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7일 목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1년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회개시키려고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는 모니카 성녀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에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는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인과 종
나는 아직까지 노예처럼 살아본 적이 없으니 주인과 종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 그리고 성경에서 종과 노예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노예와 종은 구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때 내가 과연 주님의 종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이며, 그 분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며 그분의 친구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요한 15, 15)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강의도 하고 사람들에게 증언도 하면서 언제나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예와 종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예는 인격이 부인되고 타인에게 소유되어, 권리와 자유의 태반 또는 전부가 박탈된 자를 말합니다. 법적으로는 개인재산을 뜻하며 양도 · 매매가 가능한 물건으로 생각되었다고 합니다. ‘생명 있는 도구, 말할 줄 아는 도구’라 하여 가축과 같이 생각되었으며, 소유자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시킬 수 있었고, 원칙적으로는 그 생명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노예제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회적 신분을 가진 노예가 포함되었습니다. 가령 고대 로마의 노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대개의 경우 자유를 매수할 재력(財力)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 남북전쟁 전의 남부 흑인노예는 법률로써 그런 것이 명확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자유를 매수하기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였다고 합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돈이나 숙식제공을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사유재산도 지닐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비라는 말과 같이 가장 많이 쓰인 말이 하인이었고, 종이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는 천민을 말 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을 그렇게 대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종을 아주 다양하게 말하고 있답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은 하지만 주인의 진정한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종을 아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1. 저주를 받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제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리라.”(창세기 9, 25)
2. 보다 낮은 신분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룻이 천사들을 집에 모시면서 스스로 종의 신분을 자청하고 있습니다.(창세기 19:2).
3.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며 충직한 예언자를 하느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1) 주님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주님께서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일어나 저 요르단을 건너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여호수아 1,2)
2)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 사무엘 3,9)
4.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는 종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야 42,1)
5.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종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잘 가르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2 디모테오 2, 24)
평신도들은 예수님의 종, 사제들은 평신도들의 종, 주교님들은 사제들의 종, 교황님은 주교님들의 종, 그래서 요한바오로 2세 성하는 당신의 방명록에 언제나 ‘종들의 종’이라는 서명을 하셨다고 합니다.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아무리 들어도 그의 신분이 낮아지는 것 아니고, 아무리 종이라고 해도 종처럼 느껴지지 않는 종이라는 말이 가슴이 남습니다. 내천주 외천종(內天主 外賤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안으로는 천주성을 가지신 하느님이시고, 밖으로는 비천한 종의 신분이 취하신 하느님>을 말하지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주님의 종으로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주인이 오기를 성실하게 기다리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으라는 것은 일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고, 등불을 켜 놓고 있으라는 말씀은 주인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온갖 유혹에 노예가 되어 성실한 종이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온갖 유혹에 먼저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래서 허리띠를 맬 정신도 없고, 등불을 켤 겨를도 없으며, 집 안팎을 밝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노예에서 벗어나 종이 되어야 자녀가 되고 친구도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새로운 종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은총으로 도우소서. 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