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맞이 겨울바다 나들이' (끝)
속초근교 맛깔집 곁들여~~~
셋이 ‘방바닥 상’을 중심으로 둘러앉는다.
좌장인 정 사장 수저가 접시에 닿지 않으니 목젖에 침이 오르락내리락했으나 참을 수밖엔.
소주잔에 양주 한 잔 올리자 그제야 횟감에 수저를 댄다.
그 때서야 덩달아 수저가 오간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감탄사 연발이다.
씹히는 그 질감,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력 없음에 탄식 절로 나왔다.
(백도포구의 내항. 해초가 자라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그렇게 맑았다. 시궁창이 된 대포항과는 너무도 대조가 돼 일부러 찍어봤다.)
피 뺀 나머지 횟감은 숙성 겸해 냉장고에 고이 넣어뒀다.
백도수산 김 사장이 전화를 했다.
“점심은 우리 집에서 드세요.”라고.
우린 오후에 설악산 초입이라도 다녀올 계획이다.
산행준비 갖춰 김 사장 댁으로 갔다.
그곳에도 또 싱싱한 회가 차려진 식탁이 우릴 기다렸다.
김 사장은 “아주 정성들여 장만한 횟감입니다. 많이 드세요.”라면서 소주와 함께 자꾸 권한다. 이 횟감도 너무 정갈했다.
회가 남아돌자 바다에서 막 건져왔다는 물미역 섞어 물 회를 만들었다.
배가 남산처럼 뻥뻥하게 솟아올라 버렸다.
우린 서둘러 설악산으로 향한다.
차는 설악동 입구 상가지역에 세웠다.
그곳에서 설악산국립공원 매표소까지 2km 행군한다.
바람 세찼다.
기온이 급강하했다.
귀 덮는 방한모를 끄집어내어 써야했다.
도로변 인도엔 언제 내린 눈인지 모르지만 얼어붙어 빙판을 이뤘다.
한발 한발 떼어놓기가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산타고 내려온 찬 골바람 맞받았으니 더욱이 걸음이 느릴 수밖엔.
국립공원 입장료는 받지 않았으나 문화재 관람료는 여전했다.
(설악산 신흥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정 사장과 구 위원의 뒷 모습.)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도 오늘은 강풍 때문에 운행이 중지됐다.
나와는 달리 정 사장과 구 위원은 산행준비를 잘 갖추었다.
난 등산화 대신 워킹 화를 신었다.
천불동 오르는 길도 꽁꽁 얼었다.
내 신발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득이 신흥사 들리곤 바로 되돌아 나왔다.
(대불 앞에서 울산바위 쪽으로 한 컷 찰깍.)
(신흥사 대웅전에서 선원쪽을 보고 찍은 눈덮인 설악산 초입.)
신흥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권금성 쪽 눈 덮인 삐죽삐죽한 바위산들은 절경이다.
선원 북서쪽 지붕엔 녹다 남은 눈이 골기와 반을 덮어 흑백의 명암이 도드라졌다.
또 북서쪽엔 희멀겋게 잘 생긴 거대한 암봉 ‘울산바위’가 오후 햇살을 받아 하얀 빛을 토해냈다.
기온이 자꾸 떨어져 온 길 서둘러 되돌렸다.
왕복 2시간 30분 걸렸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 취했다.
어둠이 내려버렸다.
숙소에서 5km 정도 떨어진 잼버리행사장 부근 ‘동루 골 막국수’집에서 막국수를 맛보기로 했다. 초행길인데다 날조차 어두워 애먹고 동루 골을 찾아 들었다.
이곳은 여름엔 막국수 먹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소문난 집이란다.
이름난 집이지만 기온 탓인지 휑뎅그렁했다.
너른 방엔 젊은 연인 한 쌍이 저녁을 먹고 우리와 교대했다.
막국수 세 그릇 시켜놓고 우선 편육부터 맛봤다.
편육 맛은 그저 그랬지만 김치 맛이 일품이다.
배추김치와 흰 김치, 무김치 등 세 종류가 먼저 나왔다.
편육보담 김치를 안주삼아 가져간 양주로 목을 축인다.
(동루골 막국수집 간판 불빛이 어둠을 밝힌다.)
(너른 살평상에 무우말랭이를 말리고 있다. 얼고 녹고 이렇게 말려야 제 맛이 난단다.)
막국수는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서야 뽑아낸다.
주방은 유리창으로 가렸으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안 국수 뽑아내는 기계에선 김이 물씬물씬 솟았다.
드디어 막국수가 나왔다.
막국수는 흰 알루미늄 큰 대접에 담겼다.
막국수 위엔 얼음이 둥둥 떴다.
자세히 보니 그 얼음 덩어리는 바로 동치미 국물 얼린 것이다.
그 위에 양념을 얹었다.
그것뿐이다.
겨자 조금 넣어 저었다.
동치미 국물부터 한 숟가락 입에 가져갔다.
너무 시원했다.
막힌 속 확 뚫리는 기분 들 정도다.
막국수 한 젓가락 맛봤다.
후루룩~~~ 목구멍 넘어가는 감촉이 까칠까칠했다.
그 까칠까칠할 정도의 목 감촉을 시원한 동치미국물이 부드럽게 상쇄시켰다.
씹어봤다.
참 담백한 맛이다.
면발도 국수처럼 길지 않고 뚝뚝 잘려졌다.
메밀로 국수 뽑으면 밀국수처럼 그렇게 면발이 길게 뽑힐 수가 없단다.
량이 많았지만 모두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다.
(편육과 먹음직한 김치로 상이 가득하다.)
(맛국수가 처음 나왔을 때 그만 사진을 잡지 못해 아쉬웠다.)
정 사장의 입맛은 독특하다.
양념을 걷어내고 고추와 마늘 다진 양념을 달라고 했다.
탄백(坦白)한 막국수 그대로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서란다.
젊은 안주인 왈 “역시 미식가답습니다.”라고 했다.
부른 배 안고 방을 나서자 바깥은 칠흑 같은 데다 웬 바람이 그렇게 몰아치는지 발길 떼어놓기도 어려웠다.
주인이 쉬운 길이라면서 안내해주었으나 우린 왔던 길을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사흘 째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달이 바뀌었다.
2월 초하루다.
눈 뜨면서 목욕탕부터 들렸다.
정 사장은“오늘은 이곳 벗어나 해안선 따라 묵호 삼척방면으로 내려가면서 좋은 곳 잡아 하루 묵자.”고 했다.
두 사람이야 이의 있을 수 없다.
아침은 어제 피를 빼 넣어둔 도다리와 참가자미로 회 치고, 매운탕 끓여먹기로 했다.
구 위원과 정 사장이 바빠진다.
회 뜨고, 남은 고기로 매운탕 끓이는 작업에 바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한 회감은 정말 또 다른 맛을 냈다.
싱싱한 것만 반듯이 최고는 아닌 모양이다.
일식집에서 숙성된 회 한 점 한 점 천천히 음미하는 그 맛 그대로다.
갖은 양념 넣어 끓인 매운탕 또한 맛이 넘쳤다.
체크아웃 후 우린 청간정으로 향했다.
청간정(淸澗亭)은 ‘관동8경’의 하나다.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삼척 죽서루, 울진 망향정, 평해 월송정과 함께 동해안에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해송에 싸인 청간정의 아침 모습.)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청간정'이란 현판.)
(청간정에 올라 동해바다를 보면서 찍었다. 정말 멋진 곳에 자리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청간천 시냇물이 시리도록 맑았다.)
청간천(淸澗川), 너무나도 맑은 물빛 간직했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이 냇물은 이끼조차 끼지 않은 청정수 그대로다.
청간정은 이 맑은 시냇물과 푸른 동해바닷물이 합쳐지는 합수 점의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했다.
올라보니 동해안 풍광이 너무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정자에서 바라본 일출과 낙조의 정취는 예부터 시인묵객의 마음을 뺏어버렸단다.
아무런 감흥도 느낄 줄 모르는 이 늙은이 입에서도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찌 한 잔 술 마시지 않고 떠날 수 있으랴!
그러나 날씨가 너무 차다.
정자엔 우남 이승만이 쓴 ‘청간정’ 현판이, 그리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남긴 한시 한 편이 실린 편액이 걸렸다.
발걸음 되돌려 백도포구로 갔다.
김 사장과 모친에게 인사드리고 남으로 향했다.
해안선 도로를 골라 내려온다.
강릉 거쳐 정동진에 들렸다.
역 뒤편 해안에서 이곳 겨울바다와 입맞춤했다.
(정동진 역 부근의 동해바다.)
참 러브호텔도 많다.
그래도 장사가 되는지? 싱거운 걱정도 해봤다.
묵호에 닿으니 꼭 점심시간이다.
정 사장이 “묵호 어시장 둘러보자.”고 했다.
어시장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묵호 어시장. 크게 붐비지 않았다.)
정 사장과 구 위원이 앞서서 한 바퀴 돌곤 어느 상인 앞에 멈춘다.
뒤따라 가보니 바닷물이 가득 담긴 큰 물통엔 복어가 헤엄쳤다.
그 중 큼지막한 놈 두 마리를 흥정했다.
‘참복’은 귀했고, 값도 엄청 비쌌다.
우리가 산 놈은‘밀복’이라고 했다.
‘참복’다음이 ‘밀복’이란다.
“복 요리, 우리 식당에서 해줍니다.”면서 옆에 서서 흥정을 엿보던 아주머니가 복어를 받아 쥔다.
우린 산 오징어 몇 마리를 얹어 값(6만원)을 치렀다.
아주머니 따라 그녀의 식당에 갔다.
회 뜨고, 남은 것으로 백탕을 끓인다고 했다.
우린 트렁크에 실린 화이트와인 두 병을 꺼냈다.
큰 접시에 회가 가득했다.
얇게 포 뜬 회감을 한 닢 한 닢 접시에 붙여놓은 그런 예술적인 복사시미는 물론 아니다.
뭉텅뭉텅 서린 회다.
가지고 간 겨자와 간장에 회를 찍어 먹는다.
졸깃졸깃한 참 복사시미 맛만 못했지만 다른 어종 회감보담 맛이 웃질 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서로 처다 보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권한다.
둘은 잔을 부딪치며 연신 마셔댄다.
“기사는 술도 못 마시는데, 회나 많이 먹어.”라고 둘이 강권했다.
복사시미를 이렇게 양껏 먹어보긴 난생 처음이다.
두 병은 이내 바닥이 나버렸다.
저녁에 먹으려고 남긴 한 병조차도 마저 가져왔다.
“백탕에 곤을 넣을까요?”라고 묻는다.
요리사는“곤 넣으면 시원한 맛은 반감됩니다.”고 덧붙인다.
우린 그래도 넣어달라고 했다.
끓여 내온 백탕은 곤을 넣었기에 허옇게 뻑뻑했다.
그럼에도 시원함은 여전했다.
둘은 탕을 안주삼아 마시면서 “불쌍한 것들, ‘자갈마당 집’ 그 맛에도 취하는 것들. 이 맛을 어찌 상상이나 하랴!”면서 대구에 처진 친구를 두고 빈정댄다.
대구에도 이름난 복 매운탕집이 있다.
북구 원대5거리 부근 ‘자갈마당 복어집’이란 곳이다.
대구 술꾼이라면 다 아는 곳이다.
콩나물과 매운 양념 넣고 끓인 매운탕은 해장에 그만이다.
속 확 풀어주는 그 얼큰하고 시원한 맛 잊지 못해 술꾼들은 때 되면 늘 그 집으로 몰린다.
또 달린다.
마땅한 곳 찾으면서 해변 길 따라 남으로 남쪽으로.
쏙 마음을 끌어 잡는 곳을 못 찾아 자꾸 남하를 계속한다.
임원 항에 닿았다.
어시장을 한 바퀴 돈다.
입맛 당기는 회감이 없다.
어느 듯 강원도와 경상도 경계지점까지 이르렀다.
둘은 차 안에서 아침에 준비한 맥주를 마신다.
그러면서 하루 더 묵을 곳을 나에게 묻는다.
“죽변 들려 결정하자.”고 제의했다.
죽변은 경북 땅이다.
어시장 둘러 해삼 몇 마리 사 술안주 하기로 했다.
해삼이 없다.
횟집 골목에서는 해삼 한 접시에 2만원을 호가한다.
(죽변 횟집거리. 이곳도 참 한산했다.)
그만 가잔다.
울진으로 향한다.
북면 덕구온천 들어가는 국도 입구까지 내달렸다.
“내친김에 오늘 집에 들어가자.”고 내가 제의했다.
해 떨어지기 전 집에 들어서는 싱실거움을 면해보자는 속셈이다.
둘은 하루 더 묵고 싶은 생각이 강했지만 기사인 내가 모처럼 제의한 터라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이왕 집으로 가자고 결정이 난 바엔 너무 늦어서도 곤란하다.
배가 불러 저녁을 먹을 형편이 아니다.
울진에서 포항까지 동해안 도로도 이젠 왕복 4차선으로 개통된 구간이 많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포항에 들어와 포항 ↔ 대구 고속도로를 얹었다.
경부고속도로 북대구 IC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쯤.
정 사장 아드님 가족이 마중 나와 기다렸다.
인사 나누고 구 위원 댁으로 가서 짐 내리고 오후 8시 30분쯤 3박 4일 ‘立春맞이 동해바다 나들이’ 가 끝났다.
블로킹을 한동안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집 입주 두 달을 남기고 집이 팔려 2월 25일 비워줘야 할 형편입니다. 이 두 달동안의 갭을 메울 보금자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23일이 조선블로그 ‘와암’이란 저의 방 연지 2년째 맞는 날이기도 합니다. 올린 글도 공교롭게 꼭 100편째입니다. 빈방 그대로 두기도 그렇거니와 닫으려 해도 마음 썩 내키지 않습니다. 설 쇠고 죽 생각 끝에 그냥 열어두기로 했습니다.
저의 빈방 들려주시는 이웃 분들에게 ‘퍽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넓은 아량 보여주시길 빕니다. 2년 동안 늘 찾아주신 이웃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씀도 이 기회에 아울러 올리렵니다.
첫댓글 와암선생, 구선생 여행 잘 다녀오셔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좋은음식 그림으로나마 맛을 보여주셔서 고맙고, 시원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진 ..그곳에 가본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건강하게 자주 여행 하셔서 좋은소식 전해 주세요.
와암 수고 많았습니다. 연속 봄맞이 나들이 시리즈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나드리 다녀 오신 님이 부럽군요
맛 자랑 너무심하다. 약 올리기 없기로!
첫댓글 와암선생, 구선생 여행 잘 다녀오셔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좋은음식 그림으로나마 맛을 보여주셔서 고맙고, 시원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진 ..그곳에 가본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건강하게 자주 여행 하셔서 좋은소식 전해 주세요.
와암 수고 많았습니다. 연속 봄맞이 나들이 시리즈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나드리 다녀 오신 님이 부럽군요
맛 자랑 너무심하다. 약 올리기 없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