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악마가 되기도 한다※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자주 본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 간호사, 스튜어디스, 선원, 경비원을 비롯해, 매장 직원, 공장직원, 호텔리어, 요리사들도 제복을 입는다. 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나 야구선수들이 운동할 때 입는 유니폼 또한 엄연한 제복이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중·고등학생이 입는 교복도 제복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렇듯 제복을 입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슨(R. D. Johnson
)과 다우닝(L. L. Downing
)이 1979년에 실험을 실시한다. 그들은 여학생 60여 명에게 쿠 클럭스 클랜(KKK)이라고 불리는 백인우월주의단체의 복장과 유사한 가운, 그리고 간호사 제복을 각각 입고 실험에 참여하게 했다. 어떤 사람에게 문제를 내어 상대편이 틀린 답을 말하면 여학생이 6단계의 버튼 중 하나를 골라 전기 쇼크를 주는 실험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여학생들이 간호사 제복을 입었을 때는 상대편에게 쇼크가 작은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과격한 KKK단과 유사한 가운을 입었을 때는 쇼크가 강한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제복 효과’라고 한다. 복장에 따라 사람이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니 정말 놀랍다.
제복 효과는 실제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에게 몇 가지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는 구성원들 간에 동질감을 형성하는 효과다. 같은 제복을 입고 일할수록 구성원들 사이에 동료의식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복을 입으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조 애덤(Hajo Adam)과 애덤 갈린스키(Adam Galinsky)가 2012년 실험 사회심리학 저널에 기고한 논문 ‘의복착용과 인식작용(enclothed cognition)’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이들은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입지 않은 사람보다 수행력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의력을 테스트하는 스트룹 테스트(Stroop test)를 진행한 결과,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가운을 입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실수를 절반 정도만 저지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효과는 제복을 입음으로써 직원들이 복장에 대한 스트레스와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복이 마련돼 있으면 직장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동료 간의 미묘한 복장 경쟁심도 줄일 수 있다. 회사가 제복 비용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 복장 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 외에도 고객, 거래처와 같은 외부에 드러나는 마케팅적 효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길을 가다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정형화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멀리서 봐도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그들에게 부탁을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제복의 인지 효과다. 미국의 특송 업체인 페덱스는 이런 인지 효과를 잘 활용했다. 직원들에게 페덱스 로고가 찍힌 제복을 착용시킨 덕분에 고객들은 사무실에 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자신이 혹시 배달 받을 것은 없는지 또 배달을 부탁할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체크하게 되곤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뢰감을 느낀다.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처방전을 제시했는데, 그 약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제대로 교육을 받고 약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맞나?’ 하는 의심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 이처럼 약국이나 병원에서 하얀 가운은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예로 IBM은 사업 초기 직원들에게 감청색의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일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 복장은 고객에게 IBM 직원들이 수준 높은 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물론 제복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한때 제복이 동질감, 신뢰감을 향상시켜 생산성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제복 착용은 지나친 표준화와 획일화를 불러일으켜 창의성을 억누른다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했다. 집단 속의 개인에게서 주체성과 개성이 상실되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자들은 몰개성화(deindividuation)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제복 효과의 부정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제복은 요즘 들어 중·고등학생들의 탈선을 막고, 직장인의 직업의식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많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만 해도 그렇다. 세월호 선장이 제복이 아니라 일반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선박에서 탈출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현행법 상 연안여객선의 선원들이 제복을 입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지만, 사고 당시 선원들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과연 승객보다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승객과 구조에 나선 해경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의식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선원이라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그렇게 쉽게 도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복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의무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 점검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선장은 선장답게, 스포츠선수는 스포츠선수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의사는 의사답게, 요리사는 요리사답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제복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