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기독교를 십자가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 인들이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표로 금으로 만들어 가슴에 붙이기도 하고 예쁘게 만들어 귀걸이로 또는 반지로 디자인하여 갖고 다닙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리스도 인이 아니면서도 가슴에 붙이거나 귀걸이나 목걸이로 갖고 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왜 십자가를 달고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다른 사람이 달고 다니는 것 보니 예뻐보여서 갖고 다닌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보면 마귀가 도망하고 귀신이 무서워하기 때문에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으로 알고 갖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나무나 금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몸에 붙이고 다닌다고 액운이 막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예뻐 보일수는 있겠지만 십자가를 달고 다녔더니 행운이 찾아오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십자가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는 옛날 로마 나라에서 죄인 중에 중죄인을 사형시킬 때에 사용하던 도구입니다. 나라마다 중죄인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칼이나 활이나 총을 사용하여 죽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목을 매어 달아 죽이기도 하고 그런데 로마에서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 죄인 중에 중 죄인을 죽이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되니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릴 것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거짓 죄목을 씌워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처형 방법 중에도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곧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양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달아 놓으면 몸 무게 때문에 몸이 처지게 되고 발을 못박았기에 다리가 굽혀지게 된다. 몸이 쳐질 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다리를 펴서 몸을 조금 올리면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잠시 면할 수 있지만 그것도 오래 버틸 수 없어서 조금 있으면 다시 몸무게에 의하여 쳐지게 되고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십자가를 사람들은 좋다고 가슴에 귀에 목에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범하여 마귀의 종살이를 하는 자들에게 엄청나고 놀라운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가까이 하여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오는 놀라운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는 지혜의 나타남입니다. 이를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아멘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마귀의 종살이 하는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로 옮겨 주심을 말합니다. 이는 그냥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짛예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남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마귀가 임금인 세상에서 구원함을 받음으로 마귀가 임금인 세상에서 살때에 마귀로 말미암아 살았던 모든 악한것과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청산 받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죄와 허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졌던 모든 저주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3장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원수이며 우리의 원수인 마귀를 무장해제 시키는 능력입니다. 이로 인하여 마귀는 영원히 무장해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무일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를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3장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아멘 “마귀의 일을 멸하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마귀의 능력인 질병에서 놓임 받고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알고 그 지혜와 능력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