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금강송의 숨소리
박노해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곧은 소나무 숲을 지나니 내 정신이 곧아졌다
----박노해, {오늘은 다르게}, 해냄, 1999년
모국어의 영역을 보다 넓고 깨끗하게 가꾸려는 노력없이 ‘외국어라는 이국적인 잡종나무’----모든 외국어는 타인의 말과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를 이식하려는 서툰 망상이야 말로 그 민족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넘겨주려는 바보와도 같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잡종나무는 변화가 필요할 때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때에도 그 역사와 전통을 넘어서서 그 변화를 감행할 줄 아는 무한히 끈질기고도 자유로운 생명력을 지녔다고 할 수가 있다. 그 이국적인 잡종나무의 힘은 그들의 사상과 이론의 토대 위에서 그들이 구축해낸 문명과 문화의 힘으로부터 솟아나온다. 문명과 문화의 가장 극단적인 위용은 어떠한 괴물도, 그 어떠한 적대자도 단숨에 제압해 버릴 수 있는 ‘무기의 성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우리 모국어’라는 순수한 혈통의 토종나무는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쇄국주의를 고집하는 우매함을 지녔고, 정작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모든 역사와 전통을 다 팽개쳐버리는 매우 나약하고 여리디 여린 생명력을 지녔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언어, 즉, 우리들의 모국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목재가 좋고 부드러우며, 구중궁궐九重宮闕이나 사상의 신전을 짓는 데는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소나무라고 할 수가 있다. 그 소나무가 우유부단하고, 나약하고, 또 나약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은 사상과 이론이라는 토대가 없고, 그 소나무의 역사와 전통을 가꾸어 줄 수 있는 문명과 문화의 손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좋은 기후와 좋은 풍습과 좋은 전통과 좋은 역사도 필요로 하지만, 그 언어를 가꾸어 줄 수 있는 인간의 손길도 필요로 하고, 또한 사상과 이론이라는 최고급의 토대와 문명과 문화의 손길도 필요로 한다.
우리 한국어는 이제, 지금, 제 정신이 아닌 어릿광대들에 의하여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외국어라는 그 이국적인 잡종나무의 그늘에 가려서, 언제나, 늘, 푸른 기상과 가장 단단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 위용을 소멸당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 아니, 이 모국어라는 소나무가 과연 그 늘 푸른 기상과 그 위용을 자랑할 날이 올 수가 있을 것인가? 사상과 이론의 토대는 최고급의 비옥한 토대이며, 문명과 문화의 손길은 최고급의 성실함의손길이다. 대한민국의 사상, 대한민국의 이론, 대한민국의 문명, 대한민국의 문화를 정립하고 구축하지 않으면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의 한국어, 즉, 우리의 모국어가 얼마나 고귀하고 훌륭한 나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언제, 어느 때나 외국인의 손짓과 발짓에 따라서 이 비참한 노예생활을 청산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 이전에, 모국어 속에서 태어났고, 그 모국어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났으며, 그 모국어의 가르침에 따라서 오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국어 속에서만이 한국인이며, 그 모국어 속에서만이 고급문화인이 되어갈 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외국어라는 잡종나무를 이식하기 이전에, 우리의 모국어의 목표를 정하고, 우리의 모국어가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그리하여 그 거대하고 늘 푸른 기상으로 그 이식 잡종나무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소나무를 전세계에 보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이 있는 싸움은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의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어 내는 것이다. 독일이 그들의 낭만주의로 그들의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고 고급문화인이 되어갔듯이, 우리 대한민국은 나의 낙천주의를 통하여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 즉, ‘고급문화인’이 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낙천주의는 최악의 생존조건 속에서도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사상이며, 영어의 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사상이고, 그리고 언제, 어느 때나, 늘 푸른 소나무인 것이다.
모국어의 숲을 지나니 때 묻은 내 마음이 맑아졌다.
모국어의 숲을 지나니,
우리 한국인들이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 즉, ‘고급문화인’으로 우뚝우뚝 자라났다.
박노해(본명 박기평, 세례명 가스발) 시인은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고,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통해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노동해방운동의 기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바가 있다. 그는 1991년 ‘사노맹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6년여의 수배생활과 8년여의 감옥 생활 끝에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바가 있다.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이외에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옥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산문의 진수인 {오늘은 다르게}를 펴낸 바가 있다.
박노해의 [어린 금강송의 숨소리]는 그가 시로서 발표한 것도 아니고, 산문 제목 속의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모국어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매우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명시감상’에서 다루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에 대한 해설보다는 박노해 시인의 산문을 전문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람의 숲에서 몹시 고독한 날, 울진 소광리 소나무 숲을 찾아 나섰습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등성이를 타고 굽이굽이 계곡을 거슬러오르고 올라 마침내 소나무숲에 섰을 때, 아, 하늘을 떠받치듯 우람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 붉은 살 푸른빛의 곧게 선 소나무들. 그 장엄한 소나무 숲의 기상에 모든 것이 문득 정적, 원시의 솔바람 소리 가운데 깊은 정적이었습니다.
척박한 우리 땅에 이처럼 웅장한 소나무 숲이 살아 있었다니. 기나긴 세월을 말없이 원형 그대로 살아 있었다니. 휘어지고 굽어진 소나무가 우리 민족 전형의 아름다움인 줄 알아왔는데, 우리 소나무의 참모습은 이토록 당당하게 땅에서 하늘로 곧게 뻗어 있는 금강송이라니.
소광리 1,600헥타르의 소나무 숲에는 500년생 금강송이 다섯 분 계시고, 300년, 200년생이 어림잡아 8만여 분 계십니다. 금강송은 30미터가 넘게 자라도 나무줄기에 굽은 데 하나 없지요. 껍질은 얇고 붉으며 나뭇결이 균일하고 뒤틀림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가벼운데다 향기마저 진합니다. 그 독한 솔잎혹파리조차 범접하질 못해요. 이것이 우리 나라 모든 산맥에 무리 지어 우뚝 서 있던 우리 고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이것이 조선 소나무의 원형입니다.
1967년 산림청에 입사한 이래 오직 한 길로 이 나라 숲을 가꾸며 살아온 울진 국유림관리소 남화려 소장의 잔잔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어언간에 소나무를 닮아가는 맑은 얼굴을 접하는 것은 또다른 감동이었습니다. 한창 숲 가꾸기를 하고 있는 현장에는 ‘푸른 숲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미래가 있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어요. 남화려 소장은 실직자들과 함께 숲 가꾸기를 하는 요즘 심경을 “서럽게 고맙다”고 표현하더군요. 저는 남 소장께 우리 나라 산림의 역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한일합병 이전만 해도 조선 산골짝에는 수백 년 된 금강송들이 울창했다고 합니다. 일제 때 그 좋은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가고 송진까지 짜내간 거지요. 6,25 전쟁으로 남은 산림마저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1962년에야 산림법이 만들어져 우선 급한 대로 잣나무, 아카시아, 오리나무, 현사시, 리기다 등 빨리 자라는 연료림을 조성하게 되었지요.
70년대에는 경제 성장과 수출 제일 정책에 따라 탄광 갱목으로 쓰일 나무들이 베어졌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교과서, 학용품, 신문 용지로 펄프용 목재가 잘려나갔습니다. 88올림픽을 치르고 나서야 ‘산림의 질’에 눈뜨게 되었어요. 세계에서 최단 기간에 산림 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는데 막상 쓸 만한 나무가 없는 겁니다.
숲을 그대로 방치하면 잡목만 우거지게 되고 맙니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은 숲 가꾸기에 대한 예산 배정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다 IMF 이후 처음으로, 정말 역사상 처음으로 실직자들과 함께 숲 가꾸기가 시작된 거지요.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200년생 금강송 한 그루 값이 소나타 한 대 값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소광리 소나무 숲에서 한 달 간 채취한 송이버섯만 해도 100억원이 넘으니, 잘 가꾼 숲은 그대로 무한한 국부의 원천인 거예요. 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 대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100년 후의 손주 대를 내다 본다고 합니다. 이제사 우리는 그 첫 걸음마를 내디딘 셈이지요.
저는 산림의 역사를 들으며 안으로는 우리나라 인재의 역사, 교육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발생한 일은 곧 그 땅의 아이들에게도 닥칠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 나라 숲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은 슬프도록 서로 닮기 때문입니다.
한말의 동학혁명과 천주교 박해로 이 나라 숱한 인재들이 죽어갔습니다. 일제 때 조선 땅의 참한 소나무가 모조리 베어져 나갔듯 조선의 젊은 인재들은 학병으로, 징용으로, 유민으로, 독립군으로 이 땅에서 뿌리뽑혀 나갔지요. 그나마 남은 숲이 6,25전쟁으로 불타 헐벗었듯 좌익과 우익, 남과 북의 극한 대립으로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살상당하고 숙청당했습니다. 60년대에야 조림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최 단기간에 산림 녹화에 성공했듯 주입식 국민 교육으로 우선 경제 성장에 써먹기 좋게 인재를 대량 생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쓸만한 나무가 없어 뒤늦게 숲 가꾸기에 나서듯 사회 곳곳에서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찾기어렵다는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거지요. 그리하여 겨우 지금에야 ‘준비 안된 교육 개혁’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튼실한 나무가 단번에 자라나지 않듯 훌륭한 인재 역시 하루아침에 커 나오는 건 아니지요. 지난 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은 수많은 젊은 인재들을 시대의 문제아, 저항아로 내몰았습니다. 금강송 같은 곧은 양심과 푸른 열정을 죄인으로 만들어 거리로 감옥으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인재 희생의 대가를 우리는 지금, 지구 시대 큰 변화에 뒤처진 모습으로 비싸게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금강송이 베어져 나간 자리엔 휘어진 소나무와 잡목들이 어우러져 그것이 최선인 양 안주하고 맙니다. 험난한 현대사 속에서 우선 살아남기 위해 원칙과 도의를 뒤로하고 뒤틀린 현실과 하나 둘 타협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원형인 듯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미래를 지고 나갈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오직 일류대를 나오고 출세 고시에 합격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인기 스타로 뜨는 화려한 외양이 삶의 중심 가치로 전도된 현실이지요.
척박한 토양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낸 굽은 소나무들이 보여주는 곡선의 미학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정 우리 삶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미래가 있는 올곧은 삶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게 구부러지고 모두가 모두를 닮아갈지라도 작은 원칙, 작은 정의, 작은 실천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흔들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첫마음에 비추어 성실하게 내디뎌 가는 사람, 금강송같이 좋은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서로를 키우며 이루어내는 푸른 숲속에서 저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새벽길을 찾아 나섭니다.
소광리 숲속에서 눈을 감고 보았습니다. 머지 않아 이 나라 온 산과 산에 아기 금강송이 우람우람 자라나는 모습을. 어린 금강송의 앞길에는 수시로 산불이 덮쳐오고 사나운 솔잎혹파리 떼가 살을 뜯고 순식간에 성장하는 잡목 덩굴이 어린 몸을 짓누를 것입니다. 이 절망스런 악조건과 무한 경쟁의 도전을 무릅쓰고 어린 금강송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자라겠지요.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이미 어린 금강송 같은 사람들이 거센 유혹과 시련을 거름 삼아 소리없이 커 나오고 있음을 저는 눈이 부시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봐요.
들리지 않나요. 그대 안에서, 내 안에서
서럽도록 올곧게 자라는 저 푸른 숨소리, 숨소리.
----박노해, [어린 금강송의 숨소리]({오늘은 다르게}, 해냄, 1999년)
솔·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송(松)·적송(赤松)·송목·송수·청송이라 한다. 줄기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너비 1.5mm로 밑부분의 비늘은 2년이 지나서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새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너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잎은 각기·소화불량 또는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약용으로 쓴다. 화분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며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건축재·펄프용재로 이용되고 테레핀유는 페인트·니스용재·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인다. 관상용·정자목·신목(神木)·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에 분포하고 한국의 북부 고원지대를 제외한 전역에 자라며 수직적으로는 1,600m 이하에 난다. 남복송(男福松:for. aggrega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밑부분에 모여난다. 금송(for. aurescens)은 잎의 밑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황금 빛깔을 띤다. 여복송(女福松:for. conges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끝부분에 여러 개가 모여달린다.
금강소나무(for. erecta)는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며 외형적으로 소나무의 형태이나 곰솔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소나무와 곰솔간의 잡종으로 본다. 처진소나무(for. pendula)는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형태이다. 반송(盤松:for. multicaulis)은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다북하다. 은송(for. vittata)은 잎에 흰색 또는 황금색의 가는 선이 세로로 있다.
유럽의 문화를 '오크(oak) 문화'라 하고, 지중해의 문화를 '올리브(olive) 문화'라고 한다면 한국의 문화는 소나무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 ‘소나무보호정책’을 강력하게 펼쳤다. 나무 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수리'라고 부르다가 '술'로 바뀌었고, 오늘날의 이름인 '솔'로 변했다.
소나무는 뿌리, 줄기, 잎, 꽃가루, 솔씨, 송진, 관솔 등 하나 버릴 것 없이 고루 다 쓰여진다. 건축재료, 가구재 등, 목재로 이용한 것은 물론, 어려운 시절에는 구황식물이었고, 차와 술로도 이용했으며 병을 고치는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소나무밭에서 자라는 송이버섯(Tricholoma matsutake), 소나무가 죽은 후 4~5년 후에 그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이라고 하는 버섯, 송진이 오래되어 만들어지는 호박이라는 보석 등등, 소나무의 이용은 끝이 없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모두 주고 가는 나무이다.
소나무에는 많은 변종과 품종이 있는데, 반송(for. multicaulis)은 줄기가 여러 개 갈라져나와 부채처럼 자라고, 금강송(for. erecta)은 태백산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로 줄기가 곧고 수관이 좋아 임업상 높은 가치를 가진다. 곰솔(P. thunbergii)은 바닷가 해안에서 자라는데, 나무껍질이 검고 잎이 더 길면서 뻣뻣하다. 해송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적송과 함께 일본식 이름이다. 이밖에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수형을 처진소나무(for. pendula), 잎의 색이 노란색인 것을 황금소나무(var. aurescens)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소나무류에는 소나무, 곰솔,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등 5개 자생종과 북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지인 리기다소나무,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방크스소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 중국이 자생지인 백송 등의 도입종 등이 있다.
----이상, {두산백과사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