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음 해 / 김혜순
네 몸에서 내가 씨를 심은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졌음, 해
네 피가 새의 피로 새로 채워졌음, 해
네 발걸음이 공중으로 겅중겅중 디뎌지는 나날
바보 멍청이 네가 네 몸의 문을 찾지 못하는 나날
내가 되고 싶은 네가 네 몸에서 나가고 싶어 안달했음, 해
습한 여름에도 발아래 땅이 한없이 멀어지는 그런 가을이 온 것 같고
네 목구멍이 목마름으로 타들어 가듯
네 몸의 새가 타올랐음, 해
키득키득 네 입술 밖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내 몸에 앉고 싶은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
쿵쿵 울리는 심장의 둥지에서
쿵 소리 한 번에 새 한 마리씩
미지근한 네 두 눈의 창문 밖으로 언뜻언뜻 아우성치는 새들이 엿보이는
그런 나날
불붙듯 날개가 크게 돋아났는데도 돌 속인 그런 나날
가슴 위에 얹은 네 오른손이 마치 네 엄마처럼
새들로 꽉 찬 네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매일 그런 자세로 나를
네 안의 새들이 찬란했음, 해
ㅡ시집 『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 2024), 초판(2019), 12쇄(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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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순 시인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 등단
시집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등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현재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