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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종준 :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더 온전하고 건강하게 세워지는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오랫동안 애써오신 대표적 목회자이십니다. 그동안 섬겨 오셨던 주요 활동들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문식 : 우선 ‘희년선교회’를 설립해서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을 위한 선교운동을 했는데요. 약 30년 하다 보니 지금은 ‘국제민간교류협회’라는 NGO와 외국인 노동자 의료보험조합인 ‘주빌리 메디컬 펠로우’라는 국제단체로 성장을 했어요. 모두 외무부와 보건복지부에 등록되어 있고 성공적으로 노동자들을 돌보게 된 사례입니다. 또 의료 돌봄이 선교 접촉점이 되어서 이제 8개 언어로 매주 예배도 드립니다. 다음은 홍정길 목사님(남서울은혜교회)이 ‘남북나눔운동’ 대표가 되셨을 때 저를 대북 인도주의 지원 사업의 실무 책임자로 세우셨어요. 약 20년 열심히 하다 보니 대표도 역임했고 지금은 이사로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다음으로 많이 지원하고 WFP(세계식량기구)하고도 협력하는 건실한 기독교 NGO가 되었습니다. 또 저는 ‘성서해석학’에 관심이 있어서 현장에서 직면한 선교 과제를 신학적으로 풀어서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계속했고, <복음과 상황>이라는 정기간행물을 통해서도 사회과학과 성경을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해석학적 시도를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특별히 ‘CBS 성서학당’이라는 곳에서 꽤 많은 양을 녹화했는데, 이를 접한 사람들이 균형 잡힌 내용이 굉장히 신선했다는 반응을 많이 했습니다.
석종준 :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로잔대회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대해서도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문식 : 로잔대회가 1974년에 열렸을 때 <타임>(Time) 지는 개신교 역사상 최초 공의회가 열렸다는 얘기를 했어요. 공의회는 초대교회 예루살렘 회의처럼 선교 현장에서 직면한 새로운 과제를 함께 모여서 다루는 자리였지요. 이 전통이 가톨릭에 계속 있었고,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 이래 교파별로 약진을 하다가 1974년 복음주의 진영의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존 스토트 목사님이 함께 주도한 것이 로잔대회입니다. 이미 WCC(세계교회협의회) 중심의 회의가 있었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이 회의가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포기하고 보편적 가치로 기운 것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성경 중심적 입장에서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마련한 것이 로잔대회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에게 4차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만큼 세계 선교에서 성장하고 역할을 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도 세계 선교를 잘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한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특징과 장점을 세 가지로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 중심적 메시지를 좋아해요. 둘째, 2천 년 신앙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합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열심이 있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우선 이데올로기적인 어떤 편향성, 그리고 신학적으로 어느 정도 근본주의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는 한국교회가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 사로잡혀 있던 측면도 있습니다.
석종준 : 4차 로잔대회는 현장 참여자만 약 200개국 5천 명 정도이고, 또 온라인 접속까지 하면 수십만 명이 될 거라고 예상을 합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로잔 정신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문식 : 그동안 로잔대회 문서가 어떻게 이름 지어졌는지 한번 보세요. 1974년 1차 로잔대회에서는 ‘언약’(Covenant), 1989년 2차 마닐라 대회에서는 ‘선언’(Manifesto), 2010년 3차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서약’(Commitment)이었어요. 1, 2차에서 언약 맺고 선언한 것을 3차에서 실천하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국 대회에서는 연속성 속에서 그 실천을 위한 더 실제적인 안내와 공유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는 이번 대회 주제가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라는 것은 오히려 이 구체성이 빠지거나 더 모호해진 것이 아닌가 해서 다소 염려가 됩니다. 즉, 로잔 정신의 핵심 가치가 영혼 구원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에 있는 것이라면, 여전히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 속에 있는 다수 제3세계 교회와 그 교회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느끼는 문제들에 기초해서 구체적 실천방안이 들어오고 제시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뭔가 맥락이 끊어진 느낌이 있어요. 물론 영혼 구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새의 양 날개 같은 균형의 강조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뀔 수는 있습니다. 가령 영혼 구원이 논리적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병에 걸려서 당장 수술할 사람은 먼저 살려놓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로잔의 균형 잡힌 기독교,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정신입니다. 예를 들어, 2차 마닐라 대회의 장점은 오순절 운동을 수용해 낸 것인데요. 이것은 바울이 강조한 선교의 세 가지 측면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롬 15:18-19). 여기서 ‘성령의 능력’이 오순절 성령 운동의 수용 근거가 되었어요. 따라서 총체적 선교는 ‘말’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복음주의, ‘행함’으로 구제하고 병자를 고치고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를 돕는 NGO까지 포괄하는 복음주의, ‘성령의 능력’을 통한 표적과 기사까지 수용하는 복음주의인데, 2차 마닐라 대회 때 이것까지 받아들였다는 것은 굉장한 창의적인 발전이었습니다. 3차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좋은 신학 전통을 계승했는데 왜 실천하지 못하고, 왜 선교운동이 더 안 일어나는가?”라고 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교회의 불순종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불순종을 극복하고 ‘서약’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 계명에 총체적으로 순종하기로 한 것이지요. 이렇게 로잔 정신의 핵심은 총체적 선교이기에, 저는 이번 4차 로잔대회에도 이 정신이 계승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소 염려가 되는 것은 이번 4차 로잔대회는 주제도 그렇고 로잔대회 준비위원회에 제시한 질문에 대한 준비위원회의 반응을 볼 때, 총체적 선교보다는 순전한 복음 선교, 즉 근본주의적 선교로 퇴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석종준 : 우리가 건강한 총체적 선교라는 화두로 상징되는 로잔 정신을 제대로 올바르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4차 로잔대회가 무엇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면서 준비를 해야 된다고 보시는지요?
이문식 : 저는 4차 로잔대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아진 한국교회의 다양한 의견들이 로잔대회 준비위원회를 통해 국제 로잔위원회와 잘 소통하고 반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현재 준비위원회가 대단히 많이 수고하시고 계신데요. 염려는 대형교회 목사님들 중심으로 되다 보면 사회 변혁에 관한 측면이 희석되거나 약화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1974년 1차 로잔대회 때 참석했던 한국 대표들이 귀국할 때 로잔에 다녀오지 않은 것으로 했었잖아요. 그때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때였는데, 이후로 각성해서 로잔 정신에 기초해서, 또는 로잔 정신의 영향을 받아서 선교 활동을 해 온 IVF나 SFC 소속의 젊은이들, 또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교한국’ 등의 선교운동 지도자들이 그동안의 사역과 열매와 고뇌들을 국제 로잔위원회에 전달해서 세계가 함께 한국의 현장에서 일어난 복음주의 운동의 성과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기회로도 역할을 잘 감당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이번에 로잔대회가 기구적 선교운동 쪽으로 기울어지면 안 된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사람들, 특별히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세미나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로잔 준비위원회의 많은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기구 확장을 위한 선교운동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한테 약 5천 불에 가까운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돈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먹고 자는 비용을 대고, 국가에서도 지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받은 그 5천 불은 어디에 쓰는지 질문했는데요. 국제 로잔위원회를 위한 기금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자칫 기구적 선교운동의 한계에 빠지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WCC(세계교회협의회)는 그러다 망했거든요. 선교운동이 점점 그 기구와 직제, 위원회를 더 만들어서 선교 기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면서 현장성을 다 잃어버렸거든요. 국제 로잔위원회도 조직이 커질수록 현장 접촉점이 약해지고 기구 직원들의 급여와 운영, 또 그 직원들이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쓰는 비행기 출장 경비 같은 게 있잖아요. 이러한 기금을 확충하기 위해서 로잔 선교대회 자원을 그쪽에다 초점을 맞추면 앞뒤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로잔대회의 총체적 선교 정신을 굉장히 높이 사고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부디 4차 로잔대회가 WCC처럼 기구적 선교운동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석종준 : 목사님께서 4차 로잔대회 준비위원회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문식 : 저는 1차, 2차, 3차 로잔대회까지는 국제 로잔위원회가 대회 개최국과 교회 현장의 상황에서 나오는 논제들을 신학화 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이번 4차 로잔대회에서도 한국 상황에서 나오는 논제가 반영된 신학화까지 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특별히 우리 시대는 유럽, 중동, 대만, 한반도 할 것 없이 모두 ‘평화’가 중요한데요. 즉, 복음이 어떻게 국제사회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샬롬’ 신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로잔대회에서는 ‘샬롬’을 본격적으로 논제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핵심 논제에서 누락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복음주의자들이 다 함께 ‘샬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신학을 엮어내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정작 ‘샬롬’ 얘기를 잘 안 합니다. 더군다나 현재 대만과 한국은 전쟁이 당장 날지도 모른다고 하는 긴급한 상황이기에 로잔대회가 예언자적으로라도 ‘샬롬’에 관한 신학적 논제 정도는 다루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석종준 : 목사님께서 최근 ‘로잔 너머’ 발제에서 로잔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한국교회가 로잔 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켜 나갈지와 관련한 두 가지 제안을 주셨는데요. 첫 번째 제안은 신학적 폐쇄 및 고립화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두 번째 제안은 신학의 자주화를 이제 실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문식 : 첫 번째는 신학의 재정립 문제인데요. 즉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개혁주의까지 가야 하겠다”라는 것, 또 ‘총체적 선교 신학’이라는 것이 왜 나왔는지, 한 번 검토해서 신학적으로도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서구 상황에서 나온 주제를 가지고 우리의 신학적 이슈로 삼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역사적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공의회부터 선교 현장에서 이슈를 가지고 공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반도도 선교 현장의 하나인데요. 우리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제기되는 신학적, 선교적 주제를 속히 신학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 세계가 공유하도록 해야 하지요. 왜 한반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은 한국교회의 경험과 아픔과 선교적 노력 인식을 당당히 신학적 논제로 내놓지 못할까요? 이제는 한국 기독교가 ‘대리점’ 신학을 벗어나야 합니다. 인적 자원이나 여러 가지 역량은 많이 커졌는데 신학의 자주화는 아직도 실현이 안 되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번 4차 로잔대회를 통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연결되는 어떤 결과나 의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4차 로잔대회를 한국교회가 개최하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굉장한 성장과 영향력의 아주 좋은 결과로서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장소 제공과 많은 재정을 들여 환대만 해주고 우리의 신학과 선교적 과제를 국제적으로 공유하지 못한다면 굉장히 아쉽겠다는 생각입니다.
석종준 :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는 특별히 한국교회 청년들에게 지속적인 메시지로 귀한 나침반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문식 : 21세기는 봄의 시대예요. 인터넷이나 모든 컴퓨터에서 인식론이 시각 인식론으로 바뀌어서, 우리는 이제 그것을 통해서 신앙 고백이 일어난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요즘은 보고 믿는 시대, 감성 인식론이 발달해서 복음의 시각화가 굉장히 일어난 시대거든요. 저는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복음을 시각화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화, 인터넷, 유튜브 등의 예술 양식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현장을 드러내는 것을 좋게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신앙 공동체와 성경이 모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면서 이 감성 인식론 시대를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합니다. 당연히 감성적 인식과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 계시, 성경 말씀을 얼마든지 전파할 수 있지요. 다만 그러려면 더 중요한 공동체의 기초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과 잣대는 바로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들은 자기가 믿는 신앙을 영상화해서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복음은 지금도 잘 전파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