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으로 부르심 (행 6:7)
사도들이 기도에 헌신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도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과 의미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셨던 당시의 제사장들은 원래의 모범에서 아주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신약시대 때 유대 제사장들은 아주 세속적이고 돈만 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님을 가장 격렬하고 날카롭게 반대하는 무리 중에 그들이 있었습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보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변화가 어디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진술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복종”입니다.
성경은 신중하게도 제사장들이 전파된 메시지, 즉 이 도에 복종했다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을 가르는 잣대는 이 도에 복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도에 복종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 “복종”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단순히 “믿는다”는 단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한다”는 단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17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복음은 이렇게 역사합니다.
머리가 먼저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머리가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은 의지를 움직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전 인격적으로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듭 말하건대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순종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9롬 8:7).
자연인은 하나님을 미워하며, 무슨 짓을 해서라도 하나님을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려 할 때, 순종이 그 핵심적인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의 입법자시며 영원한 재판장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다스릴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 일부를 인간 안에 심으심으로써 인간에게 큰 존엄성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것은 불순종일 뿐 아니라 자신을 격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의 본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그 순종에는 복음을 믿는 일이 포함됩니다.
주님은 자신을 좇는 자들에게 친히 이 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7-29).
하나님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7).
그러므로 그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분이야말로 나의 대변자이십니다.
순종의 첫 단계는 메시지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회개입니다. 회개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의 의미는 ‘다시 생각하다’입니다.
편견 없이 메시지를 듣고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회개는 시작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확신과 깨우침을 주시는 성령께서 나를 설득하여 내 마음을 바꾸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생각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다시 생각한 후에 자신의 견해를 바꿀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마음을 바꾸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롬 10:13-14).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주님의 유명한 비유에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은 당당히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러나 불쌍한 세리는 문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와 실패,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눅 18:11-13). 바로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력함과 실패를 깨달아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실을 기꺼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리쳐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복음에 순종하려면 이런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 자신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당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러나 이처럼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도 회개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회개가 참되다는 절대적인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회개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세상의 우상과 거짓 종교와 사교를 떠나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방향을 바꾸어 홀로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와 순종의 정수입니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 단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8-10).
이것은 주 예수에 관한 교리와 진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그를 시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적 결단을 내리거나 마음으로만 반응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이 멋진 기독교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각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앵무새처럼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그를 시인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말할 수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왜 그리스도인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지성과 마음과 의지가 다 관련된 일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존재가 되며, 그 변화는 인격 전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끝부분에 나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서정적인 이야기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과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이 도에 복종함과 동시에 세상을 떠나 교회에 속하게 되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순종한 모든 사람, 같은 주를 믿으며 같은 주를 자랑하고 같은 주를 찬송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더하게” 하신 자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