석기 시대에 달의 주기는 농작물의 주기에서 경험되었다. 달의 밝은 국면과 어두운 국면은 땅의 풍요로운 국면과 황폐한 국면에 반영되었다. 달의 총체성을 드러내는 비가시적 질서와 달의 변화하는 국면을 드러내는 가시적 질서는 지상의 식물과 동물의 주기에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실제로 달과 여성, 그리고 땅은 이러한 질서에 의해 지배받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의 문제에 관여하게 된다. 여성의 몸이 생명을 주는 행위로 창조의 신비를 묘사한다는 사실에 의해 여성은 어떤 의미에서 비가시적 질서와 가시적 질서간의 관계를 구체화하는 마술적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한 능력은 식물들이 자라나도록 돕고, 나무가 열매를 맺게 하며, 동물들이 수태를 하게 만든다. 앤 바링은 당시 여성들이 식물과 과일 나무들을 돌보고, 농업을 발견하는 실제적인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달의 변화와 여성의 주기간의 유사성을 체험함으로써 여성은 씨뿌리는 시기와 경작하는 시기, 그리고 추수하는 시기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달의 여신은 고대에 신성하게 여겨진 물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모니카 시주는 달의 여신을 “비를 만드는 자”(rainmaker)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달의 움직임과 조수의 변화가 일치하였기 때문에 달의 여신이 물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모든 물은 달의 여신의 선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비를 오게 하거나 날씨를 조정하는 것도 벌거벗은 여인들의 비밀 의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의식의 발달에 따라 위대한 신화는 대모신으로서 인격화된 ‘전체’와, 그녀와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로서 인격화된 ‘부분’ 간의 구별을 기초로 구성된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새로운 달로서 탄생시키고, 보름달로서 그와 결혼하고, 하현달로서 어둠에 그를 잃고, 어두운 달로서 그를 찾고, 되돌아오는 초생달로서 그를 구제한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딸이 ‘부분’의 역할을 하는데, 결혼은 어머니가 아닌 딸과 남신 간에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아들과 같이 딸도 어머니에 의해 구제된다. 아들과 딸은 모두 삶의 영원히 죽어가는 형태와 영원히 새로운 형태를 인격화한 것이다. 신화의 형태가 약간의 변형을 이루고 있지만 여신은 전체의 하나의 주기, 즉 하나의 과정으로서 삶과 죽음의 단일성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에게 달은 시간을 측정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달의 국면은 시간의 단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원시인들에게 시간은 끊임없이 재생되는 것이고, 이러한 시간을 측정하는 달은 ‘영원한 회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주-신화론적 달의 관념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은 이전에 일어난 사실의 순환적 재현, 즉 ‘영원 회귀’라는 사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순환론적 세계관은 원시인들에게 삶과 죽음을 영속적인 세계의 한 과정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최초로 마주치게 되는 외부의 자연 세계와 현상들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인간에게 죽음과 소멸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삶과 대립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연속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자연 안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과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일체감은 인간에게 파괴와 개발, 혹은 정복과 지배의 의식보다는 질서와 순응, 혹은 일치와 공동체 의식을 일으켰을 것이다.
3. 동․식물의 여신과 희생 제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은 자신으로부터 모든 생명을 산출한다. 우선 모든 식물들은 달과 같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태어나고 죽고 재탄생한다. 이것은 데메테르와 코레(페르세포네)의 신화를 통해서 인격화된다. 데메테르 여신은 그녀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지하 세계의 신인 하데스에게 빼앗겼다. 데메테르는 슬퍼서 땅을 내버려 두게 되었고, 결국 황폐화되었다. 그래서 제우스가 중재를 하여 페르세포네는 겨울에는 하데스가 머무는 지하 세계에 있다가 봄과 여름에는 데메테르 곁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이것은 농사의 주기와 상응하여 설명되고 있다. 데메테르는 곡물의 여신으로 불리우며, 페르세포네는 종종 Kore라고 불리웠는데, 이것을 소녀를 의미하며 또한 ‘싹’을 의미하는 Koros의 여성형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한 여신의 두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땅 위에 떨어진 씨앗은 죽어서 땅 속에 파묻히지만 싹으로 다시 태어나 땅위로 돌아온다. 즉 이것은 삶과 재생의 연속적이고 순환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원시인들은 이러한 식물적 삶 속에서 인간의 삶을 유비적으로 추리하여 재생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인간은 처음부터 자신과 그 외의 다른 동물을 구별한 것은 아니며, 동물들과 깊은 유대감과 일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희생 제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동물들을 신성시하게 되었을까? 또는 그들은 어떻게 동물들이 위대한 여신의 현현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식물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것의 상징적 이미지를 유비적으로 표상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동물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추론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식물 채집 뿐만 아니라 동물을 사냥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포획한 동물들로부터 옷(가죽), 음식(고기), 연장이나 장식품(뼈) 등 많은 생필품을 제공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동물들은 여신의 선물로 여겨졌을 것이고, 신성한 힘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로부터 동물들에게서 여신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각각 부분적으로 발견해내었을 것이다. 가령 곰, 암사슴, 개, 나비와 벌 등에서 여신의 현존으로 가득한 실재들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물들은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힘들의 다양한 측면들이 육화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이미지로부터 원시인들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순환적인 재탄생과 영속적인 단일성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 속에 여신의 현존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식물이 봄에 싹을 틔어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곡물이나 열매를 맺었다가 겨울에 죽어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봄에 재생하는 힘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여신의 모습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의 다산성과 땅의 다산성을 연관지어 식물의 여신을 임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만들어 경작지를 암시하는 마름모형의 무늬를 씨앗을 나타내는 점들과 함께 여신의 복부에 그려 넣어 모든 식물의 다산을 기원했다. 또한 동물들도 여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자, 여신의 다양한 모습을 육화하고 있는 신성한 여신 자신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원시인들은 여신의 신성한 몸인 대지를 갈아엎어 씨를 뿌려서 자라나온 식물이나 곡물을 뜯어내거나 잘라 내는 사실과, 또한 여신의 현현으로 본 동물들을 잔혹하게 죽인다는 사실에 대해 여신과 인간의 신성한 결합을 깨어버린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신성한 결합을 회복시키려는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희생 제의이다. 그들은 희생 제의를 통해 여신과 인간간의 무너져 버린 단일성을 복구하려 했다.
Ⅲ
원시인들은 자연을 바로 살아있으며 신성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신성한 힘, 즉 위대한 여신이 내재해 있으며 초월하는 장소이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 안에서 모든 생명력의 원천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연과 합일하기를 요청받는다.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곧 우주의 생명력을 근원적으로 말살하는 것으로, 모든 생명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에 자연은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몸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다른 모든 동․식물의 생명은 인간의 파괴적 속성이나 지배 욕구에 의해 대상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을 연속적이고 순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원시인들의 인식 구조는 인간과 자연을 단일한 체계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공동체적 존재로 이해하게 만든다. 원시인들은 자연의 총체적 순환 체계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재생의 관계를 파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욕구 충족을 하는 경우에도 희생 제의를 통해 손상된 자연과의 합일성을 복구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인간에게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른 모든 존재와 수평적인 관계 속에 질서지운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에 유입된 유목민들의 정복 문화는 삶과 죽음을 연속적인 것이 아닌 대립적인 것으로 놓고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제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전쟁은 죽음이라는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폭력 앞에 아무런 준비없이 삶을 마감하게 만들었고, 결국 생존하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지배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되었다. 이제 죽음은 삶에서 분리되고 타자는 동일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실 인간 의식의 발달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발전해왔다고 추리해볼 수 있다. 미분화된 나로부터 타자가 분화되고, 다시 미분화된 타자로부터 다양한 ‘나’들이 분화되어 나간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연스런 분화 과정에 지배와 정복의 개념이 개입되면서 인간 의식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되었다. 물론 인간은 화려한 문명의 옷을 입고 수많은 정보와 지식의 신하를 거느려왔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발전인가를 회의하게 하는 수많은 징후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현대 물질 문명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고착화된 인간의 일그러진 의식의 정점이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현대 문명이라는 괴물에 의해 스스로의 파멸을 자초하고 있다. 이 메두사의 얼굴을 한 괴물은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대상들을 석화(石化)시키고 있다. 그것은 모든 대상들을 죽어 있는 돌로 만들고 이제는 망치로 내려치려는 형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원시 사회나 미개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메두사를 물리칠 수 있는 페르세우스의 거울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거울에 반사된 메두사의 얼굴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울의 왜곡된 상(象)은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구조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타자로서의 대상을 인식하는 구조의 변화가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이다.
우리의 이러한 인식 구조는 멀리는 위대한 아버지 신화의 문화적 배경인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고, 가까이는 근대 산업사회의 기술 지향주의 세계관에서 얼개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포함한 대상 세계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신성한 힘을 회복시켜야 한다. 즉 우리는 자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조차도 대상성의 차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할 신화의 원형적 구조는 바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신화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인 자연과의 합일성을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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