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4 성령강림대축일
사도 2:1-21 / 1고린 12:4-13 / 요한 20:19-23
AI시대에 인간과 하느님을 생각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신자들은 오순절이 되자 예루살렘에 어떤 곳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거기 있던 사람들 위로 불 같은 것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기도가 모두 자기네 나라 말들로 들리는 것에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예언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예배에서 우리가 들은 제1독서의 주요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임재로 탄생한 교회가 세상을 향해 선포한 첫 설교입니다.
성령강림사건 이후 200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0년전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베드로가 각국의 언어로 설교한 이래로 오랫동안 교회는 열정을 가지고 성경을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하였고, 선교사들은 각고의 노력으로 외국어를 배워 하느님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의 도움으로 교회의 설교는 단지 자신들의 모국어뿐 아니라, 실시간으로 세상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소통하는 이른바 ‘유사 성령강림사건’과 같은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자고로 오늘날 우리는 구약성경이 언급한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언어가 갈라져 소통의 어려움을 겪던 인류가 마침내 그 장벽을 극복하는 역사적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제가 쓴 설교문을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하려면, 오랜 시간 씨름하면서 모국어에 비해 어설프게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AI가 찰나의 시간에 제가 쓴 설교문을 모국어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려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합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한편으론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AI는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순식간에 습득해서 인간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상담영역에서도 인간보다 더 부드럽고 위안이 넘치는 말들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기계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사고와 언어도 인공지능이 맡게 되면, 인간의 인간다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만일 인간이 자신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로봇과 인공지능의 통제와 그들이 규정하는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면, 인간이 의지하고 간구하던 하느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로 변화될까요?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는 『AI와 인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습니다. 하리리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AI는 단순한 도구(tool)가 아니라, 행위자(agent)입니다. 그는 이것을 “인간은 칼을 가지고 누굴 찌를지 결정하지만, AI는 스스로 결정하는 칼이다”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로 인식해 왔는데, 오늘날에는 AI가 인간의 사고기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즉, AI가 인간보다 언어를 더 잘 조합하고, 표현하는 능력도 더 빠르고 뛰어날 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논리적 분석을 하는 이성(理性)의 능력 또한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단지 AI와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을 넘어, 이 사회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간들이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법인격을 만든 것에 착안해서, 미래에는 AI도 이른바 ‘AI인격체’를 만들어 자신들이 법과 제도를 규정할 것이고, 심지어 종교 마저도 만들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상과 같이 휴먼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대체하는 미래세상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특별히 신앙인에게 있어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누구이며, 우리는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요?
오랫동안 인류는 자신을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야말로 그 사고를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러한 관점은 종교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성공회만 보더라도 하느님의 계시는 언어인 ‘성경’, 사고인 ‘이성(理性), 그리고 오랫동안 교회공동체가 행하여 온 ‘전통’이란 것을 통해 전해진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사제보다 성경을 더 잘 분석하고, 신학과 교리에 대해 더 많이 압니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이란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는 인간 성직자와 인간 신학자보다 인공지능한테 물어보고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게 될 것입니다. 과거엔 성경을 많이 알고, 이성을 사용해서 교리와 신학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였고, 그래서 그러한 성직자와 신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점차 그 자리를 인공지능에게 양보해야 될 것 같습니다. 더욱이, 교회행정 분야에선 인공지능이 인간 성직자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잘 운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교 인간관을 어떻게 재정립해야 할까요? 저는 이것을 두 가지로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육체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그래서 다른 존재들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기계들한테 지배를 당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기존의 논리라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들 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이고, 우리 인간은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런 정복자적 관점을 버리고, 성경이 가리켰던 원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기계가 아니라 살(肉)을 지닌 존재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기계와 인간 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는 미래세계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기계와 합성하여 인공적으로 만들고 조작하는 모호한 존재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원래 있던 자리, 즉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동안 하느님이 창조한 다른 피조물을 차별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벗어나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하느님 대가족의 일환으로 복귀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성경은 말씀이신 하느님이 살(肉)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그래서 상처받기 쉬운 인간을 포함한 유한한 모든 생명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느님을 재인식하고, 이러한 하느님을 닮을 때, 우리는 모든 생명들과 연대하면서 기계가 주는 차갑고 냉혹한 미래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도 관계 맺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성령강림대축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축적된 데이터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의거하여 일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이성적 사고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때때로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창조적 영감과 그러한 비전을 불어넣어주는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성령의 임재도 만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일어날 확률이 제로였겠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차원에서는 능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이성적 합리성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때론 이성을 초월한 신비한 모습으로 물질을 넘어 비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강림절을 맞아 저는 AI시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성찰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는 측면만 갖고서 인간의 지위와 우리가 믿는 신앙을 규정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좀 바꿔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육체, 달리 표현하면 흙에서 왔다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과 화해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물질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원이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왔다는 점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물질세계의 최첨단인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물질들과 그러한 체제에 갇혀 있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 사도가 설교한 대목으로 이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사도 2: 17-1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