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불빛의 집
한 강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 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한강 ( 시인, 소설가.)
광주 출생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를 통해 詩,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등단.
1999년~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2016년 맨부커상(영국), 이후 말라파르테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대산문학상,
메디치외국문학상(이탈리아), 에밀기메 아시아문학상, 2024년 노벨문학상 등 다수